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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1 에세이

행운을 빌어

2023.11.30

ⓒ 페퍼톤스 정규 4집 <Beginner’s Luck> 커버

‘행운을 빌어요’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페퍼톤스의 정규 4집 앨범 타이틀곡으로 제목을 처음 들어봤다 해도 노래를 듣는다면 누구나 ‘아 이 노래!’를 외칠 법한 노래다. 제목 때문인지 아니면 경쾌한 멜로디 때문인지 수능 응원곡, 새해 첫 곡으로도 자주 쓰이곤 한다. 그런데 사실 가사를 잘 들어보면 ‘행운을 빌어요’는 이별의 순간을 노래하고 있다. 비트가 빠른 데다 노래를 들을 때 가사에 집중하는 편은 아닌지라 나 역시 이번에 안 사실인데, 실제로 페퍼톤스 멤버는 이 노래가 수능 응원곡으로 쓰여 당황했었다고 한다. 이별 노래라는 걸 알게 되고 곡 소개를 찾아보니 정말로 이렇게 쓰여 있더라. “저희도 살다 보니까 세상에는 헤어지는 건 아쉽지만 서로를 위해 웃으며 보내줘야 할 그런 이별이 생각보다 잦은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멀리 떠나는 친구를 배웅한다든지, (……) 그런 순간들에 바치는 곡입니다.”

별 관심 없던 이 노래의 가사를 곱씹게 된 이유를 밝히려면 먼저 내게도 찾아온 이별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응원하던 선수가 이번 시즌을 끝으로 잠시 팀을 떠나게 됐다. 한 경기 한 경기가 소중한 마지막 시즌인데 예상치 못한 부상으로 시즌 중간에 팀을 이탈하게 되어 더욱 아쉬웠더랬다. 가벼운 부상이 아닌지라 그 경기가 선수의 마지막 경기일 거라는 모두의 예상과 달리 우리의 3번 타자는 홈에서 열린 마지막 경기에 얼굴을 내비쳤다. 팬들의 기억 속에 남은 자신의 마지막 모습이 부상당한 모습은 아니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날 경기가 끝나고, 선수가 마지막 타석에 들어서는 순간을 담은 영상이 구단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되었다. 그리고 그 영상에 배경음악으로 깔린 노래가 바로 ‘행운을 빌어요’다. 마냥 신나는 노래인 줄만 알았는데 ‘서로를 위해 웃으며 보내줘야 할 그런 이별’의 순간에 처하니 그제야 이별 노래인 게 실감이 났다고나 할까. 페퍼톤스의 정규 6집 타이틀곡 ‘긴 여행의 끝’은 ‘행운을 빌어요’의 뒷이야기로 오랜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행운을 빌어요’ 속 화자와의 재회를 앞둔 주인공의 설레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나 역시 노래 제목처럼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하는 그의 여정이 최대한 기나긴 여정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노래 가사처럼 여행의 끝은 모든 것이 시작됐던 이곳이 되기를.


글. 김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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