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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36호(표지B,C) 빅이슈

홈리스 여성 이야기

2025.07.30

“소리 님, 축하해요, 다홍 님, 잘해봅시다~”

소리(가명) 님이 취직을 했다는 낭보를 전해왔다. 2주일 전쯤 여성 일시보호시설에서 할 수 있는 공공일자리 참여를 종료하고, “저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이렇게 인사를 하고 가셨던 분이다. 그녀의 마지막 출근일에 시설에선 오래 써서 수명을 다한 가구를 폐기하고 새 가구를 들이면서 이리저리 짐을 옮기고 대대적인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 소리 님이 먼저 작별 인사를 하는데도 여느 날처럼, “아, 수고 많았어요.” 정도의 응대밖에 하지 못했다. 소리 님은 아마도 실무자들이 다른 이용인들을 붙들어 세우고 고마움의 박수 정도는 쳐줄 것으로, 혹은 격려하며 어깨를 두드려줄 것으로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몇 달간 시설에서 주방보조 설거지 일을 해주었으니 그렇게 하는 게 마땅했는데 정신이 없어서 그저 덤덤하게 인사하고 보냈고, 마음에 걸렸었다.

여성 일시보호시설에서는 일반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여성들을 위해 몇 가지 상대적으로 수월한 일자리를 만들어서 참여하도록 한다. 대표적인 일은 시설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노동이다. 나물을 다듬거나 씻고 설거지를 하거나 식기를 삶고 정리하는 등의 주방보조, 시설의 화장실과 거실과 계단과 마당 등 시설 내외부를 청소하고 쓰레기를 분리수거해 폐기하는 일, 이불을 세탁하여 정리하는 일, 계단 난간과 문손잡이를 소독하는 일처럼 많은 사람들이 생활하고 이용하는 시설이 청결과 안전을 유지하면서 잘 돌아가려면 수반되어야 하는 누군가의 노동. 그렇게 단시간 근로를 통하여 여성 자신이 시설의 질적인 서비스를 받는 데 필요한 환경을 조성한다. 좀 더 공익적인 일로는 외부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다른 이용인을 동행하거나 대표적인 노숙 집중 지역에 찾아가 구호 활동을 하는 일이 있다.

일시보호시설을 이용하려면 첫 이용일로부터 3일 이내에 결핵 검사와 같은 기초 검진을 받아야 하는데 길이 낯설어 보건소를 찾아가지 못하는 이용인이 있으면 동행을 해준다. 시설을 이용하는 여성 중에는 정신과 진료를 받는 분들도 꽤 되는데 종종 병원을 찾아가지 못하는 여성들이 있다. 그런 여성분들과 동행해 병원에 가서 약봉지를 들고 오는 것까지를 함께 해주기도 한다. 때로는 주민센터나 구청에 복지 서비스를 신청하러 가는 걸 함께하기도 한다. 홈리스 여성들이 모여 있는 고속버스터미널이나 시설 인근의 공원, 지하철역 등에 찾아가서 여름이면 차가운 물을, 겨울이면 보온에 도움이 되는 물품을 제공하고, 시설 안내문을 나눠주는 역할도 한다. 마지막으로 공동 작업장의 부업 활동이 있다. 시설에서는 공동 작업장을 조성하여 참여 여성들이 단순 조립, 단순 포장 등의 부업 활동을 하도록 한다. 주로 머리끈을 포장 용기에 넣는, 가장 쉽다고 여겨지는 일을 하다가 최근에는 그런 물량이 달려서 쇼핑백 만들기의 마지막 공정을 완성하는 일을 추가했다.

이런 일들 중 제일 인기가 있는 일은 공동 작업장 참여이다. 함께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단순 작업을 하다 보면 확실히 몰입의 즐거움도 느끼고 시간이 잘 가서 좋다는 말씀들도 한다. 반대로 시설에서 제공하는 일자리에도 기피 분야가 있다. 주방보조 일과 청소와 쓰레기 분리수거는 똑같은 시간을 일하고 최저시급을 받는 근로자 입장에서 노동 강도가 훨씬 센 일이고, 간혹 다른 이용인들과 분쟁이 생길 때도 있어서 인기가 없다. 청소를 하려고 생활실에 들어갔더니 아직 자고 있는 이용인이 있어 일어나라, 마라 하며 언쟁이 생기기도 하고, 주방보조를 하다가 음식을 이렇게 남기면 되냐, 당신이 뭔데 그러냐 하며 서로 얼굴을 붉힐 때도 있다.

고시원비 마련도 녹록지 않은

지난겨울, 주방보조 일을 해보겠다는 이용인이 없어 고심하고 있을 때 공동 작업장에 참여하던 소리 님이 자신이 해보겠노라고 자청을 했다. 발달장애가 있는 분이라 잘할 수 있으려나 싶었다. 상대적으로 건강한 다른 참여자들이 한 달쯤 하면 다른 일에 배치해 달라고 요청하는 예가 많았었기에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을 떠나기 전에 장애인 안내 같은 보호적 일자리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고는 했지만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하니 아주 씩씩하게, 불평 없이 묵묵하게 일을 잘해내서 감탄할 지경이었다. 일시보호시설의 긴급잠자리 이용 기간이 끝나고 시설 근처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인데 주방보조 급여로 고시원비도 내고 잘 지내서 담당 사회복지사가 엄청 뿌듯해했다. 물론 그러다 실망할 때도 있었다. 어느 날 고시원 생활을 접고 홈리스 시설에 입소하겠다고 해서다. 고시원 생활을 유지하면 임대주택 같은 지역사회의 독립 거처로 상향 이동해 홈리스 상태를 안정적으로 졸업하도록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던 담당 사회복지사가 제일 낙담했다. 그러나 소리 님은 월 60여만 원이 조금 넘는 급여로 고시원 생활을 유지하는 게 어렵겠다고 판단했던 듯하다. 비슷한 처지의 다른 여성들이 대개 주거급여를 신청하여 월세를 충당하는데 30세가 안 된 젊은 소리 님은 주거급여 심사에서 탈락했고, 월 40만 원 가까운 주거비 지출이 부담되는 상황이었음이 틀림없었다. 다른 시설에 입소하니 일시보호시설의 공공일자리 참여는 종결하고 다른 일을 찾아보도록 하자고 협의하고 여성인력개발센터의 상담을 받도록 했다. 병원 청소 일자리가 났다고 해서 신청을 했지만 경쟁자가 많았는지 최종 합격을 못 했고, 다음 일자리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시보호시설의 일은 종료할 상황이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간 며칠 후 그녀가 다시 공동 작업장에 앉아 있기에 어쩐 일이냐고, 놀러 왔냐고 묻고 이참에 확실히 격려 인사를 해주어야지 했는데, 그녀는 가슴을 활짝 펴고는 “저 취직했어요. 이제 곧 일하러 가요.”라고 자랑스럽게 근황을 전했다. 강남의 어떤 백화점에서 청소일을 하게 될 거라 한다. 새벽에 출근해 하루 다섯 시간 일한단다. 출근 시간도 빠르고 일하는 시간이 늘었는데 괜찮겠냐 물었더니 아무 문제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홈리스 상황을 벗어나는가 보다 했다가 뜻밖에 뒷걸음질 치나 싶어 약간의 실망과 걱정을 했던 사회복지사도 나도 같은 표정으로 눈빛을 교환했고, 진심으로 축하했다. 그녀는 자신의 속도에 맞게 자신이 선택한 방법으로 홈리스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일시보호시설에 오신 지 얼마 안 된 다홍(가명) 님이 며칠 전에 공동 작업장 참여를 시작했는데 며칠 만에 그만두겠다고 했다. 작업 참여자 중에 정신건강 문제로 혼잣말을 하는 여성이 있는데 자신은 그 소리를 들으며 일하는 걸 참을 수가 없다고 했다. 다른 참여자들이 어떻게 그런 상황에 뭐라 하지도 않고 무심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도 했다. 그런 상황이 힘들다면 할 수 없지 않겠느냐 위로했고 다홍 님은 그날로 그만두었다. 정신건강 문제가 있는 분들이 보이는 증상은 상대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혼잣말하는 소리를 들으며 방을 함께 쓰기 힘들다는 시설 이용인들의 호소가 빈번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다홍 님은 다음 날 사무실을 찾아와 시설의 같은 층에 있는 어떤 할머니의 정신과 증상으로 너무 고통스럽다며 방을 바꿔 달라 했다. 의논해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또 다음 날 다른 기관에서 고시원 월세를 지원받고자 상담을 받았다며, 공동 작업장에 다시 참여해도 되느냐 묻는다. 아마도 고시원 생활비를 충당할 방법을 찾는 게 급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다홍 님이 힘들어했던 상황이 바뀌지 않았는데 괜찮겠는가 싶었다. 그러나 다시 부딪혀보아야 괜찮을지 아닐지도 알 수 있을 거다. 공동 작업장이든, 아니면 다른 일을 찾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자 하는 다홍 님께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잘해봅시다.~”

글. 김진미

여성 홈리스 일시보호시설 ‘디딤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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