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아시스 3집 〈Be Here Now〉(1997)의 열렬한 팬이다. 특히 타이틀곡인 ‘Don’t Go Away’를 가장 좋아한다. 15년 전 처음 접한 후 공식 음원과 각종 라이브·데모·부틀렉을 합쳐 3만 번 이상은 듣지 않았나 싶다. 이토록 좋아하는 3집인데, 정작 이 앨범을 만든 노엘 갤러거는 3집이 싫다고 말한다.
“스튜디오에서 코카인에 취한 놈들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만든 소리”(2004), “지금 그 가사들을 들으면 몸서리가 쳐진다.”(2013), “나는 그 앨범을 혐오한다.”(2018). 노엘 갤러거는 〈Be Here Now〉에 대해 이렇게 신랄한 자기비판을 해왔다. 심지어 발매 25주년 기념 인터뷰에서도 “그냥 싫다”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오아시스의 베스트 앨범인 〈Stop the Clocks〉에는 3집 곡이 단 한 곡도 수록되지 않았다.
자신이 창작한 곡을 싫어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 정신분석학자이자 〈망친 책,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여름언덕 펴냄, 2013)를 쓴 피에르 바야르는 “망친 작품이란 곧 자아의 표현에 이르고자 하는 작가의 시도가 실패한 것”이라며 “창작자와 작품 사이에 거리감이 커져 도저히 자신이 쓴 게 아닌 것 같을 때 환멸감이 든다”고 했다. 노엘은 〈Be Here Now〉에 대해 환멸감을 표하는 듯하다. 대체 어떤 문제가 생긴 걸까?

정반대로 바뀐 가사
노엘이 3집을 싫어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1, 2집의 폭발적 성공에 반해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실망스러운 평가를 받았고, ‘브릿팝의 종말’이라는 혹독한 말까지 들었다. 하지만 단순히 작품성만의 문제였다면, 왜 그토록 강한 거부감을 보일까?
‘Don’t go away’를 3만 번가량 듣는 와중에 불현듯 단서가 될 만한 것을 발견했다. 프리코러스인 ‘And I don’t wanna be there when you’re coming down / And I don’t wanna be there when you hit the ground’라는 대목이다. 해석하면 ‘당신이 쓰러질 때 곁에 있고 싶지 않다 / 당신이 주저앉을 때 곁에 있고 싶지 않다’라는 뜻이다. 바로 뒤에 ‘So don't go away(떠나지 마)’가 이어진다.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힘들 때 곁에 있기 싫다’면서 ‘떠나지 말라’고?
굳이 의역을 해보자면 ‘이별 자체로 힘들 테니 떠나갈 생각조차 말라’는 얘기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다소 억지스럽다. 오히려 주저앉을 때야말로 곁에 있어줘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And I don’t wanna be there’(곁에 있고 싶지 않다)가 아니라 ‘And I wanna be there’(곁에 있고 싶다)가 더 걸맞다. 몇몇 데모 버전에서는 이 대목이 ‘And I need to (wanna) be there’(곁에 있고 싶다)는 가사로 녹음되어 있다. 최종 발매 버전에서 ‘곁에 있고 싶지 않다’라는 부정형으로 뒤바뀐 것이다.
여러 스튜디오를 떠돈 혼란의 녹음 현장
어쩌다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 〈Be Here Now〉는 1996년 5월 머스티크 섬에서 시작해 애비 로드, 리지 팜, 에어, 마스터 록, 오리노코, 디 익스체인지까지 약 1년간 총 7곳의 스튜디오를 옮겨 다니며 제작됐다. 당시 앨범 제작이 주로 한두 곳의 스튜디오에서 이뤄진 것과 대비된다. 전작 〈Definitely Maybe〉(3곳), 〈Morning Glory〉(2곳)과 후기 앨범들(각각 1~2곳)과 비교해봐도 〈Be Here Now〉의 스튜디오 사용은 이례적이다.
당시를 회상한 여러 인터뷰에 따르면 제작 과정은 혼돈 그 자체였다고 한다. 프로듀서로 참여했던 오웬 모리스는 “제작 현장에 세상 모든 종류의 코카인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전작의 대성공 직후였지만, 밴드 내부는 마약과 폭주하는 언론의 압박으로 균열이 깊어졌고, 갤러거 형제간 불화까지 겹치며 녹음은 삐걱거렸다. 이러한 무절제한 환경 속에서 제작하다 보니 부지불식간에 가사가 변경된 게 아닐까?

어머니를 향한 마음이 왜곡되다
안타까운 건 이 곡의 배경이다. ‘Don’t Go Away’는 노엘이 어머니 페기 여사의 암 진단 소식을 듣고 쓴 곡으로 알려져 있다. 갤러거 형제에게 어머니는 특별한 존재다. 남편을 피해 세 아들(폴, 노엘, 리암)을 데리고 나와 홀로 키워낸 사람이 바로 페기였기 때문이다. 노엘은 이 곡을 “가까운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는 매우 슬픈 노래”라고 했다. 녹음 도중 리암 갤러거가 감정에 북받쳐 한동안 노래를 잇지 못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런 어머니의 곁을 피한다는 건 과거 노엘의 모습과도 차이가 있다. 가정폭력의 주된 피해자는 페기와 노엘이었다. 노엘은 “계속 그 사람과 살 거라면 내가 (아버지를) 죽여버리겠다”고 말할 만큼 어머니를 지키려 했다. 그런 노엘이 사랑하는 이(어머니)가 힘든 순간에 “곁에 있고 싶지 않다”는 노래를 만들게 된 것이다.
노엘이 3집을 싫어하는 데엔 자신의 마음을 담았던 가사가 반대 의미로 바뀌어버렸다는 기억—게다가 앨범의 타이틀곡이 되었다는 사실—이 남긴 불편함도 한몫했을지 모른다. 이런 정서적 괴리가 그에게 3집을 떠올릴 때마다 어쩔 수 없는 반감을 불러오는 것은 아닐까. 결국 노엘은 ‘Don’t Go Away’의 가사 변경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다. 종종 이뤄진 솔로 라이브에서 가사를 데모 버전과 뜻이 통하는 ‘And I wanna be there’로 바꿔 불렀기 때문이다.
재밌는 점은 어머니의 암 진단이 병원의 오진으로 밝혀진 것이다. 모든 게 오해에서 비롯된 해프닝이었던 셈이다. 페기 여사는 지금도 건강하게 맨체스터에서 살고 있다. 노엘 갤러거가 이 앨범을 싫어하는 이유는 어쩌면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 민망해서일 수도 있다.
진정한 화해를 향한 제안
노엘 갤러거로 하여금 ‘Don’t Go Away’를 다시 좋아하게 할 순 없을까? 혹시 원래 만든 가사대로 리암이 고쳐 부르면 노엘이 마음을 돌리지 않을까? 오아시스의 마지막 ‘Don’t Go Away’는 1998년 〈Be Here Now〉 투어의 멕시코 공연에서 울려 퍼졌다. 만약 이번 투어에서 리암이 ‘당신이 쓰러질 때 곁에 있겠다’고 노래한다면? 그건 단순한 재결합을 넘어 진정한 화해의 의미가 될 것이다. 가사처럼 ‘낙담할 때 곁에 있어’ 주는 게 진짜 형제애일 테니까.
한편으로는 데모(노엘 보컬)의 보호적 시점(곁에 있고 싶다)과 발매 버전(리암 보컬)의 회피적 시점(곁에 있고 싶지 않다)의 대비가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각각의 가사가 두 사람 캐릭터에 그대로 부합한다는 것이 유머러스하다. 노엘은 소중한 사람이 좌절할 때 그 곁을 지킬 것 같고, 리암은 좌절하는 일이 없게 나서서 앞장설 것 같다. MBTI로 말하면 노엘은 F고, 리암은 T랄까?
마지막으로 ‘Don’t Go Away’의 가사를 빌려 오아시스에 하고 싶은 말을 전하려고 한다. 2009년 해체 이후 재결합하는 데까지 15년이 걸렸다(cause I need more time). 그간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With all the things caught in mind). 이제는 서로가 힘들 때 내버려두는 게 아니라(And I don’t wanna be there when you’re coming down) 보살펴주길 바란다(And I wanna to be there when you’re coming down). 그렇게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언제나 영원히(Forever and a day In the time of my life), 해체하지 않길 바라며(So don’t go away), 재결합을 축하한다(Just to make things right).
글. 최재윤
오른팔에 ‘LIVE FOREVER’ 타투를 새긴 사람. 인스타그램 ‘번개로드’(@lightning.road), ‘또부라소바’(@ttoburasoba) 운영자. 유튜브 채널 〈이스타TV〉의 ‘번개로드’ 및 동명의 서적 작가.
사진. 유튜브 캡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