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되돌려 교과서를 펼치게 된다면 기대하는 내용이 있다. 여행과 이삿짐 챙기는 법, 돈 관리하는 법, 몸과 마음 건강 관리법, 그리고 내 목소리를 내는 법. 의견을 글로 쓰는 방법을 얼핏 배웠을 뿐이다. 무언가를 주장하고 상황의 개선을 요구하는 방법을 좀 더 일찍 익혔더라면 어땠을까.
함께 만든 신문이 배포 금지되었을 때, 은평구 청소년들이 모인 독립언론 <토끼풀>은 1면을 백지로 내면서 독자들에게 사과했다. 이제 더 많은 시민들이 이들의 꾸준한 활동을 응원한다. 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일, 우리의 요구와 의견을 개진하는 일은 특별한 경험임과 동시에 더 많은 이들이 경험해야 하는 것임을 <토끼풀>의 활동을 보며 깨닫는다. 밀려오는 제안을 소화하는 동시에 다음 호 작업으로 바쁜 문성호 편집장, 서부건 사회부장을 만나 <토끼풀>의 활동과 그 영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최근 <토끼풀> 특집호가 발행되었다. 시민들의 기고를 받아 싣기도 했는데, 기획 의도가 궁금하다.
서부건 시민들의 힘으로 큰 언론이라, 시민들의 의견을 실으면 의미 있을 거라 생각했다. 청소년들도 기고를 많이 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신도중학교에서 <토끼풀> 배포 금지와 압수를 했고, 이후 신문 1면을 백지로 낸 것이 큰 화제가 됐다. 은평구 내 다른 학교에서도 신문 배포 금지가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다.
문성호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도 이미 배포가 금지되었다. 신도중에선 압수까지 한 게 큰 문제였는데, 그 외에도 기사를 미리 보고 검열하는 등 크고 작은 사건은 계속 있었다.
이와 관련해 압수와 배포 금지 조치의 철회 등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교육청과 학교에서 어느 범위까지 기준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하나.
문성호 교육청도 그렇고 학교도 경직된 조직이다 보니, 잘 안 될 것 같긴 하다.
서부건 학생들 의견이 반영되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교육 정책의 당사자는 학생인데 현재는 성인들이 모든 것을 정하지 않나.

서울시 기후동행카드에 청소년 혜택이 없다는 보도를 했고, 이후 청소년 혜택이 포함되었다. 기사를 통한 직접적 변화를 체감했겠다.
서부건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혜택을 우리의 목소리로 제안하고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뿌듯하다. 주변에도 기후동행카드를 쓰는 아이들이 많다.
주변 청소년들도 그런 기사에 직접 반응할 것 같다.
문성호 기사를 통해 청소년들의 목소리와 요구를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반응도 있지만, 극우 청소년들의 신문에 대한 극단적 표현도 존재한다.
어떤 표현을 하나.
서부건 복도에서 “좌파 신문”이라며 <토끼풀>을 찢어버리기도 하고, 인스타그램에 악플이 달리는 일도 있다.
<토끼풀> 내에서 대응책을 준비 중인가.
문성호 일단 ‘안티팬도 팬’이라는 기본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누군가 신문을 훼손해도 다른 학생들은 ‘이게 좌파 신문이라고?’ 하면서 펼쳐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서부건 다른 <토끼풀> 기자들이 보면 위축이 되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법적 대응도 검토하긴 했지만 실행하진 않았다. 공식 인스타그램 게시글에 욕설 등이 달리면 댓글을 막고 있다. 메일로는 비판이 많이 들어오지만, 우리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보내주시는 건설적 비판이다.
학교 안의 극우화를 기사로 다루고 싶은 생각도 있나.
문성호 학내 문화를 써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학교마다, 또 학년마다 분위기가 천차만별이다. 개개인이 극우 유튜브를 접하고 “너도 그렇게 생각해?”라고 물으며 의견을 교류하지 않았나 싶다.
청소년들은 디지털 및 온라인 콘텐츠와 가깝다는 인식이 있다. 이런 점에서 신문 창간 및 기사를 쓰면서 망설임이나 고민은 없었나.
서부건 사실 첫 1년간 ‘아무도 안 읽는 것 아닐까’, ‘내 기사가 소리 없는 아우성 아닐까’ 하는 의심이 많았다. 최근 규모가 커지면서 그런 의심이 좀 해소됐다. 웹사이트에 기사를 게시하는 것만으로는 읽히지 않을 것 같아서 종이 신문을 내게 됐다.
문성호 아이들이 ‘세 줄 요약’을 작년부터 요구하긴 했다. 기사 위에다 좀 써 달라고.(웃음) 꿋꿋이 안 하고 있다.
안 하는 이유는?
문성호 아니, 좀 읽어라 싶어서.(웃음) 2,000자도 안 되지 않나. 게다가 살다 보면 글을 읽고 써야 할 때도 많을 테니까.
밈과 가짜뉴스의 영향에 모두가 노출되는 시대다. 독자들이 기사를 꾸준히 읽게끔 하기 위해, 언론이 갖춰야 할 조건은 무엇이라고 보나.
문성호 애초에 기사가 너무 어렵다. 선민의식이 있는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한글로 써도 되는 지명을 한자로 쓰는 경우가 있고 동시에 한자를 너무 안 쓰고 순우리말을 써서 어려운 경우도 있다. 정치 이슈만 너무 많이 기사화되는 것 같기도 하다.
서부건 어려운 어휘 사용이 많다고 느낀다. 만드는 이들의 연령대가 높아서 독자와 괴리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문성호 배경지식 설명이 필요한 기사도 많다. 정치인 각각의 경력을 알 수 없는데 그런 설명이 지나치게 생략된다든가. 청소년 사이에선 <토끼풀>이 기성 언론보다 많이 읽히리라 생각한다.
서부건 예를 들어 국정감사에서의 작은 일까지 모조리 기사화되는데, 궁금하지 않은 소식도 많다. 청소년 독자가 진입 자체를 할 수 없다.
문성호 ‘안물안궁’성이 아닌 더 다양한 기사가 필요한데, 결국 포털 위주의 시스템이 문제라고 본다. 포털이 일종의 게이트 키핑 역할을 하고, 언론이 독자들에게 읽히지 못할 이유가 없는데 그걸 막고 있다. 지역 언론, 전문지에서 다룰 수 있는 소식이 있는데 그런 매체는 포털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토끼풀〉을 포함한 모든 매체를 다 넣어주거나 포털 뉴스 플랫폼을 없애고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읽을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그러기 어렵다. 기성세대가 만드는 기성 언론이 너무 영향력이 크다. 전문지와 지역 언론이 더 많아져야 한다.
서부건 애초에 기자들을 지역으로 보내서 담당하게 하는데 소수만 배정된다. 지역 언론보다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토끼풀>의 행보에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특히 시민들이 왜 응원을 보낸다고 보나.
서부건 자화자찬을 하자면 유일무이하게 역사를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웃음) <토끼풀>을 통해 대리 만족을 느끼는 분들이 많은 듯하다.
문성호 우리에게 메일로 응원을 보내주신 분들은 초등학생부터 70대 할아버지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 미국이나 캐나다에 사는 분들까지 있다. 다들 어린 시절 겪었던 비슷한 일을 말씀하시더라. 교지편집부에서의 경험부터, 비슷한 언론을 만들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웠다는 얘기들이 많다. 청소년들이 활동하는 매체는 보통 스펙 위주로 굴러간다. 생기부에 적히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하는 시대니까. 독립언론을 바라던 분들이 응원을 해주시는 것 같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이후 5일, 호외를 발행했다. 청소년들에게 이 상황을 알려야겠다는 의도였다. 비상계엄 이후 1년이 된 시점에서 당시를 돌아본다면.
문성호 당일에는 잡혀갈까 봐 못 만들었는데, 다음 날 학교에 가니 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웃음) 그런 일이 벌어질 줄 몰랐다. 그 주 토요일에 국회에서 탄핵소추안 표결이 불성립되지 않았나. 혼란스럽더라. 그때부턴 주변에 “계엄이 정당했다”는 논리를 펴는 사람들이 나타나기도 했고, 실제로 주변에 서부지법에 갔던 학생도 있다. 내란 세력도 청산되는 동시에, 극우 세력 자체가 청산되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독일의 빅토리아 브로사트 연방의회 의원과의 인터뷰에 극우 세력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극우화와 그 사회적 영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흐름을 청소년으로서, 시민으로서 어떻게 느끼나.
문성호 극우적인 표현, 혐오 표현을 할 때 정색하고 지적을 하기 힘든 분위기는 있다.
서부건 비판을 하면 거의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배척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청소년들이 보는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들이 극우화되어 있기에, 콘텐츠도 그런 내용이 많다. 그 유튜버의 팬으로서 콘텐츠를 보면 동조할 수밖에 없지 않나.
학원 운영 시간 12시 연장 조례안에 대한 설문을 구글폼으로 진행했고, 네팔 Z세대 혁명 취재를 위해 네팔 활동가와 인스타그램으로 소통했다. 이러한 취재 방식은 앞으로 <토끼풀>의 활동에서 어떻게 발전할까.
문성호 금전적 이슈로 하고 싶은 걸 못 했던 때가 많은데, 지금은 좀 괜찮아졌다. 유튜브를 해도 좋을 것 같고, ‘극우들과의 대화’ 같은 콘텐츠도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
서부건 기성 언론 중 네팔의 Z세대 반정부시위 활동가를 인터뷰한 곳은 <토끼풀>이 처음이다. 어디서 인터뷰를 하긴 했는데 한국에 재학 중인 네팔인이더라. 기성 언론이 인터뷰를 할 때, 보통 고위 관계자의 말을 듣는다. 우리는 시민들에게 더 다가가는 인터뷰를 하지 않을까 싶다.
청소년들의 나은 삶을 위해 필요한 사회적 변화를 꼽는다면.
서부건 기후동행카드에 청소년 혜택이 반영이 안 됐던 것, 학원 운영 시간을 12시로 연장하는 조례가 발의된 것 모두 청소년의 목소리를 낼 통로가 없어서였다. 투표권이 생기는 동시에, 우리의 요구가 정책에 반영되는 세상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글. 황소연 | 사진. 이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