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4일, 서울시립 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이하 나는봄)의 운영이 종료됐다. 2013년 설립되어 성폭력, 성병, 임신, 성매매 등 위험한 상황을 겪은 10대 여성들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센터였다. 2,000여 명 이상의 위기 10대 여성이 건강 지원을 받아왔다. 센터에서 9개월간 일한 이현주 사회복지사를 비롯한 실무자들은 일터인 동시에 지원을 하던 아이들을 맞이하던 공간을 잃었다. 운영 종료를 무산하기 위해 서명운동 등을 진행했지만 서울시 공고대로 센터는 운영 종료 수순을 밟았다.
나는봄 운영 종료 결정이 실무진과 이용자, 봉사자에게 공식적으로 전달된 건 지난 5월 12일, 7월로부터 불과 두 달 전이다. 아이들, 직원과 봉사하던 의료진에게도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이현주 복지사는 “9개월 후 나가야 하는 곳에 중간관리자가 어떻게 입사하겠어요. 지금은 홈페이지가 폐쇄됐지만 3~4월에도 기업과 MOU를 체결하는 중이었어요.”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센터는 위기 청소년의 자해 흔적 치료를 지원할 수 있는 병원을 모색해왔고, 적합한 기관과 협력이 성사되어 5월부터 치료 계획을 시행할 예정이었다.
직원들이 미리 정보를 접할 창구는 차단되었다고 한다. 직원들은 기존 법인인 사단법인 ‘막달레나공동체’가 재위탁을 하지 않아 민간위탁 공고 및 타 법인의 지원을 기다리고 있던 상황에서 갑자기 운영 종료 소식을 듣게 됐다. 이때도 직원들은 새 법인을 기다리며 여러 기업과 후원 건을 논의하고 있었다. 4월 21일 주간회의에서 “서울시에서 센터 운영을 종료한다고 얘기했다.”고 센터장에게 구두로 전달받았다.
이후 이씨는 시의원과 국회의원 사무실을 방문하며 해당 사건의 심각성을 알렸고, 나는봄의 직원 중 뜻을 함께한 일부와 시민사회는 운영 종료의 부당함을 알리고자 서명 참여와 다양한 연대 활동을 전개했다. 운영 종료 공식 공문은 5월 12일 센터로 퇴근 시간 후 전달되어 실무진이 이튿날인 13일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서명운동 진행과 함께 시민사회가 결합한 ‘서울시립 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 폐쇄 저지를 위한 공동대응위원회’가 6월 10일 공식 출범했고, 6월 17일에는 국회전자청원 홈페이지에서 운영 중단 철회 및 대책 마련 청원이 시작됐다.
구체적 대안 없이 센터를 통합하겠다는 서울시
서울시는 지난 5월 19일 서울특별시 홈페이지에 게시된 해명 자료를 통해 ‘일방적 운영 종료 통보’, ‘위기청소년 지원 서비스 중단’ 등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최근 온라인 성착취 문제 등 정책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기존 십대여성건강센터 기능에 온라인 상담, 긴급구조 등의 기능을 담은 신규 센터를 설치할 계획(’26.1월)으로 기존 건강센터 기능은 유지됨에 따라 위기 청소년 지원 서비스 중단은 사실과 다르다.”는 게 서울시의 주장이다. 실무진이 서울시가 말하는 ‘기능 중복’에 대해 센터장에게 질의했으나 납득할 만한 답을 듣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운영 종료로 직원들은 실직을 겪었고, 위기 청소년들은 갈 곳을 잃었다는 지적에 대해서 서울시는 ‘법인에서도 1월 7일경 운영 종료를 직원들에게 통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무자들은 “1월 7일은 기존 센터장이 사직 의사를 밝히자 법인에서 이를 만류하기 위해 센터에 방문한 날”이라며, “법인이 재위탁하지 않을 거란 사실은 들었지만 종료가 아닌, 다른 위탁 법인이 올 것”임을 확인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시민사회와 함께 서울시에 문제 제기 중이지만 정확한 답변 듣기 어려워
서울시, 2년 6개월 동안 민간위탁시설 25곳 운영 종료
서울시의 운영 종료 공문 발송 등의 시점이 중요한 이유는, 민간위탁시설의 신속한 운영 종료가 이번에 갑자기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서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에서 서울시에 정보 공개 청구를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오세훈 시장 취임 이후 2023년부터 2025년 6월까지 서울시가 운영을 종료한 민간위탁시설은 총 25곳에 달한다. 성희롱·성폭력 예방센터, 청소년진로센터, 양로원, 직업재활시설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져 있다. 특히 서울여성공예센터 운영 종료 당시 입주 기업들이 종료 이유를 듣지 못했다는 사실이 보도됐고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예방센터 ‘위드유’,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도 기능 중복을 이유로 운영 종료를 통보받았다. 나는봄의 갑작스러운 운영 종료도 이 흐름 속에서 발생했다는 의미다.
이현주 사회복지사는 서울시, 감사원, 고용노동부,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민원을 제기했으나 어떠한 보호나 지원도 받지 못했다. 그 결과 센터장과 막달레나공동체로부터 해고를 통보 받았고, 현재까지도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이현주 사회복지사의 주장이다.
10대 위기 여성들에게 복합적 돌봄과 지원을 해온 센터
서울시는 1월부터 기능을 통합한 공간을 연다는 입장이지만 오랜 시간 의료, 법률, 상담 등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실무자들의 입장에서 그 전까지의 시간은 위험한 공백으로 읽힌다. 나는봄은 전국 여러 지역의 여성 청소년들이 방문하는 곳이었다. 아이들에게 주민등록번호 등의 개인정보도 요구하지 않았다. 신상을 밝히지 않아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친절함과 철저한 비밀 보장 덕에 2,000여 명 이상의 아이들이 몸과 마음을 보호받았다. 나는봄에서는 방문하는 아이들에게 이름 대신 ‘넌 누구니?’라고 묻는다고 한다. “이번 주에는 자신을 ‘이OO’라고 소개하다가, 다음에 방문할 땐 ‘박OO’라고 소개하기도 하거든요. 각자 심리와 건강 상태가 모두 달라요.”(이현주 사회복지사) 아이들은 여성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치과, 한의학과의 진료를 받을 수 있었고, 2, 3차 병원으로의 전원이 필요하면 진료 의사가 소견서를 써서 사실상 센터가 보호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소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건강 문제를 떠나 산부인과에 가면 ‘누구네 집 딸내미 산부인과 들락거리더라’ 하는 소문이 나요. 그 외에도 아이들에겐 위협적인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고 이 복지사는 전한다. 7월 3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나는봄 졸속폐지 규탄 기자회견에 참여한 익명의 한 청소년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봄은 저에게 보호막 같고, 차가운 세상 속에서 따뜻한 이불 같은 존재였습니다.”
유기적으로 연결된 사회안전망,
나는봄 운영 종료는 시작일 뿐
나는봄의 운영 종료는 센터 이용 청소년과 가족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치아 일부가 없는 한 청소년은 임시 보철을 착용하며 치료를 이어가던 중, 운영 종료 소식에 집에 돌아가 울었다고 한다. 여러 사정으로 아이를 돌보기 어려운 환경에 있는 가족에게도 나는봄은 중요한 공간이었다. 이 청소년의 어머니를 담당하는 복지관에서도 연락이 왔다고 한다. 센터가 이렇게 없어지는 게 맞냐는 확인 전화였다. 나는봄 센터와 연계되어 있는 타 복지관들 역시 나는봄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 난색을 표한 것이다. 다행히 이 청소년은 치아 치료를 끝까지 책임지기로 한 나는봄 활동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다. 각 복지 서비스가 서로 면밀히 연결되어 움직여야만 안정망 바깥의 청소년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봄 구성원들은 거리 생활 등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온 아이들의 상황과 맥락을 고려해 적절한 치료, 설명의 제공을 원칙으로 삼으며 일해왔다. 상담센터나 지자체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있지만, 아이들이 나는봄에서처럼 집중적인 전문의의 진료를 받기는 어렵다. 시네마 테라피, 원예치료의 경우에도 아이들의 경험에 따라 치료 방향이 맞춰졌다. 주로 오픈채팅방, 홈페이지를 이용했던 아이들이 이후 도움을 받기 위해 다른 센터에 연락을 한다 해도, 자신이 누군지 설명해야 하는 상황을 겪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이후 생길 센터가 나는봄과 비슷하게 문의를 받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이용하지 않으려고 하겠죠.”라고 이 복지사는 말한다.
나는봄이 운영 종료되며 위기 청소년들의 치료와 보호가 중단된 채 개인정보 관리와 후원금 처리조차 불투명하게 남겨진 상태다. 13년간 현장을 지켜온 실무자들은 일방적으로 배제되었다. ‘민관 협력과 존중’ 대신 서울시는 문제 제기에 사실상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현주 사회복지사는 이 사안이 국정감사와 행정감사를 통해 다뤄지길 바란다. “중요한 것은 제도의 재설계 이전에 태도의 전환이라고 생각해요. 위기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보호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고, 그 공간을 지키는 어른들의 의지니까요.”
글. 황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