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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1

먹고사는 존재라면 주목해야 할 농민의 이야기 (2)

2023.11.18

이 글은 '먹고사는 존재라면 주목해야 할 농민의 이야기 (1)'에서 이어집니다.

ⓒ 사진제공. 녹색연합

왜 농민들은 기후위기에 무관심할까?
섣불리 해결책을 내놓기 전에, 농민들은 기후위기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우선 들어봐야겠다 싶었다. 전문가가 아닌 농사짓는 당사자가 직접 이야기하는 기후위기 대응책이 무엇인지도 궁금했다. 그래서 몇 년 전 시도했었던 인터뷰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이번에는 든든한 협력자도 함께했다. 그렇게 작년 한 해 동안 스무 명의 농민을 만났다. 유기농과 관행농, 시설농업과 노지농사, 과수농가와 축산농가, 대농에서 소농까지, 다양한 방식과 규모, 지향을 가진 농민들을 가리지 않고 만났다. 대부분 농사를 지은 지 10년이 넘은 베테랑 농민들이다. 이들과의 인터뷰를 묶어 <모두를 살리는 농사를 생각한다>(녹색연합 지음, 목수책방 펴냄)를 펴냈다.

첫 인터뷰이는 예산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분이었다. 나는 이분이 생각보다 기후위기에 대해 심각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분명 냉해 피해부터 시작해 50일이 넘는 장마에 진창 밭에서 사투를 벌이는 등 기후위기로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농민의 심경은 생각보다 덤덤했다. 언론이나 매체에서 회자되는 것에 비해, 농민들에게 기후위기는 생각만큼 ‘절체절명’의 위기가 아니었다. 기후위기로 농사를 포기해야겠다는 이도 없었다. “왜 농민들이 이리도 기후위기에 덤덤할까?” 인터뷰를 하는 몇 달간 떠나지 않았던 의문이다.

인터뷰를 모아놓고 정리할 때가 되어서야 이러한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농민에게 농업 현장은 늘 ‘위기’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농산물 가격은 10년째 그대로이고, 농산물 가격이 출렁일 때면 그 충격은 농민이 다 감당해야 한다. 4대 보험을 비롯하여 어떠한 사회적 안전망도 없고, ‘그림 속 농촌’과 다르게 지역의 공동체는 이미 깨진 지 오래다. 그야말로 ‘각자도생’하는 삶이다. 언제 농사를 그만두어도 이상하지 않은 농민에게 ‘기후위기’는 일상에서 체감하는 문제이긴 하나 해결하기는 어려운 거대 담론일 뿐이다.

이쯤 되면 기후를 살리기 전에 농민을 먼저 살려야 하는 것 아닐까? 우리나라 농업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풀지 않고 농민들에게 ‘친환경 농업을 하세요.’,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농사를 지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 같다. 기후위기를 해결하면서도 농민의 삶도 더 나아질 수 있는, ‘정의로운 전환’은 어떻게 가능할까. ‘모두를 살리는 농사’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모두 먹고사는 존재이지 않은가. 기후위기를 떠올리며 식량 위기를 걱정해본 적이 있다면, 이러한 농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좋겠다.

소개

이다예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 활동가.


글. 이다예 | 사진제공.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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