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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35(커버 A)

RADAR - 트럼프 정부는 다양성을 지우려 한다

2025.06.23

DEI 프로그램과 시민들의 저항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승리함으로써, 2025년 1월 20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부터 40개가 넘는 행정조치에 서명했다. 그중 문제인 것들은 한두 개가 아니고, 특히 지금 한국 사회에선 관세 문제에 가장 관심을 두고 있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 또 하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위대하게’ 만들려는 미국엔 다양성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날 서명한 행정조치엔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 프로그램들을 해체하는 부분이 포함됐다. 일단 행정명령 제14151호 ‘급진적이고 낭비적인 정부 DEI 프로그램 및 우대 정책 폐지’(Ending Radical And Wasteful Government DEI Programs And Preferencing)를 통해 모든 연방 정부의 DEIA 프로그램을 폐지했고, 또한 행정명령 제14173호 ‘불법 차별 종식 및 능력 기반 기회의 복원’(Ending Illegal Discrimination and Restoring Merit-Based Opportunity)을 통해 연방 정부와 계약하는 업체에 요구되던 반차별 및 평등 정책 이행 규정을 폐지했다.

DEI, 소수자 포용을 위한 사회의 전략

트럼프 대통령은 왜 이 행정조치에 취임 첫날부터 서명했을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선 일단 DEI 프로그램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DEI는 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포용(Inclusion)의 약자로, 각기 다른 위치에 놓인 사람에게 모두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고, 존중받으며 사회에 포함될 수 있도록, 걸림돌들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사회의 전략과 노력을 말한다. DEI 프로그램이 제도화된 과정은 미국의 시민권 운동의 역사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 인종, 피부색, 종교, 성별, 출신국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법률인 시민권법이 1964년 만들어졌고, 연방 정부와 계약하는 업체가 차별 없는 고용을 보장하도록 하는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도 마련됐다.

이후 차별금지의 범위가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에게로 확대되었고 DEI 프로그램은 소수자를 위한 대표적인 제도로 자리 잡았다. 또한 다양한 소수자를 포용하고자 하는 사회 문화를 만드는 데도 큰 기여를 했다. 특히 2010년대의 뜨거운 이슈였던 ‘미투’ 운동과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으로 재차 DEI 프로그램의 중요성이 강조됐는데, ‘차별을 없애고 혐오를 종식하기 위해선’ 더 많은 DEI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역차별’이라는 주장에 대항하는 미국 시민들

하지만 DEI 프로그램이 모든 사람에게 ‘호의적’인 건 아니었다. 특히 특권을 가진 사람, 소수자 위치에 있지 않은 이들은 이것이 오히려 ‘역차별’이라는 주장을 오랫동안 해왔다. 이를 대표하는 사례 중 하나가 ‘학생을 위한 공정 입학 대 하버드 사건’으로, 비영리단체 ‘학생을 위한 공정 입학’(SFFA)가 하버드 대학교의 ‘적극적 우대조치’가 1964년의 시민권법을 위반한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한 건이다. 이 소송의 이유와 과정에는 조금 복잡한 맥락이 있긴 하지만 다소 거칠게 요약하자면, ‘성적이 좋은’ 아시아계 미국인이, 다른 인종(흑인, 히스패닉 등)을 ‘배려’하는 ‘적극적 우대조치’ 때문에 오히려 하버드에 입학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인종, 피부색, 종교, 성별, 출신국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법률인 시민권법을 위반한다는 것이다. 2019년의 지방법원과 2020년 항소법원에선 하버드의 입학 정책이 합헌이며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차별이 없다고 판결했지만, 2023년 대법원은 기존 판결을 뒤집었다. 6:2의 결정으로 하버드의 ‘적극적 우대조치’가 위헌이라고 판결한 것이다. 다소 놀라운 이 결과에 대해 여러 논의를 할 수 있겠지만, 한 가지만 덧붙인다. 당시 기준 9명의 대법관 중 여섯 명이 보수 성향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세 명이 트럼프 대통령의 1기 행정부 시절 임명되었다는 사실을.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당선된 후 연임에 실패했지만, 2024년 다시 당선됐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그가 지속해서 극우세력과 백인우월주의자들을 선동해왔으며, 그들의 지지를 등에 업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빈곤의 위기에 놓인 백인 노동자들에게 “당신들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돈 벌기 힘들어지는 건 소수자를 우대하는 제도, 이민자를 포용하는 정책 때문”이라고 외쳤다. 슬프게도 이 말을 따르는 이들이 늘어났고, 이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DEI 프로그램을 폐지함으로써 이런 사회 분위기에 기름을 붓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소수자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사회의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정책을 없애버렸으니 말이다. 사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외에도 트랜스젠더의 존재 자체를 지우려고 하고 있고, 이주민들도 무더기로 내쫓아내는 등 소수자들을 박해하는 데 정말 전력을 쏟고 있다.

물론 미국 시민들도 이에 침묵하고 있진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한 연방 정부 축소 정책, 사회복지 예산 대폭 삭감, 이민자 탄압, 트랜스젠더 배제 등에 반발하며 ‘우리 권리에 손대지 마’(Hands Off) 운동을 시작했다. 다양한 위치의 시민들에게 보장된 여러 권리에 함부로 손대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가 담긴 이 운동은 미국 전역에서, 수많은 시민의 참여로 진행되고 있다.

박주연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기자, 책 〈누가 나만큼 여자를 사랑하겠어〉 저자.

글. 박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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