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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35(커버 B) 컬쳐

사소하게 연연하는 - 구독과 알고리듬이 지배하는 삶에서 탈출하는 법

2025.06.23

〈블랙 미러〉 시즌 7

〈블랙 미러〉 시즌 7 에피소드 1 ‘보통 사람들’

현재 수많은 플랫폼을 구독한다. 아마 구독으로 치면 대한민국, 아니 세계에서도 그렇게 남부럽지 않을 것이다. TV를 많이 봐야 하는 직업 때문이기는 하지만,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티빙, 웨이브를 구독하고, 종종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와 애플 TV+도 본다. 아이치이 같은 중국 미디어 플랫폼도 구독한 적 있다. 유튜브 프리미엄은 기본, 인터넷 저장 공간을 두 가지 정도 유료로 사용하고, 쇼핑이나 배달과 관련해서도 세 개 정도의 사이트에서 멤버십을 구독한다. 이전에는 전자책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했고, 타이어나 블랙박스와 같은 차량 관리 서비스도 구독할지 알아본 적도 있었다. 최근 들어 시작한 챗GPT 구독은 필수품으로 여겨진다. 여기 나열한 건 그나마 유료 서비스이고, 무료 구독 서비스는 셀 수도 없다.

구독의 문제점은 이들이 슬금슬금 서비스 요금을 올린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었던 서비스가 얼마 후엔 제한된다. 광고 없는 가벼운 요금제가 출시되면 원래 쓰던 요금제의 가격이 오른다. 처음에 한국에 8,690원이었던 유튜브 프리미엄 이용료는 2025년 현재 14,900원이다. 70%가 넘는 상승이다. 구독의 또 다른 문제점은 한번 시작하면 쉽게 그만둘 수 없다는 것이다. 동영상 플랫폼은 가족과 같이 쓰고 있기 때문에, 내가 끊어버리면 가족도 볼 수 없다. OTT 가장으로서 어깨가 무겁다. 광고 없는 스트리밍이나 빠른 배송에 익숙해지면 쉽게 돌아갈 수가 없다. 이런 서비스 없이도 잘 살아가던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 속에서도 희미하다. 이런 나의 삶에 의문을 크게 가져본 적도 없었다. 〈블랙 미러〉의 새로운 시즌의 첫 번째 에피소드, ‘보통 사람들 (Common People)’을 보기 전까지는.

〈블랙 미러〉 시즌 7 에피소드 5 ‘율로지’

〈블랙 미러〉는 현재에서 멀지 않은 근미래의 사회를 배경으로 하여 현대 기술 발달이 인류에게 일으킨 변화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영국의 SF 시리즈이다. 시즌 7에서도 그런 기본 설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은 제목 그대로 평범하게 사는 부부의 이야기이다. 남편 마이크(크리스 오다우드)는 공장 노동자로 성실하게 일하고, 아내 어맨다(라시다 존스)는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며 보람을 얻는 교사이다. 남다를 건 없지만, 서로 사이가 좋고 아이를 가질 준비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어느 날, 어맨다가 갑자기 뇌종양으로 쓰러지면서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빠진다. 좌절한 마이크에게 의사는 리버마인드라는 스타트업을 소개한다. 리버마인드는 손상된 신경 구조를 스캔하고 백업을 만든 후, 정보를 자기들의 클라우드 서버에 올려두고 개인의 뇌로 인지 기능을 전송하는 첨단 기술 서비스를 운영하는 회사이다. 마이크는 아내를 되찾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서비스 초기인 리버마인드를 한 달에 300달러라는 요금으로 구독하고, 어맨다는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둘은 한동안은 평범한 삶을 이어가지만, 우리는 이미 구독제 서비스가 어떤 형태로 발전, 혹은 쇠락하는지 잘 안다. 서비스는 발전하지만 요금은 올라간다. 이렇게 뇌신경 구독을 그만두면 지탱할 수 없는 ‘보통 사람들’의 결말은 충격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공포스럽다. 현대사회에서는 ‘보통’, ‘스탠더드’라는 표현이 실제로는 기본보다도 못하다는 뜻을 의미한다. 프리미엄, 럭셔리 등등이 등장하면, 보통의 삶은 저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블랙 미러〉 시즌 7 에피소드 3 ‘레버리 호텔’

도파민의 무한로밍

현대인의 삶을 이처럼 잘 요약하고 예측한 드라마가 있었을까? 〈보통 사람들〉에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구독제 플랫폼의 자본주의, 그들의 알고리듬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는 인간 인식, 가학적인 콘텐츠로 돈을 버는 개인 미디어, 의료 민영화의 문제 등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직면한 다양한 사회문제들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부부의 삶 속에서 선명하게 그려진다. 우리는 어맨다처럼 리버마인드에 우리의 뇌를 맡겨 스캔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보여주는 콘텐츠에 따라서 사고하고 행동한다. 정치 유튜브들이 우리의 삶을 지배했던 최근의 현실만 돌이켜보아도, 이제 인간이 자신이 지성과 이성으로 정보를 취사선택하여 판단한다는 것은 쉽게 기대하기 어렵다. SNS의 유행, 끝없이 떠오르는 동영상 추천, 맞춤형 광고의 쓰나미 속에서 나는 휩쓸려가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블랙 미러〉 시즌 7에는 의식 지배, 가상 현실의 개입이라는 시리즈 전체의 주제가 더 뚜렷해졌고, 자연스러운 서사 속에서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에피소드들을 만나볼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달리 표현하면 플랫폼 서비스와 알고리듬에 자아를 빼앗긴 아내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남편의 순애보이다. ‘베트 누아르’는 루머와 가십으로 생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수백, 수천 개의 평행우주에서도 치유되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레버리 호텔’에서는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고전 영화 속에서 실현되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에피소드이다. ‘장난감’과 ‘USS 칼리스터: 인피니티 속으로’는 인간이 만들어낸 게임 속 캐릭터가 주체성을 가질 때 생겨나는 사건이 살인과 맞물리며 미스터리적으로 펼쳐진다. 추모사라는 뜻을 가진 ‘율로지’는 고인과의 추억을 재생하는 의식 재현 시스템을 통해 평생 마음에 묻어두었던 옛사랑의 환희와 슬픔, 그리움을 기억해내는 이야기이다. 어떤 에피소드는 슬프고 따뜻하고, 어떤 에피소드는 차갑고 두렵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한때 오롯이 나만의 것이라고 느꼈던 인간의 감정과 의식은 이제 뇌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블랙 미러〉 시리즈는 2011년 영국의 채널4에서 시작되었고, 2016년 넷플릭스가 인수하여 시즌 3 이후로는 넷플릭스에서 방영된다. 프로듀서는 찰스 브루커로 동일하지만, 넷플릭스 인수 후의 〈블랙 미러〉는 시즌 3의 ‘샌 주니페로’ 같은 인상적인 에피소드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초기의 명확한 플롯을 잃고 점점 내림세를 그리는 듯했다. 하지만 시즌 7로 돌아온 〈블랙 미러〉는 오컬트적으로 신비하거나 복잡한 설정들을 간결하게 다듬으며 프로그램이 원래 지향했던 비판적인 질문들을 날카롭게 전달한다. 오랫동안 플랫폼이 생각하라는 대로 생각하고 느끼라는 대로 느껴왔던 우리의 뇌를 뒤흔든다.

다만 여기에도 어떤 아이러니는 있다. 넷플릭스와 같은 대형 플랫폼은 개별 창작자를 지원하는 것 같으면서도 구독자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거대한 자본을 투자해서 대중이 사랑하는 유명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쉬운 서사로 시청자의 도파민을 분출시킨다. 그 과정에서 배우들의 출연료가 뛰고, 자국 내 제작 시스템이 무너지고, 콘텐츠는 얄팍해지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 이 방식을 유지해야 그들이 계속 요금을 올려도 구독자들이 탈주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덕에 〈블랙 미러〉 또한 만들어질 수도 있었다. 넷플릭스의 운영 방침과 지향점을 가장 격렬하게 비판하는 드라마를 볼 수 있는 곳도 넷플릭스뿐이라는 사실이 참 얄궂게 느껴진다. 평범한 보통 사람인 내가 구독을 모조리 끊고 자연인으로 산다는 건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가끔은 TV와 컴퓨터를 끄고 고요 속에서 앉아 있을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서비스 쪽에서 돈을 내지 못한 나를 잘라버리기 전에 자율 의지로 이런 결단을 내릴 수만 있다면 말이다.

박현주

작가, 드라마 칼럼니스트.

글. 박현주 | 사진제공.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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