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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35(커버 A) 컬쳐

농민필설 - 절체절명의 기후위기 시대, 스마트팜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기

2025.06.23

나는 농부다, 여성 농부다, 청년 여성 농부다. 충남 아산에서 유기농 배 농사를 짓고 있다. 농민은 왜 ‘먹고살기 어렵다’고 느낄까. 먹거리가 풍성한 현대사회에서 한국의 농업 자급자족은 왜 이뤄지지 못할까. 도시인들은 배추, 과일값이 비싸다고 하는데 그 수익이 생산자인 농민들에게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전부를 다룰 순 없겠지만, 농촌 현지에서 농사를 짓는 여성 농부의 입장에서 솔직한 이야기를 담아보려 한다.


기후변화가 빠르고 급격하다. 빨라도 너무 빠르다. 그 변화를 가장 첨단에서 감지하는 사람은 농부다. 기상학을 연구하시는 분들이 아니라면 농부보다 변화를 빨리 체감할 수 있는 직업은 거의 없을 것이다. 농부는 잠들기 전, 잠에서 깬 직후 일기예보부터 들여다보고 산다. 농부들이 보는 지역별 세부 기상정보 사이트가 따로 있다. 지자체 농업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기상센터는 실시간, 시간별 정보가 상세히 제공되고 누적강우량, 누적기온, 병충해 예보 정보들이 제공된다. 정보를 확인하고 논밭으로 나와서 오늘의 햇볕, 온도와 습도를 직접 감지한다. 일기예보의 정확성이 떨어지고 나서는 매번 직접 감지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일기예보가 나의 농장의 환경을 정확히 알려주는 것이 아니기에 정확한 파악을 위해선 직접 나와봐야 한다.

인간은 감각이 둔해서 측량 기구들에 의존하지만 식물은 그 자체 내부에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정확한 기후 센서를 갖고 있다. 생리 사이클에 맞춰 적산온도가 몇 도가 되는지 칼같이 계산해 자신이 프로그래밍 된 방식으로 물을 올리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작물의 생명 활동을 따라 돌봐주기 위해서 농부는 부지런히, 민감하게 날씨를 확인해야만 한다.

2025년 4월 13일. 하얗게 핀 배꽃 위에 비가 오고 기온이 내려가더니 결국 눈이 쌓였다. 꽃은 조직이 여리고 민감해서 낮은 온도에 30분간 노출되면 열매를 맺는 능력을 상실한다. 꽃술이 죽어버려서 심부가 검게 변하는데 여기엔 아무리 꽃가루를 발라도 소용이 없다. 이런 상황을 냉해 피해라고 일컫는데 전국적으로 냉해 피해로 인한 과수 농가의 손해가 어마어마하다. 우리 농장도 아슬아슬하다가 올해 처음으로 심한 냉해를 입었다. 냉해는 아예 농사를 시작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심리적인 타격이 크다. 아랫지방부터 꽃은 빨리 핀 상태에서 돌발 저온이 덮쳐 꽃들이 다 죽었다. 한 해 두 해 정도 버티고 버티다 결국 오랜 세월 지어온 과수 농사를 포기하는 극단적인 사례가 급증했다. 한때 배의 고장으로 불린 나주에서는 이제 배 농사가 잘 되지 않는다. 나 역시 앞으로 언제까지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불안하기만 하다. 날씨가 나빠지고 이상해지기만 한다. 여건이 좋아진 해가 없다.

인류가 더 이상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된다는 설정은 SF 아포칼립스 장르의 도입부로 자주 등장한다. 너무 더워서, 너무 건조해서, 너무 추워서 농사가 불가능해지면 사람들은 대규모 기아 상태에서 떼죽음을 당하고 패닉에 빠지고 전쟁을 벌인다. 지구를 떠나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다른 행성을 찾기도 한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옛말이 틀린 것이 아니다. 인류가 자연을 파괴한 결과로 맞이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상황이다. 비농민 도시민들은 언제나 상품으로서 농작물을 만나기 때문에 감각하기 어렵지만 요즘도 기후변화로 수급이 어려워진 농산물들이 매대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왕왕 생기고 나서는 어느 정도 기후위기와 농사의 연관성에 대해 본격적으로 우려하기 시작한 것 같다.

신선한 채소가 사라진 세상

대략 10년 전쯤부터 농업계에 스마트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스마트팜의 당위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농사법으로서의 실내농업이다. 거대한 건물을 짓고 그 안에 시설들을 설치한 뒤 수경양액재배 트레이에 식물을 심고 LED 전구로 인공 조명을 쬐어주면 무럭무럭 자라나서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청사진이 아름답게 전시된다. 심지어 아파트형 축사도 등장한다. 지금의 축사보다 더 밀집된 수직 축사 안에 빼곡하게 가축들을 배치하고 사료를 먹여 키운다고 한다. 나라의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사람들,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스마트팜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처럼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그 말을 믿고 안심한다. 날씨가 나빠지면 실내재배로 농사를 짓자고 외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마트팜으로 인류를 먹여 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도 스마트팜은 어마어마한 자본이 투입된 글로벌 대기업의 통제 아래 국가·지자체 사업으로서 잘 가동되고 있다. 하지만 그 작물의 종류를 살펴보면 주로 쌈채소나 딸기, 오이, 토마토, 파프리카 등 수분량이 많은 채소류 위주이거나 화훼류에 한정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스마트팜에서 생산된 과일, 곡물, 축산품, 유제품은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섭취함으로써 열량을 보충하고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작물은 엄청난 광합성량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실내에서 인공광으로는 재배할 수 없다. 또한 대부분의 작물들은 수경재배나 포트재배가 불가능하고 양질의 토양에서 노지재배를 해야 한다. 인공광으로 채소류가 아닌 구황작물이나 곡식을 재배할 수 있는 광량에 도달하려면 엄청난 전기에너지가 소비되기 때문에 사실상 실현 불가능하다. 더욱이 생태계를 순환시키고 회복하는 데에 포장되지 않고 건물이 올라가 있지 않은 평활지인 농지가 환경보전에 굉장히 큰 역할을 한다. 실내재배나 실내사육은 병충해의 전염과 오염에 극도로 취약하기도 하다.

영화 〈설국열차〉처럼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저효율 초고비용의 실내재배가 필요할 것이다. 그 열차 안의 가장 앞 칸에 제공되는 신선한 농산물로 차린 밥상은 극소수 특권층의 아주 사치스러운 전유물로 묘사된다. 전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리는 규모의 기존 농업 형식을 대체할 만한 기술은 아직 존재하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확률이 높다. 생산성과 열량만 생각한다면 열차에서 배식되는 식용 벌레로 만든 영양바(?) 같은 것이 효율이 보장되는 미래 식량이 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런 것만 먹고 살 수 없지 않은가? 더 이상 스마트팜과 수직농장, 아파트형 농축산의 환상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지역의 농민과 비농민 도시민들이 한마음으로 ‘우리’가 되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농지와 농업, 농촌 환경, 식량 주권을 보전해야만 지금처럼 건강하고 맛있는 식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김후주

청년 여성 농업인.

글. 김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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