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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1 스페셜

최소한의 테크를 위한, 최대한의 가이드 (2)

2023.11.17

이 글은 '최소한의 테크를 위한, 최대한의 가이드 (1)'에서 이어집니다.

둘째 요령은 그 물건이 나에게 꼭 필요한지 판단이 서지 않을 때 유용하다. 자신에게 필요한지 왜 몰라 싶겠지만, 높은 확률로 그럴 수 있다. 테크 제품이라는 건 며칠 동안 실제로 사용해보지 않고서는 효용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연인이 되고 싶은 사람들은 서로 잘 맞는지 알기 위해 썸이라는 사전 학습 단계를 거친다. 쇼핑에서는 렌털이라는 제도가 있지만, 모든 전자 제품을 렌털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추천하는 방법은 중고 거래다. 나는 대학생 때 전자 제품을 마음껏 살 정도로 풍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고로 카메라와 스마트폰을 사고팔았다. 이 과정을 통해 내게 꼭 맞는 제품을 찾으려 했다. 중고 거래를 활발히 하면 돈을 아끼기에도 유용하다. 중고 거래 팁을 하나 더 말하자면, 조급증을 버리자. 마음이 급한 사람은 싸게 팔고 비싸게 산다. 여유가 있는 사람은 싸게 사고 비싸게 판다. 나는 후자다. 절대 싸게 팔지 않았다. 시세 가격으로 올려두고 전략적으로 인내하며 기다렸다. 그 덕분에 나는 중고 거래를 할수록 돈이 쌓였다.

싸다는 이유로 구매해도 될까
마지막 구매 요령은 질 좋은 물건을 고르는 방법이다. 인스타그램 디엠으로 물어보면 길게 답해줄 수 있지만, 지면의 한계로 여기서는 콕 집어 얘기해줄 수 없다. 핵심만 말하자면 이거다. 시장점유율이 높은 브랜드 중에서 고를 것. 시장점유율이 높다는 건 그만큼 소비자의 반응이 긍정적이라는 뜻이고, 가격도 적당하다는 뜻이며, 마케팅 비용을 많이 쓴 자본력 있는 브랜드의 제품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스피커를 살 거면 빙빙 돌아가지 말고 하만카돈을 사는 것이 무난하고,(뱅앤올룹슨이 눈에 들어오겠지만) 기계식 키보드를 살 거면 키크론을 사면 되고,(해피해킹이 눈에 들어오겠지만) 카메라는 소니를 후보군에 올려두면 된다.(리코 GR 시리즈가 갖고 싶겠지만) 여기서 언급하지 않은 브랜드 중에서 대중적으로 많이 팔리는 브랜드가 있다면 그걸 사도 된다. 사실 이 대목에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유명한 걸 사라는 것이 아니라 사실 싼 걸 절대 사지 말라는 뜻에 가깝다. 처음 들어보는 제조사의 저렴한 제품은 즐거움보다는 스트레스와 고통을 안겨줄 것이다.(그 끝은 중복 지출이다) 테크 제품에서만큼은 가성비 높다는 것이 그리 바람직한 건 아니다. 가격이 저렴하면 성능도 저렴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얘기한 걸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꼭 필요한 것인지 스스로 물어본다. 둘째, 중고 제품을 써보며 실제로 잘 쓰게 될지 검증한다. 셋째, 인지도 높은 브랜드의 제품을 산다. 처음 들어본 브랜드의 저렴한 제품은 절대 사지 않는다.

구매 요령은 여기까지 전수하고, 마지막 단락에서는 쇼핑을 인생에 비유하며 훈훈하게 마무리 짓는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 다행인 건 테크 제품을 살 땐 실패해도 괜찮다는 거다. 몇 번밖에 안 입은 호랑이 티셔츠는 중고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다. 팔 수는 있을 거다. 하지만 처음 살 때와 중고로 팔 때 가격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옷이라는 건 그런 거니까. 하지만 전자 제품은 다르다. 새 제품과 중고 제품의 가격이 많이 차이 나지 않는다. 구매 요령이라고 했지만 사실 구매 요령이 아니라고 말한 까닭이 바로 이거다. 테크 제품 쇼핑? 실패해도 된다. 뱅앤올룹슨 살까요, 하만카돈 살까요? 사고 싶은 거 사고 안 쓰면 팔면 된다. 살아보니 마음껏 실패해도 되는 일이 그리 많지 않고, 게임처럼 ‘SAVE’도 없으며, 재도전도 쉽지 않다. 그러니 실패해도 큰일 나지 않는 테크 제품은 사고 싶은 걸 사자.

소개

김석준
<디에디트> 에디터. 햄버거를 먹거나 전자 제품을 사용하고 리뷰를 쓴다. 가끔은 영화 리뷰도 쓴다. 88 서울 올림픽의 기운을 받고 태어나 2002 한일 월드컵에 다 써버렸다.


글 | 사진. 김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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