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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73 커버스토리

당신이 ‘맥엄마’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

2022.04.27 | <상수리나무 아래>가 클리셰를 개성으로 만드는 법

[© 사진제공. 리디]

“한국인들은 예로부터 존경의 의미로 머리 위에 갓을 쓰고 다녔고, 그것을 이름하야 갓수지라 부른다.” 리디에서 연재 중인 <상수리나무 아래>에 달린 어느 독자의 댓글이다. 로맨스 판타지(이하 로판) <상수리나무 아래>는 <희란국 연가> <우리 집에는 쥐가 있다> <미온의 연인> 등의 작품을 쓴 김수지의 여섯 번째 작품이다. 김수지 작가는 10대 때부터 소설을 연재한 것으로 유명한데 필력 좋은 작가로 소문나 있던 그가 방대한 중세 세계관을 펼쳐놓은 것이 <상수리나무 아래>다. 1부 연재가 2017년 1월에 시작해 2018년 3월에 마무리되었으며, 작가의 건강 문제로 중간에 1년 정도 휴재되었으니 초반부터 연재를 따라갔던 ‘상수리’ 덕후라면 5년 동안 이 세계관에 발목 잡혀 있는 셈이다. 물론 주인공 맥시밀리언(이하 맥시)과 리프탄이 사는 아나톨 주민임을 자처하는 독자들은 이 판타지 중세 세계 속을 유영하며 그 안에 사는 것을 기꺼워하지만 말이다.

맥시는 어떤 여자인가
상수리나무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나무로 ‘김수지 인터뷰집’에서 작가는 “중세 유럽을 모델로 하면서 성경의 구약에서 따온 제목”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마법사와 기사가 등장하며, 주로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로판에도 여러 가지 클리셰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선 결혼 후 연애’다. <상수리나무 아래>의 맥시와 리프탄 역시 정략결혼으로 처음 만나고 리프탄은 결혼과 동시에 드래곤을 물리치러 위험한 원정을 떠난다. 첫날밤만 치르고 먼 길을 떠났던 남편이 3년 만에 돌아온다는 소식을 전하며 아버지는 맥시에게 경고한다. “이번에도 멍청하게 일을 그르치거나 이혼을 당하면 너를 가만두지 않겠다”. 모멸과 협박을 당하는 여주인공의 모습으로 장대한 소설은 첫 장을 연다. 우리의 주인공 맥시는 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자 주인공은 아니다. 주눅 들어 있고, 뭐든지 부정적으로 해석하며 유약하고 소심한 성격이다. 게다가 그녀의 아버지인 크로이소 공작이 딸을 대하는 태도는 불쾌하기 그지없다. 말을 더듬는 딸의 장애를 지적하고 폭력을 일삼는다. 3년 만에 다시 만난 남편 리프탄은 아내와 함께 자기 영지로 돌아가고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자 맥시는 점차 성장한다.

남주가 여주를 왜 사랑하는 거야?
천민 출신이지만 전 대륙에서 최고의 기사로 추앙받는 리프탄 칼립스는 가녀리고 깡마른 맥시와는 대조적으로 넓은 어깨에 큰 키, 야성적이며 매력적인 외모의 남성이다. 절대 다정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맥시를 귀하게 여기는 리프탄 덕분에 맥시는 점차 자신감을 갖게 된다. 맥시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1부에서는 리프탄이 맥시를 왜 그렇게까지 사랑하는지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극 중 맥시와 관련된 일이라면 질투가 심해서 ‘맥친놈’(맥시에게 미친 놈)이라고 불리는 리프탄이 왜 이렇게까지 맥시를 사랑하는지 그 이유는 외전에서야 실타래가 풀린다.
앞서 설명했듯이 소설 초반에 맥시의 말 더듬는 버릇은 매우 심각한 상태로 묘사된다. 맥시는 하나의 문장을 끝까지 마무리하지를 못한다. 아버지인 크로이소 공작뿐 아니라 여동생과 하인들까지도 맥시를 무시하고 학대한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맥시는 달라진다. 말을 더듬지 않기 위해 매일 연습을 하고, 영지 내에 마법사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치유 마법을 배우며 성장한다. 독자들이 ‘맥엄마’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신의 아름다움조차 발견하지 못했던 여성이 차츰 재능을 꽃피워가는 과정을, 독자들은 응원할 수밖에 없다. <상수리나무 아래>의 팬들이 ‘이 구역의 맥시맘’을 자처하는 이유다.
맥시와 리프탄은 유년 시절 성장 과정에서 모두 부모에게 학대받는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했던 남녀가 서로의 가슴팍에 완전히 밀착한 채 편안히 눈을 감고 있는 소설의 표지는 이 로맨스가 구원 성장 서사임을 보여준다. 특히 아버지 앞에만 서면 말을 심하게 더듬고 고개도 들지 못했던 맥시가 아버지와 맞서 법정에서 하는 서술은 비슷한 상처를 가진 여성들을 위로한다. 한없이 크고 무섭기만 했던 아버지가 저렇게 작고 늙은 노인에 불과했나. 이제 리프탄이라는 든든한 고향이 생긴 맥시는 아버지 앞에서 떨지 않는다.

인간의 선함, 사랑을 믿는다
<상수리나무 아래>는 ‘고구마’ 구간이 길기도 하고, 초반에는 부부의 침실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 반면 회를 더할수록 연애하는 장면이 축소된다. 맥시와 리프탄은 서로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숨기는 비밀 때문에 오랫동안 오해하고 갈등한다. 심지어 1부는 맥시가 리프탄을 지키기 위해 이별을 선택하며 마무리된다. 마법사들의 학교인 세계탑으로 멀리 떠나는데, 세계탑에서 마법사 수련 기간은 기본이 3~4년이다. 그러니 맥시와 리프탄은 3년이나 떨어져 지내야 한다. 로맨스 소설에서 주인공들을 떨어트리고 어떻게 재미를 구현할 것인가. 2부는 그런 한계 속에서 시작되었고, 여기서 맥시는 더욱 훌륭한 마법사로 성장한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로맨스임과 동시에 맥시의 성장 서사인 셈이다. 반면, 리프탄은 맥시가 강해지길 원하지 않고 그저 자신이 보호하고 싶어 한다. 2부에서는 리프탄이 맥시를 자신의 연인이자 동료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전개되는데 리프탄의 그러한 변화는 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설렘 포인트로 다가온다. 아내를 보호 대상으로 여겼던 남성이 아내를 자신과 동등한 동료로 받아들이는 것이 리프탄의 성장이다.
2부 143화에는 맥시가 리프탄에게 “당신이 나보다 적합한 상대와 결혼했다면 좋지 않았겠느냐.”고 질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리프탄은 화를 참으며 답한다. 네가 그토록 많은 상처를 입고도 다른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싸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나를 얼마나 매혹시키는지 알아?” 맥시가 리프탄에게 숨기고 싶어 했던 비밀은 자신이 사랑받고 자란 공작가의 영애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맥시는 1부에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건 나 자신”이라고 고백했지만 2부에서는 달라진다. 가스라이팅을 당해 자기를 혐오하던 여성이 자신을 긍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사랑’이라는 강력한 염원이 발동한다.
복잡한 마법 세계와 중세 시대 대륙에 대한 치밀한 묘사, 초반에 깔아두었던 모든 복선과 주변 인물들의 서사까지도 완벽히 떡밥을 회수하는 ‘갓수지’의 필력은 모든 독자를 ‘상수리’라는 마법으로 휘감는다. 그리고 우리가 ‘상수리’에 매혹되는 이유는 그곳이 현실과는 무관한 중세 마법 세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맥시는 악인에게 학대받았음에도 선한 마음을 버리지 않았고 리프탄은 그런 맥시에게 첫눈에 반한다. 우리는 안다. 살아남기 위해 악인이 되는 사람에게 자기 불행이란 얼마나 좋은 변명거리인지. 하지만 과거를 극복하고 인간의 선함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사랑의 선함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요, 라고 맥시와 리프탄은 회마다 행동으로 보여준다. <상수리나무 아래>는 사랑이 스스로를, 세계를 구원하는 과정을 그린다. 거기에는 괴물과 좀비, 악당과 협잡꾼도 등장한다. 마법으로 인간을 선하게 만들 순 없다. 하지만 맥시와 리프탄이 성장하고 서로를 구원하며, 그 지극하고 열렬한 사랑으로 이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싸우는 모습은 우리를 설레게 한다.

※ 더 많은 사진과 기사 전문은 매거진 '빅이슈'273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글. 김송희 | 이미지제공. 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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