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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73 컬쳐

식물 병원 허밍그린 처방전

2022.04.22

[© 양경필]

생명을 들이는 것에 관한 깊은 두려움. 17년을 함께한 반려동물 뽀미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이후 살아 숨 쉬는 존재를 자발적으로 삶 안에 들이기란 불가능했다. 책임감과 미안함, 그리움이 뒤섞여 단단한 경계막을 쳤기 때문이다. 그건 식물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걱정하지 마. 이건 웬만해서는 절대 안 죽어. 딱 네가 기르기 좋은 식물이야.”
지난 2월, 설 연휴를 맞아 본가에 들렀다가 돌아가는 날, 엄마는 기어이 내 손에 화분 하나를 들려줬다. 본가의 거실에는 탐스럽고 도톰한 이파리의 화분들이 가득했는데 엄마는 그 생명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살피는 것을 즐거워했다. 하지만 나는 그 생명들이 부담스러웠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줄기와 잎이 자유분방하게 자란 화분 하나를 쓱 내밀었다. ‘이건 저 스스로 자라는 애야. 집에 식물 하나는 있어야지.’라는 말을 덧붙이며. 이미 앞서 내 키만 한 고무나무와 해피트리, 난과 금전수 화분을 저세상으로 보낸 나였다.

식물에게 정이 들다
내심 엄마의 말에 기대를 걸었던 것일까. 이참에 ‘식물 저승사자’의 오명을 벗고 싶었던 것일까. 햇빛 잘 드는 곳에 엄마가 준 화분을 두고, 주기적으로 화분을 돌려가며 광합성의 형평성까지 챙겼다. 식물에게 바람은 운동이라던데. 나도 안 하는 운동을 시키겠다고 실내 환기도 참 열심히 했다. 물을 주면 어김없이 잎들이 반짝였고, 햇빛을 받은 줄기는 1분 만에 0.1㎜씩 자란 듯 보였다. 왠지 뿌듯함이 차올랐다. 엉켜 있는 듯 자유분방하게 자란 가지와 잎들을 보며 ‘너른 들판을 제멋대로 뛰어다니는 소녀 같구나.’ 흐뭇하기도 했다. 맙소사, 정이 든 것이다.

아프다, 식물이
잠깐 잊었지만 나와 식물의 이야기는 여태껏 해피엔딩인 적이 없었다. 생생하던 푸른 이파리들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건 일주일 전. 군데군데 누렇게 뜬 잎도 보이고 전체적으로 줄기들이 바닥을 향해 축 처졌다. 생명이 꺼져가는 모습은 왜 이다지도 슬프고 처량한가. 그래, 올 것이 왔구나. 이렇게 또 화분 하나를 보내는구나. 웬만해선 죽지 않는 식물이라는데 나는 정말 웬만했구나. 죄책감이 들어찼다.

병원에 간 식물
식물상담소 허밍그린을 찾아간 건 일종의 오기였다. 내 이 식물을 기필코 살리리라.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내 공간에 생명을 들이는 건 영영 불가능할 거란 생각도 스쳤다. 몇 달 전, 속해 있던 커뮤니티에서 식물상담소 허밍그린을 알게 된 것은 운명이리라. 포털 사이트 예약을 통해 바로 진료 시간을 잡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예약 시 작성해야 하는 양식에 상담할 식물의 종류를 적는 난이 있었다. 내가 이 식물의 종류조차 모른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애정을 가지고 돌본다 여겼지만, 종류도, 특성도 모른 채 무작정 물과 햇빛과 바람만 있으면 된다고 게으르게 생각했던 것이다. 여하튼 엄마에게 전해 들은 이 식물의 이름은 스킨답서스. 그렇게 몇 가지 정보를 기입하고는 다음 날 축 처진 화분을 데리고 식물상담소 허밍그린을 찾았다.

[© 양경필]

식물의 이야기를 듣다
“마르고 축 처지는 건 식물이 사람에게 보내는 신호 같은 거예요. 나 목말라 하는 거죠.” 화분에서 식물을 꺼내 뿌리와 잎, 줄기 등을 찬찬히 들여다보던 이강미 대표가 말했다. 이럴 때는 죄책감을 가지거나 걱정할 필요 없이 물을 흠뻑 주면 된다는 것. 내가 호들갑을 떤 것에 비해 처방은 오히려 분명하고 단순했다. 심지어 스킨답서스는 수경식물처럼 저면 관수법(분 재배나 온실 재배에서 모세관수에 의하여 밑에서부터 물을 흡수하게 하는 방법)이 가능한 식물이라 물이 충분히 필요하다고. 화분에서 몸체를 꺼내고 보니 뿌리가 다 드러난 상태로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다. 조금 더 깊고 넓은 화분으로 분갈이도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영양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잎이 누렇게 뜨거나, 화분 흙이 더 빠르게 마르며 수분 부족 현상이 생기기도 한다고. 도매상에서 출하된 상태의 화분을 여태껏 그대로 쓰고 있었던 것이다. 올바른 생장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으니 식물 입장에서 보면 나는 저승사자가 분명했다.
허밍그린 이강미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스킨답서스는 ‘악마의 덩굴’이라는 별칭이 있단다.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도 죽지 않고 끊임없이 자라서 붙여진 거라고. 웬만해서는 죽지 않는다고 말한 엄마의 이야기가 틀리지는 않았구나. 물을 먹고 금세 생생해진 ‘악덩’(악마의 덩굴) 스킨답서스를 보고 있자니 안도의 숨이 나왔다.
“물을 주는 빈도는 2~3일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이렇게 정해진 기준은 없어요. 종류가 같은 식물이라도 각각 놓인 환경에 따라 물을 주는 주기와 양이 다르죠. 바람은 잘 통하는 곳에 있는지, 햇빛은 어떻게 받고 있는지, 공중 습도가 부족하지는 않은지 식물이 놓인 환경을 살피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다음 식물이 어떤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지 귀 기울여 들어보는 거죠.”
상담하는 동안에도 니트릴 장갑을 낀 이강미 대표의 손은 식물 곳곳을 사려 깊게 진단하고 있었다. 물을 너무 많이 머금어 과습 된 뿌리가 얼마나 무른지, 영양분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면 줄기가 어떻게 텅 비는지 전문적이지만 문외한인 나도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 이어졌다. 이강미 대표는 디자인을 전공한 뒤 몇 년간 가죽 공방을 운영했었다고 한다. 공방 이웃들의 식물을 살려내는 게 소문이 나 공방 한 켠 A4 종이에 식물병원이라고 써 붙인 게 지금 식물상담소의 전신이다. 어릴 때부터 식물을 좋아하고 텃밭에서 가족과 식물을 기르는 게 취미였다고 하지만 이후 공방을 접고 방송통신대학교 농학과에 들어갔으니 이미 취미의 영역은 넘어서 셈이다. 식물 의학을 전공하며 그간의 경험들을 명확한 이론하에 정리할 수 있게 되었고 새로운 이론과 지식이 빈 카테고리를 채웠다. 분류와 정의가 끝나니 응용으로 이어졌다. 식물에 대한 사랑과 전문적인 이론, 지식을 바탕으로 식물상담소 허밍그린은 4년째 아픈 식물들을 진료 중이다.

식물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
“식물을 여럿 키우기보다 우선 하나만 정성껏 돌보는 걸 추천해요. 그 하나와 교감하며 계속 대화를 나누는 거죠. 자연이 주는 위로가 분명히 있거든요. 아, 그리고 식물의 종류(유통명)만 아는 것에 그치지 말고 학명을 꼭 검색해보세요. 학명을 검색하면 그 식물이 속한 종, 생물학적 특징 등을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어요.”
허밍그린에서 치료를 받고 돌아온 후, 나의 스킨답서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 생생한 잎과 줄기를 드리우며 거실 창가 옆에서 나른하게 광합성 중이다. 다시 기운을 차린, 저 녹색의 생명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스킨답서스의 학명은 스킨답서스 아우레스(Scindapusus aureus) / 에피프렘넘 아우레넘(Epipremnum aureum). 외떡잎식물 천남성목 천남성과에 속하는 덩굴성 관엽식물이다. 너, 고향이 태평양 솔로몬제도였구나. 알면 알수록 녹색 잎과 저 무성한 줄기가 더 또렷해진다.

※ 더 많은 사진과 기사 전문은 매거진 '빅이슈'273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글. 김선미 | 사진.양경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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