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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40 에세이

영화를 이야기하는 방법들

2021.01.29 | 유튜브 트렌드

유튜브에 관한 글을 (믿기지 않지만) 벌써 1년 동안 쓰면서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유튜브와 영화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영화를 보는데 유튜브가 미친 영향에 관한 이야기다. 나를 비롯한 수많은 ‘스물 몇 살’ 사람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을 텐데, 우리의 영화와 관련한 개인적 경험은 대부분 온라인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그러니까 추석이나 설날에 가족과 극장에 가서 보거나 학교에서 학기 말에 단체로 극장에 가서 본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영화를 이것저것 찾아보기 시작한 경험을 말하는 것이다. 썩 당당하진 않지만 나는 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 번은 이용해보았을 거라고 감히 믿는 토렌트라는 어둠의 경로를 통해 영화를 찾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름의 취향을 기른 곳은 유튜브였다. 이런 생각을 하게 해준 영상 비평 플랫폼 ‘마테리알’에 실린 글 <반면교사!>의 작성자 김태원 씨는 블로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어찌 됐든 우리는 시네마테크나 지면이라는 오프라인 공간이 아닌 온라인 공간에서 취향을 길렀다. ‘마테리알’의 다른 글에서는 영화에 대한 활자를 통한 비평의 한계와 오디오나 비주얼을 통한 비평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도 오가고 있다. 물론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겠지만 요지는 어느 정도 인정할 만하다. 영화는 영상의한 종류인데, 이를 활자로 이야기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 않은가? 이제까지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활자를 통해 영화를 이야기했다면, 너나없이 손바닥 안에서 온갖 영상물을 볼 수 있는 지금은 그 이야기가 영상으로 옮겨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다시 내 경험으로 돌아가자면, 진지하게 공부한답시고 책을 들춰 보기 시작한 이후로 내가 얼마나 다양한 영상을 보며 영화를 향한 관심을 길렀는지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영상의 대부분은 진지하고 권위 있는 사람이 영화에 대해 ‘해설’하고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영화를 즐기고 감상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다소 개인적이긴 하지만, 꽤 유명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믿는 채널을 세 곳을 소개한다.

Every Frame a Painting
특정 감독이나 영화의 스타일을 몇 가지 장면에 집중해서 정리하는 비디오 에세이 시리즈다. 아쉽게도 채널을 운영하던 사람들이 본업이 있어서 2017년 이후로 업로드가 중단되었다. 편집을 전문적으로 하는 토니 주(Tony Zhou)와 애니메이터 테일러 라모스(Taylor Ramos)가 협업하며 영상을 제작했다고 한다. 토니는 채널의 종료를 알리는 글에서 두 사람이 채널을 시작한 계기에 관해 말한다. 두 사람 모두 시각 매체를 다루는 사람들인데, 직장에서 시각 매체를 다루지 않는 동료들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유튜브 채널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요즘은 그리 드문 경우가 아니지만, 거의 모든 영상의 자막 목록에 한국어가 있다. 그래서 국내에서도 꽤 유명한 듯한데, 영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알려진 채널이다. 한국어 자막이 없는 영상이라도 하단 참조에서 원문을 찾아 자막을 자체적으로 제작할 수 있다. 영상이 아주 긴 것도 아니고(대부분 10분 이내다), 크게 어려운 내용을 다루는 것도 아니지만 영화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도움이 될 법하다. 하단 참조에 출처뿐 아니라 더 보면 좋을 자료들을 추천해놓았다. 이 채널을 처음으로 발견했을 때 솔직히 감동했다. 이런 훌륭한 자료를 무료로 유튜브에 제공해주신 두 사람 모두 적게 일하고 많이 버시길 바란다. 이 채널이 종료돼 슬픈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면, 비슷한 채널로 ‘Now You See It’이나 ‘The Royal Ocean Film Society’를 추천한다. 전자가 한국어 자막이 더 많고, 후자는 영화의 개봉 10주년을 기념하며 해당 영화를 반추해보는 시리즈가 탁월하다.

Ambient Media Tracks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믹스해서 20분 정도의 유려한 음악으로 재구성하는 채널이다. 영화뿐 아니라 게임 사운드트랙도 종종 다룬다. 다만 운영자의 취향이 확고해 전자음악을 매우 좋아하고 호러나 공포영화에 애착이 큰 것 같다. 그래서 종종 썸네일이 아주 무서운데, 음악이 굉장히 좋으니 겁먹지 않아도 된다. 몇몇 코멘트에서도 요청하듯, <문라이트>(2016)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 같은 영화의 사운드트랙도 믹스해줬으면 좋겠는데, 항상 친절하게 ‘생각해볼게요!’라는 댓글을 달고 사라진다. 현재 올라와 있는 것 중에서는 <미드소마>(2019) 믹스를 잘 듣고 있다. 이렇게 영화에 나오는 미디어를 ‘갖고 노는’ 장르가 유튜브에서 번창하는 듯하다. ‘Cine Graphe’라는 채널에서는 에릭 로메르 영화에서의 카페나 여름 풍경, 프랑수아 트뤼포 영화에 나오는 편지 장면을 모조리 모아서 하나로 편집한 슈퍼 컷 영상을 업로드한다. ‘스크린플레이드(Screenplayed)’라는 채널에서는 유명한 영화 장면 밑에 극본을 동시에 재생해 영화와 극본을 비교하면서 볼 수 있는 짧은 영상을 올린다. 이런 영상은 대부분 길이가 짧은 편이고 보기에도 편하다. 사실 영화의 콘텐츠를 바탕으로 새로운 창작물을 만드는 것이 ‘독창적’인 활동으로 인식되지 못하는 터라 저작권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 짧은 길이의 영상만 제작할 수 있는 것이다. 논란이 많은 주제이긴 하지만, ‘갖고 노는’ 장르의 영상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그 독창성이나 기여도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싶다.

Jack Howard
잭 하워드는 이 리스트에서 유일하게 ‘유튜버’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다. 2000년대 중·후반 청소년 시절부터 친구와 함께 웃기려고 만든 영상을 올리다가, 브이로그의 전성기이던 2010년대 초반에는 브이로그를 찍어 올리고, 슬슬 영화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기 시작한 유튜버다. 잭 하워드가 브이로그를 찍던 시절은 영국 유튜버가 부상하기 시작한 시절과 겹치는데, 알고리즘의 파도를 타고 나 또한 자연스럽게 그의 브이로그를 정기적으로 챙겨 보게 됐다. 그러다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들(My Favourite Films)’이라는 브이로그식 리뷰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처음으로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 열정이나 ‘덕심’으로 불리는 것들이 전염성이 짙다고 느꼈다. 무릇 유튜버들이 그러하듯, 원래 말을 잘하는 사람인 건 알고 있었지만 내가 알지도 보지도 못한 영화에 대해서 침 튀기면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저 영화 참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물론 다시 보면 잭이 이따금 아는 척하는 것 같아 다소 재수 없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영화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사람이 뿜어내는 매력을 여전히 발견할 수 있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닌지, 몇 년 뒤에 잭은 <가디언>의 영화평론가 마크 커모드의 팟캐스트 ‘커모드 온 필름(Kermode on Film)’에 정기적으로 출연하기 시작했고, 크리스토퍼 놀란이나 라이언 존슨 같은 감독들을 인터뷰하기에 이른다. 내가 이룬 업적도 아닌데 이상하게 뿌듯하다. 여담이지만, 특유의 카리스마 때문인지 연기를 매우 잘하는 편이다. 잭 하워드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영국 유튜버들이 유난히 영화에 관심이 많아서, 종종 단편영화를 같이 제작하곤 한다. 특히 버티 길버트가 감독하고 잭 하워드가 배우로 출연한 <록스 댓 블리드(Rocks That Bleed)>(2015)를 꼭 보길. 기이하게도 요즘 시국과 맞아떨어진다.


글・사진제공 문재연
영화 관련 팟캐스트 ‘씨네는맞고21은틀리다’에서 수다를 떠는 것으로
모자라 브런치에서 puppysizedelephant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커서 뭐가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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