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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40 인터뷰

연희동의 숨은 노랑 찾기 2

2020.12.15 |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처음 독립하면서 어떻게 연희동에 살게 됐어?
한곳에 오래 살면서 ‘고인 물’이 된 기분이었어. 난 서울에서 자랐지만 상경한 친구들이 흔히 말하는 서울에 대한 로망이랄까. 대학생이 된 후 자주 가던 종로, 마포, 용산 중 한 곳에 독립하고 싶었어. 대학만 가면 근사하게 독립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그때는 내가 이 동네에 살아서 이렇게 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어. 그래서 더욱 다른 동네에서 살아보고 싶더라. 집을 구한 뒤에 가족들 몰래 야금야금 이사했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스로 하나부터 열까지 결정한 일이라 큰 용기가 필요했어.

네 집이 네가 좋아하는 색깔을 잃지 않게 하려는 네 모습이 떠올라.
종로, 마포, 용산을 거쳐 이 집이 아홉 번째야. 발품을 아주 많이 팔았어. 가격에 비해 형편없는 방이 많더라고. 이 집을 구하기 직전 보광동에 집을 보러 갔을 때는 터무니없는 집 상태를 보고 그만 포기하려고 했지. 그러다 한 친구가 인터넷에서 이 집을 보고 나랑 잘 어울린다며 권하기에 가보니 유니크한 구조가 마음에들더라. 창문이 난 아기자기한 주방이나 싱글 침대가 쏙 들어가는 공간을 보고 바로 여기다 싶었지. 집 자체가 예쁘니까 인테리어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물건으로 채웠어.

서점에서 오래 일한 네가 책장을 정리하는 방법이 어떨지 궁금해.
가장 먼저 책들의 높이를 가지런히 맞춰. 정갈하게 놓기 위해 자주 솎아내지. 그리고 국가별, 작가별로 칸마다 섹션을 나눠. 한눈에 들어와야 내 책장 같아. 책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만화책인데 학창 시절 추억이라서 못 비우고 있어. 애정에 유통기한이 있지만 최대한 유지하는 게 책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

만화책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어?
내 첫사랑 상대가 만화 <원피스>를 사서 읽는 모습을 보고 반했어. 우리 어릴 때는 보통 만화책을 빌려서 읽었잖아. 나도 만화책을 사서 읽으면서 그 친구의 관심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었지.

집에서 시간을 보낼 때 너는 쓰는 사람보다 읽는 사람에 가까울 것 같아.
내가 순수한 독자라면 쓰고 싶은 욕망도 없겠지. 하지만 한때는 나도 문학을 공부했으니까 쓰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어. <내일의 연인들> 같은 좋은 소설을 읽으면 ‘왜 이렇게 쓰고 싶지?’ 하는 생각이 들어. 결국 안 쓸 거 아는데. 나 안 쓰고 싶은 거 맞고. 정말 안 쓸까? 이대로 써보면 잘 써지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

이런 겸허한 말과 태도는 오랜만에 듣고 보는 것 같아.
학교 다닐 때 시 선생님에게 “쓰는 건 어려우니 좋아만 하면 안 되나요?” 하고 투정 부린 적이 있어. 선생님이 정색하시며 “잘 읽기는 쉬운 줄 아니!” 하셨던 게 잊히지 않아. 읽는 것도 시간과 관심이 있어야 가능하잖아. 과연 내가 서점에서 일을 안 했어도 꾸준하게 책을 곁에 두고 좋아할 수 있었을까.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자세에 대해 생각하게 돼.
영원한 독자가 되는 것도 어렵다고 생각해. 나는 독자로서 삶을 영위해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어. 그러다가도 너무 좋은 책을 읽다 보면 또 되게 쓰고 싶어. 뭐가 더 있지 않을까. 계속 나 자신과 싸우고 있는 것 같아. 요즘의 나는 체념한 듯해. 세상에 읽을 게 이렇게 많은데 내가 뭘 더 보탤 수 있을까?


정규환
사진 이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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