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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37 인터뷰

홍은동의 라라랜드2

2020.10.30 |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 이전 기사 '홍은동의 라라랜드 1'에서 이어집니다

홍은동엔 어떻게 이사 오게 됐어?
대학교에 들어오면서부터 자취를 했어. 처음엔 일산에서 시작했지. 서울보다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해서 방이 두 개나 있는 곳에서 살았어. 그러다가 공연 등으로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며 학교 근처 오피스텔로 이사했는데 삶의 질이 떨어지는 걸 느꼈어. 내가 공간 구획에 재능이 없어 그랬는지 원룸이 답답하게 느껴지더라고. 그 집 계약 기간이 끝나 새 집을 알아보다 홍은동에 오게 됐어. 사실 처음부터 이 동네를 생각한 건 아니야. 무엇보다 깨끗하고 자는 공간과 먹는 공간이 나뉘어 있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해. 너도 알다시피 나도 이 동네에 4년 정도 살았잖아. 이 동네를 많이 아꼈어.
주변에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이 많아서 좋아. 그리고 홍제천이 바로 앞에 있어서 헬스장이 문을 닫으면 종종 나가서 뛰어. 교통이 조금 불편하지만 감수할 정도고. 근처에 대학교도 있어서 싸고 맛있는 음식도 많아. 서울인데 약간 변두리 느낌.

나도 그런 한적함과 여유가 홍은동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했어. 천변을 따라서 1990년대에 많이 볼 수 있던 넓은 주차장이 딸린 가든 음식점 같은 게 쭉 늘어서 있잖아. 근처 연남동이나 연희동에서는 하나씩 없어지고 있는데 이 동네엔 아직 있어. 집에선 주로 뭐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지 궁금해.
나는 무시무시한 집순이야, 집 안에서도 한자리에만 머무는.(웃음) 이 소파 한쪽에 오래 앉아 있어서 가죽이 벌어졌어. 집중해서 작업할 수 있는 큰 테이블도 꼭 앞에 두는데 보통 음악을 듣거나 공부하거나 공상을 해. 항상 한자리에 있고 나머지는 다 지나치는 곳이야. 집에 특별한 콘셉트도 없고 딱히 예쁘진 않지만 아끼는 물건들이 곳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소중해. 요즘은 사생활의 영역이 점점 줄어들어서 소셜미디어에 예쁜 집을 자랑하는 것도 라이프스타일의 일부가 됐잖아. 이 집의 소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코 악기인 것 같아. 이건 내가 가야금을 전공으로 정하고 처음 산 가야금이야. 뒤쪽에 보면 귀여운 이름표도 붙어 있어. 그리고 이건 이번에 생일 선물로 받은 우쿨렐레인데 소리가 참 예뻐. 그리고 옷장에 중학교 때부터 쓰던 장구가 있어. 지금 10년째 쓰고 있어서 가죽에 손때가 묻었어. 그리고 내가 정말 사랑하는 친구이자 밴드 ‘차세대’의 기타리스트인 (이)준형이가 선물로 준 기타도 있어. 악기 장터에서 산 중고 베이스 기타도 있네. 내가 목소리가 낮은 편이라 그런지 낮고 편안한 소리가 나는 악기에 끌리더라고.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생각나네. 독립하고 가장 달라진 점은 뭐야?
부모님을 무척 사랑하지만 독립하고 나서 더 사랑하게 됐어. 이 정도 거리에 떨어져 살 때 애틋한 마음이 극대화돼. 같이 살 때도 좋았지만 지금이 더 좋아. 부모님과 마찰이 생기는 빈도와 단체 채팅방의 온도 차이에서 느낄 수 있어. 아무래도 가치관이 다르다 보니 부모님이랑 붙어 있으면 종종 다투게 되잖아. 하지만 떨어져서 사니까 그리운 거 있지. 가끔 만나면 서로 좋은 이야기만 하게 되고 좋은 모습만 보여줄 수 있어 좋더라고. 또 내가 애정 표현에 굉장히 서툰 편인데 요즘은 많이 하게 됐어.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어느 정도 거리는 꼭 필요한가 봐.

상대방을 진심으로 아낀다는 생각이 들어. 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성숙한 마음. 민영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은 어떤 거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걸 선물해줄 수 있는 삶. 자신에게 맛있는 걸 먹이고 마음에 드는 옷을 입히는 것. 요즘은 안정적인 일을 해서 고정적인 수입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요즘 뭐에 꽂혀 있어?
요즘은 운동에 빠졌어. 운동을 하는 동안은 아무 생각 없이 솔직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 특히 요즘은 세상에 내 맘대로 되는 게 없잖아. 적어도 몸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스쿼트를 하며 60kg을 들 때 쾌감이 있어. ‘나보다 무거운 걸 들다니 멋지군.’ 무게를 조금씩 늘리면서 뿌듯해. 땀 흘리는 것도 좋고, 허벅지에 통증이 느껴지는 것도 기분 좋아. 하지만 식단 관리는 하지 않아. 먹는 즐거움도 놓칠 수 없거든.

삶을 즐길 줄 아는 민영이가 어떻게 나이 들고 싶은지 궁금해.
윤여정 배우처럼 곧게 나이 들고 싶어. 곱게 말고 곧게. 그분의 말하는 태도가 아주 멋지더라고. 강단 있으면서도 열린 마음. 사람을 존중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살면서 쌓은 경험으로 상대의 실수나 아픔을 감싸주면서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어. 그리고 지금보다 부드럽게 나 자신을 안아주고 싶어.

이 집에서 보는 계절은 어때?
길 건너편에 큰 벚나무가 있어. 봄이 한창일 때 벚꽃이 곱게 만발한 모습을 봤어. 내년에도 기대돼. 그리고 거실 창으로 비 내리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게 좋아. 이렇게 창이 큰 집은 처음이라 고양이처럼 계속 쳐다보게 돼.

홍은동 집 옥상에선 서울의 서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중에서도 도심을 순환하는 하이웨이가 시원하게 한강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 마치 은하수를 보는 기분이 들어요. 어딘가로 향하는 자동차 불빛의 행렬이 마치 도시를 흐르는 별들 같아요. 그리고 잔재주가 많은 친구가 꿈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집에선 반짝이는 음악 소리가 늘 들릴 테지요. 그녀의 수많은 재주가 세상과 만나 번쩍하고 섬광이 튈 때를 상상하면 우주가 탄생하는 순간처럼 앞으로도 늘 아름다움의 연속일 거예요.


·사진 정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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