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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37 컬쳐

안심되는 집, 향을 머금은 곳 '코주'

2020.10.31 | 서울 동네

하루의 마감은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며 시작된다. 친숙한 냄새와 공기가 느껴지면 이내 안도한다. 나는 요즘 그 안도감의 재료가 될 무언가를 찾는 중이다.

무색무취의 공간
늦은 저녁 불 꺼진 집에 들어올 때 나는 약간 두려움을 느낀다. 문이 닫히고 현관의 조명을 켜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고작 2초 남짓이지만, 빛 없는 까만 공간을 마주하면 순간적으로 낯선 느낌이 든다. 어둠의 문제만은 아니다. 며칠간 집을 비웠다 돌아올 때도 현관에서 느끼는 낯섦은 여전했다. 이 집에서 지낸 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유가 뭘까? 시간이 더 필요한 걸까, 아니면 다른 문제일까? 생각해보니 부모님과 함께 15년 동안 살았던 고향집에 가면 현관문을 열자마자 편안함이 느껴진다. 밤이든 낮이든, 누가 있든 없든, 또 인테리어가 달라졌어도 변함이 없다. 오래된 집의 케케묵은 향이 마음을 누그러뜨리는데, 이 향의 원천은 엄마가 오래 써온 세탁 세제의 향일 수도, 밥을 지으며 벽지에 밴 특유의 냄새일 수도 있다. 향기롭다기보다는 친숙함의 범주 같았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니 다른 방법을 시도하기로 했다. 커피를 내리고 드리퍼에 남은 여과지를 치우지 않은 날은 집 안에 원두 향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원두 찌꺼기를 오래 남겨두면 머리가 아팠다. 대안으로 디퓨저를 구매해봤다. 여름이라 끈적한 공기를 상쾌하게 바꿔줄 제주 바다 향. 그런데 웬걸, 제주에서 느낄 수 있는 냄새를 근본 없이 뒤섞었는지 코끝을 찔러댔다. 어떤 디퓨저는 익숙함을 안긴 것도 잠시, 열흘 만에 산화되어 떠났다. 이렇게 미적미적하며 가을을 맞았다.

나와 궁합이 맞는 향
“아침에 인센스를 피워놓고 나가면 저녁에 집에 돌아올 때까지 은은한 향이 남아 있을 거예요.” 향로 촬영에 필요한 소품을 사려고 연남동의 인센스 숍 ‘코주’에 갔다가 솔깃한 이야기를 들었다. 인센스는 목분(나무를 분쇄한 것)을 베이스로 향재와 향료를 섞어 만든 것이다. 일본 황실의 향을 만들면서 시작한 브랜드 ‘코주’는 400년 넘게 전통을 이어오면서 목분의 질을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는데, 수십 년 쓸 나무를 한 번에 구해 원료가 안정적이며, 향료에 맞게 커스터마이징 하는 발향 기술로 첫 향과 잔향이 다르지 않게 한다고 했다. 지름 2mm, 길이 14cm의 얇은 봉을 20여 분간 태워 공간에 향을 입히는 인센스 스틱. 세 시간 이상 피워야 향이 균일하게 퍼지는 캔들과 한 번 따면 닫기 어려운 디퓨저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이것을 알고 나니, 다시금 내 집의 향에 대한 기대가 생겼다. 다섯 개가 한 세트인 입문용 인센스를 둘러보는 사이, 숍의 대표가 내게 말을 걸었다. 즐겨 쓰는 향수가 있는지, 핸드크림은 어떤 걸 쓰는지, 향을 피우는 목적이 뭔지 물었다. 늘 갖고 다니는 핸드크림의 우디 향을 나와 궁합이 맞는 향 좋아한다는 사실과 향이 오래 남았으면 하는 바람을 말하자 백단 향을 추천했다. 인센스가 아직은 불교와 장례 문화에 한정돼 있어 대중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으로 숍을 오픈했다는 대표는 스틱을 꽂을 수 있게 자그마한 향꽂이까지 챙겨 주었다. “향을 맡고 싶으면 공기의 흐름 안에 있으면 돼요.” ‘코주’ 대표의 말을 떠올리며 베란다 문을 열어두고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서 인센스를 피웠다. 빨갛게 타며 피어오르는 연기가 잠시 생각을 멈추게 했고, 코끝에 닿는 백단 향 덕에 마치 숲속에 있는 것 같았다. 재가 되어 남은 인센스에서는 일주일 넘게 숲 향이 번졌다. 빨래를 걷으러, 화초에 물을 주러 베란다에 나갈 때 언뜻언뜻 스치는 우디 향은 날 선 감정을 누그러뜨리기도 했다. 이런 게 프루스트 효과일까. 특정 향을 맡으면 추억이 떠오르고 당시의 감정까지 소환된다는데, 백단 향은 어릴 때 여름이면 산이나 계곡으로 캠핑을 가고, 가을에 밤을 따러 다닌 즐거운 기억을 되살리며 안정감을 줬다.

내 집을 편안하게 느끼게 하는 그것
이렇게 나는 인센스 세계에 입문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는 요즘, 카페가 아닌 집에서 커피를 즐기는 나는 새로운 향을 추천받았다. 커피의 산미를 해치지 않을 은은한 향, 침향*이 일부 섞인 두 번째 인센스에는 백단 향도 약간 들어 있어 친근했다. 요즘은 집에서 작업할 때나 커피를 마실 때, 또 청소할 때도 인센스를 피워둔다. 타는 모습을 보며 멍때리기도 하고, 어느새 일에 집중하다 보면 내 곁에 향만 남기도 한다. 지금 나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이전보다 더 깊이 있게 쓰고 있다. 아침에 피워놓은 인센스는 현관문을 연 직후보다는 집 안으로 몇 걸음을 들어선 뒤에야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천천히 집 곳곳에 스며들어 내게 안도감을 주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기대도 해본다.


박민혜
사진제공 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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