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오후
현대인들이 대부분 그런 건지 혹은 나만 특별히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 여유 시간 대부분은 각종 콘텐츠(작품)를 소비하는 것으로 채워진다. 콘텐츠를 만든다는 핑계로 시간만 나면 영화와 드라마, 만화를 보고 다큐멘터리, 뉴스를 보고 음악을 듣고 게임을 하고 유튜브를 구독하고 《빅이슈》를 읽고 가끔 책도 읽는다. 틈틈이 사람들을 만나긴 하는데, 만나서 하는 이야기도 따져보면 대부분 그간 본 콘텐츠에 대한 것들이다.
수많은 작품을 소비하면서도 여전히 답을 내리지 못한 질문이 있다. 대체 좋은 작품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그 작품을 뛰어나게 만드는가? 물론 이에 대한 답변은 상황마다 작품마다 다르다. 그래서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내가 최근에 어떤 작품을 재밌게 봤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 대통령도 놀라는 스케일
“작품의 스케일이 너무 커서 백악관에서의 일상이 사소하게 느껴질 정도다.” 2016년 여름휴가를 떠난 오바마 대통령은 류츠신 작가의 소설 <삼체>를 읽고 이런 무시무시한 평을 남겼다. <삼체>는 2006년 중국의 한 잡지에서 연재소설 형식으로 시작해 큰 인기를 끌었다. 2008년 단행본이 출간됐는데, 중국에서만 300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촉망받는 SF 작가인 중국계 미국인 켄 리우는 우연히 <삼체>를 접하고 크게 감명받아 자신이 직접 영어로 번역해 서구권에 소개했다. 2015년, 이 작품은 아시아 최초로 SF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휴고상을 받았다. 아마도 그 명성으로 오바마 대통령도 읽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언급은 이 작품을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 백악관을 시시하게 만든다는 데 흥미가 가지 않을 수가 없지. 그리고 바로 올해 넷플릭스를 통해 드라마화됐다.
오바마나 켄 리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 역시 이 작품을 매우 즐겁게 봤다. 드라마는 나오자마자 하루 만에 몰아봤고, 다음 날 원작 소설을 주문해서 3권까지 내리읽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좋은 작품이다. 최근에 이 정도로 몰입해서 본 작품이 있나 싶다. 미국 대통령과 최고의 SF 작가가 그렇다는데 내 말이 뭐가 중요하겠냐만은 아무튼 그렇다.
그런데 이 작품은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전 세계가 극찬한 작품임에도 완성도가 그다지 훌륭하지 않다는 것이다. <삼체>의 인물 묘사는 표피적이다. 가끔 촌스러운 표현도 눈에 띈다. 구성도 느슨하다. 한두 설정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전반적으로 그렇다. 가장 대표적인 게 ‘삼체 문제’인데, 제목이 <삼체>임에도 막상 중반부 이후 삼체 문제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아마도 출발이 연재 형식이었기에 드러나는 문제일 것이다. 대략적인 틀이야 있었겠지만, 연재는 앞부분을 바꿀 수 없기에 좋게 말하면 구성이 느슨해지고, 나쁘게 말하면 조잡해진다. 그런데 이 조잡함은 이 작품이 세계적으로 성공하는 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작품에는 그 모든 단점을 커버하고도 남을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고, 그 아이디어가 던지는 질문은 그 어떤 완성도 높은 작품보다도 새롭고 근사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우주의 작은 존재의 속에는 더 큰 우주가 있다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다. 삼체 행성에 사는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략한다. 그들은 인류보다 과학기술이 몇 단계 앞서 있고, 당연히 인류를 압도하는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 인류란 마치 눈앞에 날아다니는 벌레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외계인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바로 우주가 너무 넓다는 것이다. 그들은 지구에서 대략 4광년 정도 떨어져 있다. 우주 전체를 놓고 보면 심각하게 가까운 거리지만 실제로 가려고 하면 쉽지 않다. 삼체인의 함대 속도는 0.01광년이다. 더 빠른 속도도 낼 수 있지만, 어느 정도 군대를 보내기에는 이 정도가 최선이다. 그러니까 이들이 4광년 거리의 지구에 도착하려면 400년이 걸린다.
무지막지한 우주의 시간,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설정이다. 우리 삶이 100년인데 이 전쟁은 너무도 느리다. 그러다 보니 이제까지 대부분 SF 작품들은 웜홀이나 워프 같은 개념을 도입해 시간을 건너뛰어 왔다. 하지만 삼체는 이 부분에 대해서 진지하다. 삼체인은 400년 뒤에 지구에 도착한다. 여기서 이 소설의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지금이야 삼체와 지구와의 기술 격차가 크지만, 400년 뒤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400년 전과 지금을 생각해보면 400년 뒤에 얼마나 변해 있을지 상상도 안 된다. 삼체인은 인류의 발전 속도를 감안했을 때 400년 뒤에는 자신들을 뛰어넘을 것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삼체인들은 ‘지자’라는 것을 통해 인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인류가 과학적인 기술 도약을 하지 못하도록 과학자들의 기초과학 연구를 방해한다. 군대 도착에 400년 걸리는데 그건 어떻게 하느냐 생각하겠지만 다 방법이 있다. 설명하긴 귀찮으니까 패스.
어쨌든 멸망까지 400년, 인류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누군가는 자포자기한다.(그럴듯하다) 누군가는 투쟁한다.(상식적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삼체인들을 신으로 모시며 기꺼이 노예를 자처한다.(충분히 있을 법하다) 물론 대부분 사람들은 어차피 400년 뒤의 일이라며 자기 인생을 산다.(암, 그래야 사람이지) 하지만 그렇다 해도 세기말적인 좌절의 분위기는 피할 수 없다. 인류는 어떻게 이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삼체인에 대항할 것인가? 설명하고 싶은 설정들이 더 있는데 보실 분들을 위해 남겨둔다. 하나만 이야기하자면 삼체인은 거짓말을 못 하고,(그들은 텔레파시로 소통하기 때문에 생각을 숨길 수 없다) 인간은 잘 알다시피 거짓말에 능숙하다.
이제 참아야지. 아무튼 이 모든 건 이 작품의 기본 설정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 설정은 작품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독자(혹은 시청자)들을 몰아붙인다. 만약 외계인이 미래에 침공한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까? 어떤 방식으로 싸울 수 있을까? 400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까? 이쯤 되면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도 사소한 게 된다. 상상력이라는 그래픽 카드가 완성도를 보완하고도 남는다. 그래서 이 작품은 소설이나 드라마, 그 형식조차 중요하지 않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결국 핵심 요소는 같다. 우주의 벌레, 아니 먼지보다 작은 인간의 상상력으로 우주를 채운다. 그리고 상상은 몰입을 만들어낸다. 물론 작가의 상상력은 독자의 상상력을 넘어 끝없이 뻗어간다. 스케일이 다르다. 처음에는 10년, 20년 단위로 건너뛰다가 어느 순간 백 년 단위가 됐다가 마지막에는 천만 년 단위까지 나아간다. ‘뇌절’이라고 생각하는 범위까지 초월해버리니 경외심마저 든다. 아무튼 중국의 뻥은 역사서나 SF나 스케일이 다르다.
좋은 아이디어는 좋은 질문을 던진다. 사람들이 질문에 빠져드는 순간, 그 콘텐츠는 생명을 얻는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삶이 무료하다면(혹은 현실 정치에 지쳤다면) 새로운 질문을 던져라. 답이 없지만 끝없이 파고들 수 있는 질문이 좋다. 좋은 아이디어는 세상은 못 구해도 나를 구할 순 있다. 질문을 잘하면 우리는 삶을 긍정할 수 있게 된다. 정확하게는 받아들인다고 느끼기도 전에 이미 뛰어들어버린다.
제목: <삼체(The Three–Body Problem)>
플랫폼: 소설, 드라마(넷플릭스)
포인트
아이디어: ★★★★
스케일: ★★★★☆
디테일: ★★
오후(ohoo)
비정규 작가. 세상 모든 게 궁금하지만 대부분은 방구석에 앉아 콘텐츠를 소비하며 시간을 보낸다. <가장 사적인 연애사>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등 여섯 권의 책을 썼고 몇몇 잡지에 글을 기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