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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7 컬쳐

거기까지 가도 삶은 거기서 거기 <길 위의 뉴요커> - #오후의리뷰회

2024.05.08

“뉴욕에 6만여 명의 노숙자가 있고, 그중 150여 명이 한국인이다.” 첫인상이 사람의 절반이듯이, 콘텐츠에서도 시작이 중요하다. 소설은 첫 문장이, 영화는 첫 장면이 이후 펼쳐질 작품의 깊이를 예고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이 한 줄의 문구로 시작한다. 이 문구를 보자마자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저 멀리 나가 있던 정신이 후다닥 돌아왔다. 자세를 가다듬고 영상을 보기 시작하니 한 시간이 10분처럼 지나가버렸다.
길 위의 홈리스, KBS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로 2018년에 방영했으니 주기가 짧은 방송 특성상 이제는 사람들이 거의 보지 않을 작품이 아닐까 싶다. 어쩌다 유튜브가 내게 이 작품을 보여주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알고리즘 님은 위대하다.


글. 오후 | 이미지. <길 위의 뉴요커> 유튜브 캡처


사연 없는 인생은 없다
다큐는 뉴욕에 있는 한인 홈리스 셸터를 다룬다. 아무리 뉴욕이라도 반지하란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이상하게 한국적으로 느껴진다. 다큐멘터리는 셸터에 살아가는 개개인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태로 따라가며 진행된다. 도입부만으로도 그곳에 어떤 사람들이 있을지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가?
최근 동대문 액세서리 부자재 상점을 지나치다가 거기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특히 중년 남성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은 어떻게 그곳에서 액세서리 부자재를 팔게 됐을까를 상상한 적이 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지금 이 위치에 놓여 있다. 홈리스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국도 아니고 뉴욕까지 가서 노숙을 하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는 어떤 특별한 사연이 있을까? 아마도 제작진은 이런 생각에서 이 작품을 기획했을 것이다. 여행 삼아 혹은 출장차 간 뉴욕에서 우연히 한국인 홈리스를 만나(혹은 이야기를 전해 듣고) 호기심을 가지게 된 거다.
하지만 호기심은 시작일 뿐이다. 아무리 첫인상이 좋아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의 본질을 알게 되듯이 호기심만으로는 작품의 깊이가 나오지는 않는다. 다큐멘터리의 깊이는 결국 들인 시간에서 나온다. 영상으로만 보기에도 제작진은 1년 이상 그들과 소통하고 촬영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다큐멘터리에서 1년이 긴 시간은 아니지만, 방송국에서 상영한 작품치고는 꽤 긴 시간을 들인 것이라 볼 수 있다. 사람을 이해하려면 시간만한 묘약이 없다. 제작진은 그들과 시간을 함께하며 그들이 왜 홈리스가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담담하게 기록한다.

특별하고 평범한 삶에 대하여
그들의 스토리는 당신의 기대보다는 평범하고, 어떤 면에서 단순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막상 사연을 쭉 늘어놓고 보면 그렇게까지 특별하진 않다. 한국에서도 있을 법한 흔한 홈리스 이야기. 모두 특별한데, 그렇기에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 단지 그 일이 미국에서 일어난 거다. 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 각자가 겪은 삶의 깊이가 살짝살짝 드러난다. 도박 중독이었다가 이를 극복하고 셸터 일을 하고 있는 목사, 이민 와서 사업을 하다 사업 실패로 홈리스가 된 남성, 어린 나이에 기지촌에 팔려갔다가 미군을 따라 미국에 와 마약 중독으로 결국 모든 걸 잃고 홈리스가 된 여성, 셸터에서 만난 알츠하이머 환자와 결혼한 로맨티시스트까지, 모든 이야기가 다른 듯 비슷하며 저마다의 깊이를 가진다.
그럼 작품은 어떻게 끝이 날까? 셸터에서 그들 모두 서로를 의지하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 끝나면 좋을 텐데, 그럴 리가 없다. 그곳에서의 삶 역시 평탄하지 않다. 소수는 마음을 다잡아 일자리를 찾고 돈을 모아 사회로 복귀하지만, 그보다 많은 수가 제대로 된 일을 구하지 못하고 좌절한다. 그리고 다시 술과 마약에 빠져든다. 관계도 어렵다. 다들 어려운 삶을 산만큼 성격도 한가락씩 한다. 충돌은 불가피하다. 그렇게 누군가는 셸터를 떠나고, 술이나 마약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줘 쫓겨나기도 한다. 슬픈 일이지만 특별한 일은 아니다. 그렇게 반복되고 반복되는 거다. <길 위의 뉴요커>는 결국 특별한 이들의 평범한 이야기다. 뉴욕이든 서울이든 사연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당신의 인생이 복잡하듯이 모두가 그렇다.
현재 <길 위의 뉴요커>는 KBS 유튜브 채널에서 무료로 시청할 수 있다. 공영방송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이런 작품이 존재하기 때문… 이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기엔 20년째 TV 없는 삶을 살고 있긴 하지만, 아무튼 이 작품이 이대로 묻히기엔 너무도 아까워서 이렇게 소개해본다.

추천 콘텐츠
제목: 길 위의 뉴요커
플랫폼: 유튜브(KBS)

포인트
흥미 ★★★★
캐릭터 ★★★
깊이 ★★★


오후(ohoo)
비정규 작가. 세상 모든 게 궁금하지만 대부분은 방구석에 앉아 콘텐츠를 소비하며 시간을 보낸다. <가장 사적인 연애사>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등 여섯 권의 책을 썼고 몇몇 잡지에 글을 기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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