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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1

먹고사는 존재라면 주목해야 할 농민의 이야기 (1)

2023.11.18

ⓒ 사진제공. 녹색연합

대학을 막 졸업할 즈음이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기후위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게 말이다. 당시의 나는 졸업하면 바로 귀농을 하겠다는 큰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꿈은 기후위기라는 인류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무너졌다. “아니, 기후위기 때문에 다 망하게 생겼는데 한가하게 농사를 지어도 되나?” 기후우울증으로 매일 눈물과 불안으로 지새던 나는 한 줌의 희망을 품고 농부 대신 기후운동을 하는 길을 선택했다. 일단 큰불부터 끄자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렇게 기후위기를 막겠다고(막을 수 있을 줄 알고) 활동가가 된 이후, ‘기후’가 품고 있던 수많은 이슈 중에 나는 농업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귀농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일까? 그보다는 농업 현장이야말로 기후위기의 ‘최일선’에 서 있으며, 그럼에도 가장 주목받지 못하고, 하지만 어쩌면 전환을 위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 기후위기라는 말이 처음 나오기 시작했을 때 나는 먼저 농부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농사 현장이야말로 자연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자연과 상호작용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늘 보고 농사를 짓는다고 하지 않던가. 그야말로 하늘이 변하고 있으니, 농사에도 엄청난 변화가 있겠지. 4년 전, 나는 야심 차게 3대째 농사를 짓고 있는 친구의 집에 방문해 심각한 기후위기의 ‘증거’를 채집하고자 했다. 하지만 곧 실망했다. 한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할머니도, 아버지도 기후변화 그런 건 전문가들이나 알지 자신들은 모른다고 손사래를 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희미하게 나타나던 기후변화의 징후는 농업 현장에서 점점 명징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춥지 않은 겨울, 가물디가문 봄, 여름 내내 퍼붓는 폭우와 쨍쨍하지 않고 흐린 가을. 기후변화는 이제 낯설지 않은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사라지는 꿀벌, 냉해로 까맣게 타버린 배꽃, 수해로 초토화된 시설, 자포자기한 농민의 모습. 기후변화로 농민들이 어떤 피해를 보고 있는지 다루는 기사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상했다. 농업이 기후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고,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은 자명해 보이는데, 대책을 이야기하는 이는 드물었다. 보통 사람들도 기후위기에 ‘식량 위기’를 걱정할 정도인데 말이다. 기후운동 내에서도, 정부에서도, 농민단체에서도 기후위기와 농업을 이야기하는 공론장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있더라도 피상적인 수준의 이야기거나, 그 대책마저 ‘전문가’라는 사람에 의해서 토론되는 경우였다. 하지만 농업의 전문가는 농사짓는 농민이 아니던가? 기후위기 시대, 농업은 어떻게 적응하고 변화해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장에 농민 당사자가 없는 것이 매우 의아했다.

이 글은 '먹고사는 존재라면 주목해야 할 농민의 이야기 (2)'에서 이어집니다.

소개

이다예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 활동가.


글. 이다예 | 사진제공.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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