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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67 에세이

근하신년입니다

2022.01.26 |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새해입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저는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여름부터였습니다. 아니 돌이켜보면 10여 년 전에도 지독한 불면에 시달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여름이었네요. 열대야 탓을 해보고 싶지만, 요즘도 불면의 밤은 계속되니 계절이 무슨 죄겠습니까. 몸이 늙어가는 티를 내는 걸까요. 마음의 허기가 가시지 않아서일까요. 불면은 쇠락과 공허를 닮아 두려움과 불안의 얼굴을 합니다. 밤이 오는 게, 잠자리로 들어가는 게 꽤나 부담스럽습니다. ‘오늘 밤은 무사할까?’ 매일의 안녕을 건사하는 것도 힘에 부치는데 그것도 모자라 이제 잠자리마저 무탈하기를 빌어야 한다니. 크게 좌절합니다. 포기하고 현실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게 길인 것 같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 그리 쉽게 접히는 건가요. 불안은 어디서 오나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요, 내 안의 불안은 왜 내 안에 있는데도 내 것이 아니어서 나를 괴롭히는 걸까요. 불안은 기어코 밤의 문을 열고 저벅저벅 들어와 마음속을 헤집습니다.
“전형적인 불면증입니다.” 전문의의 소견은 그러했습니다. 전문가의 말은 참 힘이 셉니다. 바로 수긍하며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심지어 ‘전형적’이라고 말씀하시니 왠지 그간의 제 고통이 착각이거나 과민과 예민함(과민과 예민함이 어때서! 발끈!)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는 것을 공식 인증받은 것 같아 속이 다 시원합니다. ‘전형적’이라… ‘전형적’이라면 대체로 어느 정도 데이터가 축적돼 있고 경우의 수가 꽤 많다는 말일 테고 그렇다면 진단 후 치료의 방법도 ‘전형’이 있다는게 아닐까요.(혼자 지레짐작입니다.) 답조차 없다면 정말 좌절할 일이지만 전형이라고 하시니 이 또한 되레 안심입니다. 일단 전문가의 지도 편달을 잘 따르려 합니다.
불안. 이 말, 참 덩치가 큽니다. 불안을 잘게 잘라 단면을 들여다보고 원인을 찾아 해결하고 싶습니다. 사실 최대한 잘게 다져 아예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이지만 과욕일 거 같습니다. 적절한 불안은 살아가는 데 아드레날린이 돼주기도 하고 뭔가를 하는 동인이 되기도 하니까요. 여러분도 각자의 불안이 있지 않나요? 불안과 별 탈 없이 동거 중이신가요? 괜찮으신가요?

애정 결핍이 불면에 끼치는 영향과 신년 소원의 상관관계?
저는 그동안과는 좀 다른 동거의 방법과 방식을 찾는 중입니다. 어쩌면 지나온 긴긴밤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 꼬마였던 저에게로까지요. 가족 모두가 한방에서 잠들던 그 시절의 밤이 생각납니다. 잠에서 깨 살금살금 이불 밖으로 나온 아이는 차가운 벽에 몸을 기대고 앉아 가만히 잠든 가족의 표정 없는 얼굴의 이목구비를 하나씩 살펴봅니다. 쌔근쌔근 숨을 내쉬며 곤히 잠든 이들의 얼굴은 나와는 무관해 보여 괜스레 속상했습니다. 잠에 빠져든 저들의 세상이 잠에서 빠져나온 나의 세상과는 너무도 다르고 또 먼 것 같아 외로웠습니다. 그때의 기억, 마음, 냄새, 온도, 공기는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외로움과 서글픔이라는 말의 뜻을 그런 밤사이에 알게 됐던 것 같습니다. 잠과 맞바꿔가며 배웠습니다. ‘나도 당신들과 함께 잠의 세계로 가고 싶어요. 나도 좀 데려가주면 안 돼요? 나 혼자 이렇게 깨어 있는 게 보이지 않나요? 나를 이렇게 둘 건가요?’ 괜스레 눈물이 납니다. 훌쩍이기까지 합니다. 구조의 신호를 보내는 거겠지요. 그 신호를 유일하게 알아채는 사람은 언제나 엄마였습니다. 하루의 피로에 넋이 나갔을 엄마는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리며 아이를 혼내고 어서 이불로 들어오지 않을 거냐고 다그칩니다. 아이는 엄마의 다정한 위로와 포옹을 기대했을 테지만 그 역시 욕심이었습니다. 원하는 만큼의 애정을 확인받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엄마의 관심을 받았으니 못 이기는 척 잠으로 딸려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 밤들은 ‘애정 결핍이 불면에 끼치는 영향’이라 요약할 만한 게 아니었을까요. 구태의연하고 전형적인 애정 드라마 속 주인공 같기도 합니다. 이 역시 ‘전형적인’ 불면의 서사에 쓰일 만한 걸까요. 요즘 제 불안의 원류를 되짚어가면서 그동안 못 본 척하고 싶었던, 애써 외면해왔던 지난날의 나를 하나씩 끄집어내보고 있습니다. 이게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작업을 더는 미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신년 소원이 있다면 올해는 세상모르고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겁니다. 그런 잠을 자본 게 언제였는지 까마득합니다. 단꿈도 악몽도 없이, 내일도 없다는 듯이, 오직 잠의 무아지경에 빠져든다면? 생각만으로도 황홀합니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아주 선명해지지 않을까요. 상쾌하고 가뿐하고 기분 좋은 아침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다시 태어난 것 같을 겁니다. 기대이고 바람입니다. 그 소원 성취를 위해서라도 올해는 ‘나’를 되밟는 일에 꽤 많은 공을 들이고 싶습니다. 마냥 괴롭지만은 않을 겁니다. 지금 글을 쓰며 여러분께 말을 걸고 있듯이 이 여정을 글로써 따라가보려 합니다. 독자분들께 ‘저를 지켜봐달라고, 증인이 돼달라.’고 (훌쩍이는 대신) 청하는 겁니다. 사랑이 필요하니까요.
한동안 ‘쓰는 사람’으로서의 ‘나’를 잊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불안의 밤을 더듬거릴 때 부디 ‘쓰기’의 자비가 함께하길 바라봅니다. 아, 이런 일은 잘 없는데요, 자꾸 잠이 오네요. 지금요? 한낮의 카페인데 말이죠.

※ 더 많은 사진과 기사 전문은 매거진 '빅이슈'267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글. 정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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