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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67 스페셜

온실 속의 비대 화초가 된 건에 관해서

2022.01.19 | 창경궁 대온실

엄한 어머니와 자애로운 아버지 아래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곱게 자라났다. 다만, 조금 비대하게, 약간 삐뚤빼뚤하게.

어젯밤에는 여차 저차 하다가
테이블 위에 놓인 유리를 깨먹었다. 놀랄 만한 사건이긴 했지만 혼자 사는 공간에서 스스로 저지른 일이기에 별다른 리액션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쩍! 유리가 조각나버렸고, 작게 아이 씨,를 내뱉은 후 적막하고 빠르게 상황을 수습했다.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리는 방법 따위는 없을 줄 알면서도, ‘깨진 유리 붙이는 법’을 검색해보았다. 무슨 특수 접착제 같은 게 있는 듯도 보였지만 동네 문방구에서 구할 수는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제법 큰 사이즈의 테이블 유리를 다시 맞추기에는 나의 주머니 사정이 빤했다. 어쩔 수 없다며 체념했지만, 집 안을 돌아다닐 때마다 깨진 유리로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탁자 위에 놓여 있는 파 화분에 이번 주 내내 물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갑자기 떠올라, “미안해”라고 말하며 마시던 물을 나눠 주었다. 나에게도 물을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안부를 묻고, 유리든 사람이든 본래 깨지기 쉬우니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해주고, 집 안에만 머물지 않도록 요령 좋게 불러내 새로운 공기를 마시게 해줄 그런.
유리가 깨졌고 그게 나 같았는데, 그 모든 해프닝조차 별일 아니게 느껴질 정도로 멍하고 무뎌졌다. 최근에 저지른 비행이 겨우 유리를 깬 정도인 탓이다.

겨울의 온실을 좋아하는 이유는
일종의 대비 효과 같은 것이다. 모든 존재는 자신과 상반된 개념과 함께 있을 때 제대로 된 가치를 드러낸다. 추운 겨울이 되어야만 따뜻함을 느낄 수 있고, 어두운 밤하늘이 있어야만 반짝이는 별이 보이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그래서 쌀쌀한 계절이 되면 창경궁 대온실을 종종 찾아가곤 한다. 궁의 입구 홍화문에 들어선 후, 얼마간 걷다 보면 주변과 이질적인 조화를 이루며 서 있는 대온실이 나타난다. 철골과 목조로 구조를 세운 뒤, 유리로 외피를 감싼 근대식 건축물의 외형이 어딘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처음 대온실을 마주했을 때 마치 비밀의 화원을 발견한 듯 낭만적인 공간이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조선왕조의 위엄을 깎아내리기 위해 궁궐을 허물고 지어진 건물이라는 슬픈 역사를 알고 난 뒤에는 함부로 ‘낭만’이란 단어를 붙이는 것에 대해 조심스럽게 느껴진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라는 타이틀을 듣고 화려한 온실을 기대한다면 다소 실망할지도 모르는 소박한 공간이다. 그리 넓지 않은 내부에 옹기종기 자리 잡은 식물들은 수수하고 담백한데, 그런 풍경이 대온실이 지닌 오래된 이야기와 어울린다는 느낌도 든다.
대온실 안쪽으로 들어서니, 따뜻한 온실에서 이르게 피었다 벌써 곳곳이 시들어버린 동백나무가 보인다. 이 계절에 흔히 볼 수 없는 화사한 색감에 저절로 눈이 간다. 유리 천장으로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살, 아름다운 꽃과 나무, 그것이 아름답고 평화로워 어쩐지 쓸쓸해진다. 양 극의 감정은 그렇게 동시에 존재한다.

부모님은 온실 속에서 나를 돌보면서
어느 정도 키워 밖에 내놓으면 알아서 꽃을 피워낼 것이라 기대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의 기대보다 게으르고, 예상보다 심약했던 나는 어떠한 꽃도 열매도 맺은 적이 없는 이름 모를 식물로 남아 있다. 그래도 씨앗을 처음 심은 이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한다.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하면 되는 아이인데 아직 안 했을 뿐’이라는 수식어는 여전히 타인에게 나를 소개하는 문장 중 하나이다.
돌이켜보니, 쉴 새 없이 주어졌던 선택의 순간들에 성공도 실패도 없는 무난한 쪽만을 고집했다. 태생이 소심하여 모험을 싫어하고 경쟁은 가능한 피했다. 그러다 보니 세계는 늘 고만고만했고, 내 방 안은 나의 우주가 되어갔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저 그런 어정쩡한 상태의 온실 속의 비대 화초로 존재감을 흐려가게 되었다.
나에 관한 어떤 일도 성취하거나 종결되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 채로 일단, 마침표를 찍는 2021년 12월. 2022년 1월의 계획을 세울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런 작은 디테일조차 없다면 삶이 얼마나 무미건조한가 싶어 나름 새해다운 포부를 나열해보기로 마음먹는다. 어쩌면 나는 부모님과 더불어 여전히 나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는 이 세계의 단 세 사람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여태껏 단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 가보지 못한 곳, 배워본 적 없는 무언가를 10개 이상 시도해볼 것. 그것이 2022년 나의 목표이다. 불필요하게 건전하기만 일상에 생산적인 균열을 가져올 자극을 만들기로 한다. 30대의 마지막 해, 3년간의 삼재가 시작된다는 84년생 쥐띠, 거창한 결실까진 아니어도 아주 작은 새순이 피어나는 기미 정도는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어본다. 그런 또 한번의 기대로 잠시 설레는 것이 1월의 특권이니까.

※ 더 많은 사진과 기사 전문은 매거진 '빅이슈'267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글 | 사진.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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