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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67 인터뷰

이상한 집

2022.01.19 | 자유로움과 외로움의 줄다리기

어느 날은 웃고, 어느 날은 우울하다

영화 <중경삼림>에는 “오늘은 파인애플 통조림을 좋아했던 사람이 내일은 다른 걸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라는 대사가 나와요. 그리고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엘리오’가 헤라클레이토스의 책을 읽는 장면이 나오는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라는 말을 남겼죠. 두 영화는 ‘사랑과 변화’를 이야기했지만, ‘집과 변화’라는 주제로도 비슷한 문장을 만들 수 있어요. “오늘은 집에서 요리해 먹는 것을 좋아했는데, 내일은 배달 음식 시켜 먹는 것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라던가, “같은 집에 두 번 살 수는 없다.”라고 말이에요. 두 문장을 곱씹으니, 주거 환경에 따라 어느 날은 웃고 어느 날은 우울해하던 유은이가 떠올라요. 밖에서는 절대로 하지 않을 이상한 행동을 집에서 한 적이 있다는 유은이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으며, 유은이가 어떤 집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어요. 오늘은 오랜 기숙사 생활 이후 언니와 함께 넓은 집에서 살다가 혼자 원룸에서 지내는 유은이의 집으로 갑니다.

혼자 지내는 것만큼 편한 건 없어

-자기소개를 부탁해.
=안녕하세요. 식품영양학과에 재학 중인 대학생 최유은입니다. 자기소개를 재미있게 하고 싶은데, 긴장해서 잘 안 되네.(웃음)

-왜 이렇게 긴장한 거야.(웃음)
=누군가를 집에 초대하면 왠지 일기장을 보여주는 것처럼 은근히 긴장되더라고. 집은 내가 가장 솔직해지는 장소이기 때문이야. 밖에선 못 하는 표현이나 행동을 집에 혼자 있으면 마음껏 할 수 있잖아. 예를 들면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춘다든지, 유튜버 놀이를 한다든지, 셀피를 찍거나 혼잣말을 한다든지 하지. 슬플 땐 엉엉 울 수도 있고, 엉엉 울다가 갑자기 밥을 먹을 수도 있어. 어떤 행동을 해도 나를 이상하다고 생각할 사람이 없기 때문인지 집은 내가 가장 이상해지는 장소이기도 한 것 같아.

-집을 내가 이상해지는 장소라고 표현한 게 참 좋아. 집이 편하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편안해하는 느낌이야.
=솔직히 혼자 사는 것만큼 편한 게 없잖아. 하고 싶은 행동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청소 좀 미뤄도 뭐라고 할 사람도 없으니까. 거의 매일 밤 씻은 뒤 불을 끄고 누워서 유튜브 동영상을 보거나 노래를 듣는데 그때 가장 행복해.

-또 좋아하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야?
=미루던 청소를 끝내고 방이 쾌적해졌을 때도 아주 좋아. 며칠 만에 다시 원상 복구되기 일쑤지만.(웃음) 사실 이 순간은 가장 싫어하는 시간이기도 해. 집이 정리가 안 돼서 어디서부터 치워야 할지 막막할 때 참 싫더라.(웃음)

집이 아니라 방에서 지내는 기분이야

-언니랑 함께 지내는 줄 알았는데, 언제 독립해 이 동네로 이사한 거야?
=지난해 8월 15일 광복절부터 1인 가구로 독립했어. 함께 살던 언니가 취직해서 집을 내놓았거든. 집이 생각보다 빨리 나가서 부랴부랴 학교 앞에 방을 알아보았고, 이 집을 제일 처음 봤는데 마음에 들어서 바로 계약했어. 급하게 이사했는데, 집을 바꾸는 시기가 잘 맞아서 다행이었지.

-문 열어놓고 마음껏 슬퍼하기엔 너무 춥긴 해.(웃음) 이 집에 오기 전에 언니랑 같이 살아서 지금 더 외롭고 허전하게 느끼는 걸까?
=맞아. 아무래도 핏줄이라 싸울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배달 음식 같이 시켜 먹고, 택배 언박싱 같이 하고, 옷도 서로 코디 해주는 등 좋은 점이 많았어. 언니랑 함께 보낸 시간이 종종 생각나더라고. 그리고 빨래, 청소, 설거지, 쓰레기 분리수거 같은 집안일은 둘이 살 때도 다 하던 일인데, 혼자 하려니까 괜히 더 미루게 되고 하기 싫더라. 가끔은 집에 있을 때 혼자라는 기분이 크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때 조금 힘들어. 혼자서도 외로워하는 일 없이 잘 먹고 잘 살면 좋을 텐데, 혼자 산다는 건 자유로움과 외로움이 서로 줄다리기하는 일인 것 같더라고.

-좁은 집에서 지내면서 집이 아니라 방에서 사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고 했잖아.
=좁은 원룸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빌라는 집에 있다 보면 이게 집인지 방인지 헷갈릴 때가 많아. 옆집에서 통화하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고, 윗집에서 누군가 샤워하면 가끔 폭포 앞에 와 있는 듯한 기분도 든다니까.(웃음) 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현관문 밖에서 나는 소리를 잠결에 듣고 아, 여기는 내 방이고, 거실에서 언니가 뭔가를 하고 있구나 생각한 적도 있어. 잠시 뒤 현실을 깨달았을 땐 무슨 소리지 싶어 조금 무서웠지. 지금 사는 집은 벌레가 없다는 점에서 아주 만족하지만, 조금 더 넓은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하게 해.

-지금도 현관문 밖에서 줄곧 누군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밤에 혼자 있을 때 들으면 무서울 것 같아. 넓은 집 말고도 또 바라는 집의 모습이 있다면 어떤 거야?
=적당히 넓고, 적당히 조용하고, 적당히 도심에 있는 집에서 살고 싶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가득 채워서 집에 가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집으로 꾸미고 싶어.

-언젠가 네가 그런 집에서 살기를 바라면서 인터뷰를 마칠게.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어떤 사람의 집에 가는 건 그 사람을 훨씬 더 깊이 알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해. 친구 집에 놀러 가면 그 친구가 좋아하는 책, 화장품, 인형, 자주 먹는 음식, 자주 입는 옷까지 모두 알 수 있잖아. 그래서 인터뷰 요청을 받았을 때,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주제가 꽤 재밌다고 생각했어. 내 이야기도 다른 사람들처럼 재미있는 내용으로 채워지면 좋겠는데, 긴장해서 잘 대답했나 모르겠네.(웃음) 재밌는 이야기가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솔직하게 말했으니, 재미와 공감을 느끼는 누군가가 있겠지?

뻔하면 재미없어

지난해 연말에 유은이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서 어떤 색을 좋아하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유은이는 분홍색과 하늘색이 좋다더니, 잠시 뒤에 주황색, 노란색, 민트색도 좋아한다고 했어요. 결국 저는 여러 색깔의 선물들을 골라야 했죠. 그런데 알록달록한 유은이의 대답에 제 질문이 무색해진 건 어떤 계절을 좋아하는지 물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유은이는 어떤 계절을 좋아하기보다 새로운 계절이 올 때를 다 좋아하는 것 같다며, 계절이 변할 때 왠지 설렌다고 말하더라고요. 하나의 답변을 기다리는 저에게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는 유은이가 이상하게 좋았어요. 이상하게 좋은 친구가 사는 ‘이상한 집’에서 나와 길을 걸으면서, 유은이만의 다채로운 대답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좋았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뻔하면 재미없잖아요.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삶을 두려워하는 저 자신에게 외쳤어요. 인생의 예측 불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삶을 다채롭게 즐길 수 있는 거야!

※ 더 많은 사진과 기사 전문은 매거진 '빅이슈'267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글. 손유희 | 사진. 이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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