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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66 컬쳐

이토록 멋진 마법이라면

2022.01.15 | 그 어디에서든 두 번쨰의 마법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밖에 없다.

요즘 연극과 뮤지컬 관람에 취미를 붙이게 되면서 재미있는 말을 알게 되었다. ‘두 번째 관람의 마법’이라는 건데, 이미 봤던 공연을 한 번 더 보고 나면 처음보다 더 빠져들게 된다는 데에서 나온 말이다. 똑같은 공연을 또 보는데 어떻게 더 좋을 수 있나 싶을 수도 있지만, 경험해 본바 이 마법은 정말로 존재한다. 어지간한 천재가 아니고서야 한 권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다 하더라도 그 안에 담긴 표현과 의도가 온전히 다 머릿속에 들어오는 건 아니다.

그렇듯 공연도 아무리 집중해서 본다 한들 한 번의 관람으로 그 극이 가진 모든 것을 깨닫고 느끼기란 힘든 일이다. 하지만 같은 공연을 다시 한번 보게 되면 이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게 되고, 알듯 모를듯 했던 부분도 더 명확하게 이해하게 된다. 뭐든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 했다. 마치 숨어 있던 보물을 발견한 것 같은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면 다음번에도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해 한 번 더 보고, 이미 아는 것마저도 더 확실히 알 수 있을까 싶어 또 보고.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이른바 ‘회전문 관객’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두 번째 관람의 마법은 이렇게나 어마무시(?)하다.

[© 김여행_파스타시에]

두 번째의 마법
그런데 생각해보면 공연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이런 ‘두 번째의 마법’을 경험할 때가 있다. 처음에도 좋았는데 그 좋았던 감정과 기대를 안고 두 번째로 찾아갔을 때마저도 좋으면 그때부터는 마음을 터놓고 좋아하게 돼서는, 계속해서 방문하게 된다. 이런 마음을 안겨주는 곳을 참 좋아하는데, 내게는 ‘발렁스’가 그런 가게 중 하나였다.
발렁스는 성수동에 위치한 작은 파티세리다. 처음 발렁스를 방문했던 건 재작년 7월쯤으로 오픈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였는데, 독특한 모양의 통카바닐라나 흔치 않게 용과를 사용한 상큼한 용과패션 타르트 등 안정적인 맛을 갖고 있으면서도 포인트가 되는 독특한 점이 있어 기억에 남았다. 그러다 올해 들어 다시 방문했는데, 이럴 수가 기억보다 더 맛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진작 일찌감치 재방문을 하지 않아 미처 먹어보지 못하고 지나간 디저트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아쉬워질 만큼이나 맛있었다. 비록 디저트의 종류는 처음과 달라졌지만 발렁스가 추구하는 맛의 본질은 여전히 같아서 두 번째 방문을 통해 그 방향성을 확실히 알게 된 듯했다. ‘발렁스(Balance)’라는 가게의 이름처럼 친숙한 것과 색다른 것, 예상하는 것과 예상하지 못하는 것 등의 대비되는 요소를 통해 누구나 인상에 남을 법한 포인트를 주면서도 이를 균형감 있게 담아내는 것이 발렁스가 추구하는 디저트의 세계였던 것이다. 그런 의도를 깨닫고 나니 더 맛있고 이상적으로 와 닿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회전문 손님’이 되면서 여러 디저트를 먹어보게 되었다. 대체로 다 만족스러웠지만 그중에서도 바닐라 타르트와 함께 발렁스의 베스트 메뉴라 할 수 있는 ‘피스타시에’는 발렁스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를 만큼 좋아하게 되었다. 피스타치오 나무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처럼 한 그루 나무의 향기로움을 표현하고자 한 타르트로 은은한 오렌지꽃 향이 가미된 피스타치오 크림은 가벼워 마치 하늘하늘한 꽃과 싱그러운 나뭇잎을 연상케 한다. 또 진한 피스타치오 가나슈와 고소한 파트 사블레는 견고한 나무 기둥을 떠올리게 한다. 작은 타르트 안에 이런 시적인 표현을 담아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감탄이 나오는 디저트다. 딸기가 나오는 기간에만 판매하는 ‘금실딸기’ 또한 가볍고 상큼한 딸기와 부드럽고 향긋한 바질 크림의 조화가 무척 돋보여서 바질과 딸기의 궁합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후회 없을 선택이다.
이러니 공연이든, 그 어디에서든 두 번째의 마법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다. 덕분에 알던 것도 다시 보자는 마음가짐도 갖게 되니 여러모로 두 번째의 마법을 경험하게 되는 건 근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멋진 마법이라면, 언제든 기꺼이 찾아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김여행_용과패션타르트]


발렁스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일로4길 49
12:00~19:00 소진 시 마감
월요일, 화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balance_patisserie

※ 더 많은 사진과 기사 전문은 매거진 '빅이슈'266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글 | 사진. 김여행
먼 타지로 떠나는 여행이든, 동네 카페 투어든, 항상 어딘가로 떠날 궁리를 하는 가장 보통의 직장인. twitter @_travel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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