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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52

홈리스 여성이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이유

2021.06.06 | 홈리스 여성 이야기

[© unsplash]

내가 일하는 시설에서 자활근로를 하는 지 선생님이 어느 날 하드를 한 아름 안고 출근했다. 지 선생님은 일시보호시설을 이용했었지만 작년에 임대주택에 입주하게 되어 이제는 어엿한 지역주민이 된 여성이다. 그이가 근로장려금을 신청해 곧 받게 될 거라며 생각지 못한 돈이 생겼으니 더운 날 하드 정도는 사야지 않냐 했다. 기어코 한턱 쏴야겠다는 분에게 일 열심히 하라고 준 돈을 왜 그런 데 쓰냐고 핀잔하기도 뭐했지만, 작은 얼음과자 하나씩 나눠 먹겠다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니 시설 이용인들과 다 같이 웃으면서 간식을 즐겼다. 시설 이용인들 중에는 어디 돈이 생길 구멍이 전혀 없어 무일푼인 분들도 있어서 지 선생님이 내민 간식이 무척이나 반가웠을 터이다.


사실 지 선생님은 요사이 반 사회복지사라고 여겨질 정도로 시설 이용인들을 챙기는 사람이다. 그이에게 공식적으로 부여된 일은 시설 화장실 청소와 이용인 열 체크, 그리고 마스크를 나눠 주는 것이다. 하루 세 시간씩 한 달에 75시간 정도를 일한다. 하지만 그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날 이용인이 병원에 가야 하는데 혼자 가기 힘들 때면 지 선생님이 동행해서 병원도 모셔가고, 약도 받아 와서는 언제 어떻게 복용하면 된다더라며 잊지 않게 설명해주는 일도 한다. 주민등록증을 다시 발급받아야 하는 이용인과 동행해서 주민센터에 찾아가 쭈뼛거리는 당사자의 손을 잡고는 담당 공무원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일도 한다.

요새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대책으로 모든 이용인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선제검사를 받는데, 그럴 때 선별진료소에 동행해 검사를 받도록 챙기는 일을 하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공식적 업무 시간 내에서 업무를 변경한 것. 그러나 이뿐만이 아니다. 다정도 병일 정도로 정이 많은 지 선생님은 업무와 무관한 때에도 여러 홈리스 여성들을 살피고 돕는다. 시설에는 꽤나 자주 중고 의류나 생필품이 후원품으로 들어오는데, 지 선생님은 그것들을 정리해서 꼭 필요한 사람을 찾아내 잘도 연결해낸다. “선생님, 이 옷 너무 잘 어울려요” 하며 입어보게 하고 싫다 하면 도로 옷걸이에 걸어 정리하고는 다른 옷을 대어보곤 한다. 후원품으로 화장품 샘플이 들어오면 또 그게 꼭 필요한 여성들을 찾아 사용법을 일러주며 사용하도록 한다. 이용인 중에 치매에 걸린 어르신이 한 분 있는데, 지 선생님은 이 어르신을 정말 살뜰하게 살핀다. 길을 자주 잃어 경찰차를 타고 시설에 돌아오곤 하는 어르신을 혼자 두면 안 된다며 산책길에 자주 동행하더니 얼마 전부터는 시설 냉장고에 어르신을 먹여야 한다며 견과류와 요거트를 쟁여놓고 매일매일 챙기고 있다.

[© unsplash]

하고 싶지만 일을 주지 않는 사회
아니, 이렇게 매사 열심히 하는 선생님이 어째서 홈리스가 되었던 걸까? 의아해하는 분들도 있으리라. 우리도 궁금해서 물었었다. 우리를 만나기 전에는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았냐고. 지 선생님의 근로 이력은 사실 변변한 게 없다. 어릴 때 부모가 이혼하게 되어 아버지와 함께 살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다시 엄마와 지내게 되었는데 자녀들을 챙기기 힘든 상황이었는지 지 선생님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는 외롭고 힘들었다고 했다. 급기야 왕따를 당해 학교를 제대로 다니기 힘들었다고 한다. 대인 관계의 트라우마가 너무 심해 사회에 나가 돈 버는 일 역시 하기 어려웠단다. 컴퓨터로 데이터를 입력하는 아르바이트를 잠깐 했었지만 생활을 유지할 정도로 오래한 적은 없고 용돈벌이 수준이었단다. 엄마와의 갈등으로 집을 떠나 고시원에서 잠깐 생활했지만 월세를 못 내서 결국 쫓겨났고 거리에서 노숙을 하다 시설에 오게 되었으니 살아오면서 직업다운 직업, 일다운 일을 한 건 시설에서의 자활근로가 처음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홈리스 여성들을 만나며 무슨 일을 하며 살아왔냐고 물어보면 그처럼 변변한 일자리 참여 경험이 별로 없는 경우가 꽤 있고, 일에 참여했더라도 시간제 일자리에 간헐적으로 참여해서 근근이 먹고살았다는 답이 많다.


모두가 일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알다시피 일반 노동시장에서 일을 원하는 사람이 다 고용되지는 못한다. 홈리스 여성은 대개 일반 노동시장의 좁은 구멍을 뚫지 못한 사람들이고, 앞으로도 쉽지 않은 분들도 많다. 많은 홈리스 여성들이 직업 경력이 일천하고 이렇다 할 기술을 갖고 있지 않아 비정규직, 시간제 근로에 참여하다가 쉽게 실직하여 생활 유지에 곤란을 겪곤 한다. 코로나19 확산 이후에는 간헐적 근로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던 분들이 생활을 유지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자영업이 어려우니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기도 쉽지 않아진 것이다.


심신의 건강이 좋지 않아, 일을 해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 채용이 될 만한 스펙이 없어서, 일을 수행할 능력이 너무 낮아서 등등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일반 노동시장에 나가 일자리를 찾고 유지하기에 취약한 홈리스 여성들에게 공공일자리나 사회적경제 일자리는 단비와 같다.


그래서 어떤 일이 필요하냐고? 한 가지만 있으면 된다고 하기 어렵다. 홈리스 여성들 각자가 사정도 다르고, 일을 하고자 하는 의욕도 다르고, 기능도 다르다. 그러니 굳이 답한다면 능력에 맞게 일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할 것이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시간만큼 일할 수 있는 곳, 일을 좀 더디게 해도 이해받을 수 있는 곳, 높은 부가가치를 생산해내지 못해도 압박을 덜 느낄 곳,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을 인정받는 곳… 그런 맞춤형 일이 필요하다. 하지만 홈리스 맞춤형 일자리를 발굴하거나 만들어내는 건 정부의 정책, 사회 시스템 등이 모두 작동해야 가능한 일이어서 만만한 건 아니다. 뭣보다 우리 사회가 홈리스의 사정을 헤아릴 만큼, 그들을 위한 대안적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낼 만큼 성숙했나? 안타깝게도 코로나19 시대 돌봄의 공백을 메우는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어 공급하자는 논의 속에서 홈리스가 참여 대상에 포함되었다가 시민들의 거센 반대로 빠지게 된 사건이 있은 지 불과 1년도 안 되었다. 홈리스 상황은 범죄가 아닌데, 경제적 어려움이 커서 홈리스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그걸 극복할 일자리가 가장 절실한 홈리스가 새로 만든 공공일자리 참여 자격을 갖기 힘든 건 얼마나 슬픈 일인가.


홈리스야말로 절박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사람들이다. 무수히 많은 지 선생님들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자신의 임대주택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글. 김진미
여성 홈리스 일시 보호시설 ‘디딤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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