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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7 빅이슈

#홈리스여성이야기 - 뭐니 뭐니 해도 주거가 먼저!

2024.04.09

이것은 일종의 후일담이 되겠다. 여원(가명) 님, 양순(가명) 님이 이번 3월에 들어갈 수 있는 지원주택 입주자로 선정되었다. 지난 1월 《빅이슈》(314호)에서 소개했던 여성들이다. 당시 두 여성을 포함한 몇 분의 여성들이 노숙을 벗어나는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다고 얘기했었다. 그 과정은 한 칸씩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게 아닐 때도 많다. 어떤 이는 다리를 건너기 시작한 곳으로 되돌아가기도 하고, 어떤 이는 다음 디딤돌로 안전하게 건너지 못하고 물에 빠지기도 하며, 또 다른 이는 한 발을 내딛기가 너무 힘들어 다음 칸으로의 이동이 더디기만 하다. 그 지난한 과정을 밟고 있는 두 분을 소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후에도 그녀들에게 한두 번의 고비가 있었다.

글. 김진미

고비

여원 님은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스스로 조절해 보려다 증상이 심해지는 일을 겪었다. 내가 만났던, 정신질환이 있어서 약을 복용하던 여성들 중 꽤 여럿이 어느 순간 스스로 복약의 양을 줄이거나 어떤 기능을 한다고 알게 된 약을 빼보거나 하는 식으로 조절하고자 했다.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약에 너무 의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러다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갖는 여성들도 있었고, 약을 먹으니 정신이 몽롱해져서 기분이 처지고 어떤 일을 하기 힘들다고 호소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이쯤이면 전보다 괜찮아졌으니 약을 좀 줄이거나 끊어도 될 것 같다고 판단한 여성들도 있었다. 그들 대부분이 처음엔 주변 가까운 이들과 그리고 주치의와 복약 중단을 의논하지만 대부분 원하는 반응을 얻지 못한다. 이후에는 조용히 알아서 이런저런 중단 시도를 한다. 여원 님은 약을 줄이자 바로 이전에 경험했던 증상이 심해졌다고 했다. 우울하고 불안해졌으며, 과호흡도 겪었다. 약은 성실하게 드시는 게 좋겠다고 설득하여 겨우 좀 나아졌다. 그런 뒤 어느 날인가는 가족의 소식을 듣고 또 스트레스가 심해져 심리적으로 힘들어했다. 애초에 가족 관계 스트레스가 심해 집을 떠났는데, 아주 오랜만에 가족의 사망과 상속 문제 같은 감당하기 힘든 연락을 받은 거였다. 그 소식이 깊이 쌓였던 감정을 터지게 했고 그녀를 다시 휘청하게 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기운 없는 목소리로 전화한 그녀에게 사회복지사는 고시원에만 있으면 안 된다고, 매일매일 시설에 와서 얼굴은 보여달라고 달래며 약속을 받아냈다.

양순 님은 지원주택 선정에 대한 연락이 늦어지자 떨어졌나 보다 하고 지레 실망하여 고시원에 틀어박혀서는 시설의 공공일자리에 무단결근을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술 마실 거리를 만들어내는 일이 반복되곤 해 이번엔 두고 볼까 싶기도 했지만, 상황이 악화돼야 좋을 게 없어서 두 명의 사회복지사가 고시원을 찾아갔다. 다행히 취한 상태는 아니나 코가 쏙 빠져 있는 그녀에게 우선, 당장 시설로 함께 가서 뭐라도 하자고 설득했다. 지극한 관심에 마음이 풀렸는지 따라왔고, 공동 작업장에 혼자 남아 일에 집중했다. 이후로 지금까지는 성실한 출근, 높은 성과, 다른 이의 의욕도 높이려는 에너지로 여러 참여자들의 존중을 받으며 꽤 잘 지내고 있다.

안정적인 주거가 우선

시설에서 이번 설을 준비할 때 여원 님과 양순 님은 각각 나름의 기여를 했다. 올 설에는 대기업 만두 말고 직접 빚은 만두를 먹어보자며 시작한 만두 빚기가 이용인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실무자에게 일 폭탄이 되어, 말없이 만두만을 빚고 있을 때였다. 양순 님이 소식을 듣고 찾아와 꽤 많은 만두를 솜씨 좋게 만들어주었다. 만두가 너무 예쁘다는 칭찬에는 “저 이런 일 좀 했었다니까요.” 하며 뿌듯해했다. 여원 님은 설 연휴 마지막 날 전통 음식 좀 그만 먹자며 특식으로 패스트푸드를 사다 먹기로 했을 때 동행해주었다. 햄버거와 음료, 과일이 꽤 무거웠는데 씩씩하게 더 많은 양을 받아들었던 그녀는 어느 사이 꽤 단단하고 힘이 있어 보였다. 그렇게 모처럼 수다를 떨며 함께 걷다가 불현듯, “선생님, 저는 여기 와서 제 인생이 바뀌었잖아요. 이런 곳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요. 저는 이제 꼭 이곳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복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뿌듯한 순간이 그런 때다. 복지 고객이었던 어떤 사람이 자신을 챙길 수 있고 다른 사람과 상황을 보는 힘이 생겼다고 느낄 때. 한발 앞으로 나아가나 보다, 하며 안도하는 순간.

그렇게 설 연휴를 보내자마자 지원주택 3월 입주자 선정 소식이 들려왔다. 여원 님과 양순 님은 뛸 듯이 기뻐했고, 계약이며 입주 준비며 신경 쓰고 할 일이 늘어나버렸지만 요 며칠 그처럼 표정이 밝을 수가 없다. 그녀들이 입주할 지원주택은 정신질환이나 알코올의존증이 있는, 노숙을 경험한 여성들이 자신의 독립적인 임대주택에서 살아가도록 SH가 주택을 공급하고, 서울시가 복지 서비스 예산을 지원하는 주거 서비스이다. 복지 서비스의 핵심은 지원주택 코디네이터와 슈퍼바이저 활동을 하는 실무자를 지원하는 것이다. 그 실무자들은 아마도 나와 나의 동료들이 시설에서 여원 님, 양순 님을 챙겼던 것처럼 그녀들이 지역사회의 주택에 들어가 지내는 중에 혹시 정신 건강이 다시 악화되거나 또는 지역사회에서 일을 찾고 주택을 관리하며 생활해나가기 힘들 때 근거리에서 지원하게 될 것이다.

이번에 노숙 경험 정신질환이 있는 여성들이 들어갈 수 있는 지원주택은 8호인데 입주자 선정 면접에 참여한 여성들은 두 배 가까운 수였다고 한다. 면접 참여자들 모두 지원주택이 꼭 필요한 분들이어서 시설이 추천서를 써 추천했지만 누군가는 안타깝게도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지원주택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내 경험으로 서비스 결합형 임대주택인 지원주택이야말로, 어떤 취약성이 있어서 지역사회에서 독립 주거를 유지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 홈리스가 보다 안정적으로, 좀 더 빨리 노숙에서 벗어나게 하는 강력한 자원이다. 질환과 장애가 있더라도 홈리스 상황을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보통의 삶을 살아가려면 뭐니 뭐니 해도 먼저 주거가 필요한 법이다.

김진미
여성 홈리스 일시보호시설 ‘디딤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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