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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6 인터뷰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작가 강지나

2024.02.20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될까. 현직 교사이자 청소년 정책을 연구하는 강지나 작가는 빈곤 청소년이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을 따라가며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10여 년간 빈곤 가정에서 자란 여덟 명의 아이들과 만남을 지속하며 어떻게 어른이 되어가는지 그들의 삶을 지켜봐왔고, 그동안 10대였던 아이들은 서른 즈음의 청년이 되었다. 소희, 영성, 지현, 연우, 수정, 현석, 우빈, 혜주. 어려움 속에서도 끝내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한 이들의 성장담은 흔히 가난한 아이에게 부여되곤 하는 얄팍한 서사를 해체한다.


강지나 작가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이 눈에 밟혀 교사 생활 중에 사회복지학을 공부하셨다고요.
교육 현장에서 실제로 보니 아이들이 겪는 빈곤이 제가 짐작만 해오던 것과는 많이 다르더라고요. 교사 생활을 시작했을 때였는데 한 학생이 여러 날 학교에 오질 않는 거예요. 가정방문 해서 사정을 알아보니 아이의 할머니가 자기 아들이, 그러니까 아이한텐 아버지죠. 아이 아버지가 자기한테 돈을 안 갚는다는 이유로 애들을 볼모로 잡고 학교를 안 보낸 거였어요. 그 일로 빈곤의 양상이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됐죠. 그런데 아이들을 돕는 데 교사로서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하게 됐어요.

여전히 빈곤 가정에서 자라는 청소년들이 많지만, 빈곤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건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아이들이 입고 신고 쓰는 물건들을 봐서는 가정 형편을 짐작할 수 없어요. 이유로 여러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 우선 가난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편견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가난을 드러냈을 때 따라올 사회의 차별적인 시선이 두려운 거죠. ‘패딩 거지’라는 말 아세요? 요새는 숏 패딩이 유행인데 유행을 따라가지 못하고 아직까지 롱 패딩을 입고 다니면 애들 사이에서 패딩 거지라고 부른대요. 이런 혐오 표현이 흔하게 쓰이다 보니 가난은 점점 더 감춰야 할 부끄러운 것으로 치부되어버리는 거죠.

책에서는 빈곤 청소년이 어른이 된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루고 있어요. 실제로 청소년이 성인이 됐을 때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학생 때는 대학만 가면 다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니까.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 아이들은 혼란을 겪어요. 책에 나오는 수정이의 경우, 오랫동안 기초생활수급 가정이어서 어려움이 많았는데도 정말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했어요. 그걸 토대로 대학에 진학해 유아교육을 전공했고요. 수정이는 대학 생활도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결국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고요. 그런데 그 과정을 보면 좀 슬프죠.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학비는 감당할 수 없고, 휴학이라도 하면 당장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이 끊기니까 대학 생활이 버거워도 참는 거예요. 졸업을 하는 순간 수급이 끊겨버리니까 ‘칼취업’을 해야 하고요. 수정이는 4년제로 편입하고 싶다는 꿈도 있었고, 더 안정적이고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 자격증 공부도 하고 싶었는데 가난한 아이들에겐 취업준비생으로 지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거예요. 월급을 받으면 저축도 좀 하면서 자기 자신의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데, 이런 경우 부모들이 아이에게 의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취직하자마자 바로 생계를 책임지느라 저축할 여력도 없고요. 성인이 되는 순간 청소년 때 받던 도움에서 벗어나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는데 가난한 청소년들은 아무 기반이 없으니 쫓기듯 살아가게 돼요.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도 빈곤의 대물림으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네요.
학비 지원을 많이 해주면 대학에 진학하고 졸업 후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갈 순 있겠죠. 하지만 그것만으로 가난에서 벗어날 순 없어요. 수정이의 경우만 봐도 그렇잖아요. 빈곤 대물림은 여러 불평등이 켜켜이 쌓여 있는 훨씬 복잡한 문제예요. 단순 학비 지원만으론 해결되지 않죠.

그렇다면 빈곤 정책을 고민할 때 또 어떤 차원의 지원이 고려되어야 할까요?
소희의 경우를 예로 들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소희는 조부모부터 대를 이은 폭력, 우울증, 중독으로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이였어요. 조부모의 가난과 병력으로 소희의 어머니도 소희처럼 교육과 돌봄이 결핍된 성장기를 보냈고, 그 결과 학력 등의 사회적 기반을 얻지 못해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요. 이런 조부모와 부모 밑에서 그들이 받는 사회적 차별에 노출돼서 살면서 소희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박탈되는 경험을 계속해서 하는 거예요. 보통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우울감과 낙인감 때문에 학교나 직장처럼 규칙적이고 통제력이 요구되는 단체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돌봄과 보살핌이 결핍된 성장기를 보냈고 가족 내에서도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다 보니 인간관계를 맺는 것도 어려워하고요. 이런 문제들이 학비 지원을 받는다거나 취직해서 돈을 번다고 해소되지는 않잖아요. 결국 돌봄에서 방치되어 중학교 때 학교를 그만둔 소희를 다시 일으킨 건 경제적 지원이 아닌 사회복지사와의 꾸준한 상담이었어요. 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들의 도움을 꾸준히 받아온 소희는 자신도 사회복지사처럼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기 시작했고, 대학에 들어가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죠. 물론 학비 지원도 필요하겠지만, 돌봄과 보살핌이 결핍된 빈곤 청소년에게는 그들을 둘러싼 건강한 공동체나 관계망을 만들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봐요.

여덟 명의 아이들은 절대적 빈곤이라는 같은 상황에 처해 있지만, 비슷한 조건 속에서도 사회적 자원을 이용하는 방법이나 가난에 대응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릅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발생하는 걸까요?
각자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빈곤이라는 것도 우리가 뭉뚱그려 빈곤이라 할 뿐이지 잘 들여다보면 ‘왜’ 빈곤한가에 대한 이유는 저마다 다르거든요. 그러니까 가난에 대처하는 방식도 당연히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어요. 만약 제가 빈곤 청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수치나 데이터로만 설명했다면 여덟 명의 아이들을 ‘저소득층 아이들’ 이렇게 하나로 유형화할 수도 있었겠죠. 근데 이건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다룬 이야기잖아요. 그 안엔 아이들의 삶이 있고요. 그냥 ‘가난한 아이들’의 이야기라고 하나로 묶어서 보기보다는 한 명 한 명의 삶에 집중해서 봐주셨으면 해요.

긴 시간 아이들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보셨는데요. 어떤 마음이었는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지역아동센터에 자원봉사를 나가면서 2010년쯤 아이들을 처음 만났어요. 처음 만났을 때 아이들은 대부분 열예닐곱 살 정도였고 이후 3~4년에 한 번씩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죠. 정식 인터뷰 외에도 꾸준히 연락을 이어갔는데, 그러면서 아이들의 우여곡절을 다 듣게 됐어요. 영성이 같은 경우는 군대 생활을 힘들어했고, 수정이는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서 너무 잘됐다고 생각했는데 엄마한테서 독립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 않았죠. 마지막 정식 인터뷰 때 수정이가 저한테 그런 말을 했어요. 자기가 어려운 시기를 많이 겪었고 그 사이사이마다 저를 만났는데, 이렇게 자기가 제일 희망적인 얘기를 할 수 있을 때 마지막 인터뷰를 하게 돼서 너무 좋다고요. 저도 같은 마음이에요.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던 아이들이 어엿한 사회의 일원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너무 기쁘고 대견하고 그래요. 아이들은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지해주는 한 사람만 있으면 이렇듯 자기 자리를 찾아가요.


글. 김윤지 | 사진. 김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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