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문장과 빠른 호흡. 5화 내외로 주인공의 목표를 밝히고 사건을 터트릴 것.
‘2022 SF 어워드’ 웹소설 부문 대상 수상작인 연산호 작가의 현대판타지 웹소설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이하 <어바등>)는 흔히 웹소설 작법이라 불리는 틀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13화부터 본격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조금은 느린 호흡의 <어바등>은 100화 가까이 연재된 비교적 늦은 시기에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23년 12월 작품이 완결된 이후에도 꾸준히 입덕의 길로 팬들을 이끄는 중.
2070년, 인류의 무분별한 개발로 지구의 기후 조절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된 한국의 근미래 국제해저기지를 배경으로 하는 재난물 <어바등>은 미지의 공간인 심해를 기반으로 한 탄탄한 세계관으로 SF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심해 3000m 아래의 해저기지, 그곳에 상주할 유일한 치과 의사로 뽑혀 입사한 지 닷새 만에 해저기지의 붕괴를 마주했다. 이런 상황에 나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어바등>은 재난을 마주한 인간상과 이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며 입체적인 캐릭터를 구축해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선한 주인공’ 박무현이 있다.
흔히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에게 부여되곤 하는 엄청난 능력도 생존 스킬도 없지만, 주인공 박무현에게는 선의라는 힘이 있다. 그는 물이 허벅지까지 차오른 상황에도 주인 없는 고양이를 구해내고, 부상자를 업고 계단을 오른다. 당연하게도 누군가는 그런 주인공의 행동이 답답하고 어리석다며 비난한다. 하지만 늘 자신의 이익이 우선시되고 가끔은 이기적인 것이 현명한 것으로 인정받기도 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는 꼭 필요하다. “전 호구라는 단어 싫어해요. 그건 착한 사람들을 비웃는 말이에요.”(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85화) 박무현은 이기적이기보다는 이타적이고 사람을 미워하기보다는 사랑한다. 쉬운 길을 두고 늘 어려운 길을 가려 하는 주인공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건 그것이 옳은 길이라는 걸 우리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 이번 호 ‘커버스토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