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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49 인터뷰

우리 안의 슬픔, 말하고 연대하기

2021.04.19 | 영화 <당신의 사월> 주현숙 감독 인터뷰

그날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2014년 4월 16일

이후 “잊지 않겠습니다.”라던 다짐이 조금씩 잊히고 죄책감도 분노도 희미해진 세월호 7주기에 찾아온
<당신의 사월>. 영화는 평범한 시민들이 품은 그날의 기억을 들려준다. 그들의 이야기는 나의,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고, 상처받은 마음을 가만히 어루만져준다. 잊을 수 없는 날을 가슴에 품었기에 우리는 잊지 않을 수 있다. 서랍 속 깊은 곳에 있던 샛노란 리본을 꺼내 가방에 달고 주현숙 감독을 만나러 갔다.

<당신의 사월> 주현숙 감독

지난 3월 23일에 시사회가 열렸죠. 정식으로 영화를 선보이게 된 소회가 궁금해요.
어떻게 보실지 걱정됐어요. 코로나19 때문에 영화를 보는 패턴 자체가 달라졌고, 세월호를 소재로 한 영화라 보기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있잖아요. 영화가 가진 외적인 제약이 많아서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을지 고민했는데, 많이 보러 오셔서 다행이에요. 세월호를 다룬 이야기를 아직 보기 힘들어하지만 여전히 ‘봐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았어요. 특히 기자들이 처음에는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가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고 ‘왜 진작 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대요. 미리 스크리너 링크를 받고도, 세월호를 생각하면 여전히 힘드니까 보는 걸 미루고 있었는데, 막상 보니까 너무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영화 <당신의 사월> 포스터

저도 그랬어요. 다들 비슷했네요.
그리고 그 사실을 저한테 고백하세요.(웃음) 진작 볼 걸 그랬다고, 생각보다 많이 힘들진 않았고, 울긴 울었는데 힘들기만 한 게 아니라 개운한 느낌이 있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관객이) 이 영화랑 만나기만 하면 메시지를 전해주는 데는 크게 무리가 없겠다 싶었어요.

<당신의 사월> 이전에 4·16연대 미디어위원회가 제작한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의 일부인 단편 <이름에게>가 있었어요. 2018년 공개한 단편을 장편으로 확장해 작업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세월호 4주기에 <이름에게>를 만들었는데, 이 콘셉트로 30분은 부족한 시간이었어요. 당시 만들면서도 장편으로 가자고 얘기했죠. <이름에게>랑 달라진 점은 인터뷰이 세 분이 빠지고 한 분이 추가됐어요. 평범한 사람의 분포를 좀 더 높였어요.

이유경(학생), 박철우(카페 사장), 조수진(교사), 정주연(인권 활동가), 이옥영(어민)이 출연하는데, 평범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제가 작업을 구상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미리 소문을 내거든요. 세월호 사건 목격자에 관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더니 처음 나온 반응은 ‘힘들겠다’였고, 이어 나온 반응은 ‘나는 이랬어’라고 자기 얘기를 하는 거였어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선뜻 경험을 얘기해주는 게 되게 흥미로웠고, 그날의 경험과 고통, 충격의 내용이 사람마다 달랐어요. 사건이 일어난 후 ‘교통사고’니 ‘시체 장사’니 하는 사회적인 반응이 있었는데 인간적으로 참혹하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진상 규명이 되지 않는 것 자체가 충격이다, 이런 얘기도 듣고요. 다 다른 거예요. 이걸 들여다보면 좋겠다 싶어서 시기별로 충격과 트라우마를 연대기로 보게 됐고, 그러면서 영화로 만들기 위한 섭외를 하고 자료 조사를 했어요.

영화 <당신의 사월> 스틸

출연자들이 세월호에 대해 말하는 걸 어려워하진 않았어요?
대부분이 ‘제가 세월호에 관한 얘기를 해도 되느냐’고 되물었어요. 유가족이거나 지인을 잃은 게 아니니까 자격을 두고 질문하신 거죠. 영화의 콘셉트가 자격이 필요한 게 아니라 본인이 보고 느낀 것을 얘기하는 거라고 말씀드렸어요. 하나같이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니까 도움이 된다면 하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원래 섭외를 좀 잘해요.(웃음) 자기가 확신이 없어도 앞에 있는 사람이 확신에 차 보이면 기대서 가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요. 저는 이게 다뤄볼 만한 주제고, 해야겠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물론 아픈 기억이긴 하지만요.

영화 <당신의 사월> 스틸

인터뷰 중에 박철우 씨가 “4월 16일이 오는 걸 어떡해요. 그걸 막을 순 없잖아요.”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에 남았어요. 촬영하면서 특별히 울림이 있었던 장면이 있나요?
저는 제 영화의 주인공들을 무척 사랑해요. 박 사장님은 섭외할 때 기획 의도를 듣자마자 우셨어요. 그런데 이분이 아주 매력적인 게 감정 표현이 풍부하면서도 자기 할 말은 다 하는 캐릭터예요. 자기 안의 억압도 없고, 그걸 또 말로 잘 표현해주시고 현실을 누구보다 냉철하게 바라보는 분이에요. 자신의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잖아요. 보통은 힘들면 외면하게 되는데, 감정도 잘 들여다보고 자기반성도 잘하세요. 영화의 모든 등장인물이 그랬어요. 어민 이옥영 님도 그 얘기(사고 해역에서 시신을 수습한)는 안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분은 목격자인 동시에 피해자이시기도 하잖아요. 국가가 책임지지 않아서 개인이 목격하게 된 거라 트라우마도 있었고, 촬영 전에 그 이야기는 안 하겠다고 하셨어요. 그렇지만 대답 안 한다고 안 물어볼 수는 없잖아요. 말을 안 하는 것도 메시지니까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말씀하셨고, 얘기를 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한 것 같다고 하셨어요. 영화의 인물들이 입체적이고 주체적이어서 납작하지 않은 이야기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영화 <당신의 사월> 스틸

한편, 유가족인 문종택 씨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모습만 등장하고 인터뷰는 하지 않았죠.
슬픔에 위계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출연자들이 이미 스스로 말해도 되는지 주저했잖아요. 그런데 유가족이 얘기하는 순간 위계가 생기고, 위계가 자아내는 폭력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의 입을 닫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그날 실시간으로 세월호가 침몰하는 장면을, 그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순간을 봤으니까 ‘누구나 그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는 영화니까 그 메시지를 지키고자 한 거죠.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시간이 흐르면서 많이 달라졌어요. 정권 교체를 촉발했지만 그 이후로도 진상 규명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고, 영화에서 정주연 씨가 말했듯이 “안전사고 프레임에 가두는” 시선이 생기기도 했어요.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더 필요하다고 보세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게 해결되려면 적어도 왜 이런 사건이 벌어졌고, 왜 구조하지 못했는지 답이 있어야 하는데 없잖아요.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사회가 되려면 다 같이 합의를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동시에 사회적 신뢰를 상실했잖아요.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았고 ‘이게 나라인가’라는 질문이 생겼어요. 존재 자체가 굉장히 위험한 사회라는 메시지를 준다고 봐요. 인간이 존엄하지 않은 거죠. 우리는 그럼 희생된 사람들을 어떻게 애도할지 방식을 고민하고 이야기 나누는 게 중요해요. 그걸 알아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겠어요?

영화 <당신의 사월> 스틸

영화의 주인공들은 세월호 사건으로 인생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온 국민이 충격을 받고 어떻게든 영향을 받았을 텐데, 살다 보면 ‘뭐가 변한 건가?’ 하는 회의가 들 때도 있어요. 감독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나요?
저도 3주기까지는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없었어요. 슬프고 무섭고 막막했거든요. 그런데 이 작업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를 들으면서 나만이 아니라 다들 이 사건으로 힘들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위안이 된다고 해야 할까요? 비슷한 감정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과정 자체가 좋았고, 제 감정에 이름을 지을 수 있게 됐어요. 내가 너무 예민한 게 아니라 사회적 참사이기 때문에 힘들다는 걸 알게 된 거죠. 병에 걸렸을 때 병명을 알면 덜 무섭지 않아요? 이름을 붙이게 됐으니 이제 잘 좀 들여다봐야죠. 그렇지만 준비가 안 된 분들은 당장 직면할 필요는 없어요. 사람마다 시간이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왜 같이하지 않느냐고 따질 필요가 없어요. 영화에서도 우리 안에 씨앗을 심었다는 얘기가 나와요. 영화를 같이 봄으로써 씨앗에 영양분을 줘서 조금 더 빨리 건강하게 싹이 트면 좋을 것 같아요. 나이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아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해요. 무리하지 않고 느낀 만큼 하면 되고, 내가 왜 진작 못 했을까 하고 자책할 필요도 없어요. 자기가 느낀 만큼 하다가 힘들면 나중에 하고, 좀 느려도 되니까 그랬으면 좋겠어요.

감독님의 전작 <계속된다>는 이주노동자가, <멋진 그녀들>에서는 결혼 이주 여성이, <빨간 벽돌>에선 구로동맹파업의 주체인 여성들이 주인공이에요. 소외된 사람들, 목소리가 필요한 사람들에 관심이 많으신가요?
제 영화의 주인공이 소외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멋진 사람들이지 않아요? 이주노동자들을 보면 아무런 생활 기반이 없는 다른 나라에 와서 일한다는 게 대단하잖아요. 그러나 어쨌든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있고, 이 사람들이 소외에 한해서는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들이 평범하게 살 수 있다면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분들이 피해를 받아서 약해진 거지, 원래 약해서 피해받는 게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었어요. 저는 제 영화의 주인공들이 다 당당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제가 궁금해하고 동경하는 것 같기도 해요. 구로동맹파업(1985년)의 주인공들도 노동운동을 한 30년 넘게 계속하셨으면 달랐을텐데, 20대 초반에 하다가 한동안 안 하셨어요. 그 점이 되게 매력적이에요. 1년 동안 열심히 조직해 2천여 명이 모여 딱 6일간 파업하고 다 흩어졌거든요. 궁금하잖아요.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인 거죠. 당시 무섭지 않았을까? 이런 걸 물어봤어요. 파업 이후에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온갖 신파적인 이야기가 있는데 인생에 딱 한 번 멋진 일을 한 거예요. 평생 멋진 일을 할 필요는 없고 인생에 한 번쯤 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당장 못 한다고 해서 슬퍼하지 말고 언젠가는 나도 저런 일을 할 수 있겠지, 싶으면 재미있겠다 싶었어요. 제가 궁금한 분야를 열심히 공부하고 자료 조사하고 사람들 만나고 영화로 만들어서 공유하는 게 재밌어요.

<당신의 사월> 주현숙 감독

다큐멘터리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영화만이 가진 조건이 있잖아요. 다큐멘터리는 어떤 포맷이나 장르가 정해져 있지 않아요. 아예 없진 않지만 TV 프로그램이나 극영화처럼 포맷이 잡혀 있진 않잖아요. 물론 제약은 많죠. 과거에 있었던 일을 내레이션으로 이야기할 건지, 재현할 건지, 인터뷰로 전할 건지 선택지가 많지만 다큐멘터리는 영화적인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하는 작업이에요. 어떤 때는 대중적인 문법이나 실용적인 게 필요할 때도 있는데 정도를 맞추는 게 재밌어요. 진짜 어렵고 답도 없고 답을 끝까지 찾는 게 힘들긴 하지만….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이 힘들다고 할 때 제가 “그래서 재밌잖아.” 하면 막 재수 없다고 해요.(웃음) 만약에 이 일이 쉬웠으면 계속했을까 싶어요. 마지막에 편집할 때는 곶감 꼬치에서 곶감을 하나씩 빼먹는 느낌이 들면서 하나하나가 너무 아까워요.(웃음)

책을 읽다가 너무 재밌어서 책장을 넘기기 싫은 느낌인가요?
(놀라며) 진짜 그래요. 재밌는 책은 한 챕터씩 남겨놔요. 그 재미를 즐길 시간을 지연하는 거죠. 주변에선 진짜 이상하다고 하고.(웃음)

마지막으로 세월호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해주시면 좋겠어요.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을 다는 건 이 사건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잖아요. 리본이 안부의 아이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너 괜찮아?” 하고 물어보는 아이콘이 돼서 <당신의 사월>을 보고 리본을 달고 서로 안부를 물었으면 좋겠어요.


양수복
사진 김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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