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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49 인터뷰

원룸 생활 - 스쳐가는 집에 대하여

2021.04.28 |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나의 집은 어디인가
소희와 저는 고향 친구이자 같은 대학 동기예요. 같은 교복을 입고 고교 졸업사진을 찍었는데, 학사과정 졸업을 앞둔 최근까지 안부를 묻고 지내니, 우리가 단순히 스쳐가는 인연은 아닌가 봐요. 최근 소희가 “집에 돌아가던 어느 날, 이곳이 내 집인가 싶어 한참 고민했다.”라고 말했어요. 서울의 한 원룸 주택에서 ‘나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소희의 일상과 ‘임시 거처’라고 표현한 집이 궁금하더군요. 소희의 스쳐가는 집에서 우리의 인연은 스쳐가지 않고 더 길게 이어졌습니다. 오늘은 소희의 서재이자 부엌이자 다용도실이면서 침실인 원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한 사람이 사는 집
자기소개를 부탁해.
안녕하세요.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김소희입니다. 손으로 뭘 만들거나 일기를 쓰는 등 사부작거리며 뭔가 하는 걸 좋아해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
코로나19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이 폐업해서 일을 쉬면서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입사 지원서를 내고 탈락하는 과정을 거듭하다 보니 자기 효능감을 느끼고 싶어서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다시 시작했어. 평소에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고민으로 머릿속이 뿌옇다면, 일을 할 때는 행동의 결과가 명확하게 나타나서 좋아. 단순한 일이지만 퇴근 시간이 되면 오늘도 무언가 해냈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썩 괜찮고, 레스토랑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분들을 볼 때면 다른 사람들이 행복한 추억을 쌓는 데 보탬이 되었다는 생각에 뿌듯해.(웃음)

코로나19가 심했던 지난해에는 주로 집에 있었다고 들었어.
주로 방에서 혼자 온라인 강의를 듣고 과제를 하면서 지내니까 누군가와 대화할 겨를이 없었어. 어떤 날은 정신을 차려보니 일주일이나 사람을 못 만났더라. 전화로라도 누군가와 대화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서 친구에게 연락했었지.

사회적 거리두기가 1인 가구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 같아.
교환학생으로 외국 학교에 다니면서 내가 얼마나 외로움에 취약한지 깨달았기 때문에 한국에서 거리두기가 시행된 이후에는 예전처럼 외로움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며 실패하고 다시 시도했던 것 같아. 혼자 잘 지내는 법을 알기 위한 생활 루틴 짜기와 일기 쓰기, 무력감을 털어내기 위해 시작한 달리기 등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 결국엔 사람들과 대화하고 웃는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더 깊이 깨닫게 되었지만.(웃음)

타인과 이어져 있다는 걸 느끼며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해진 것 같아.
요즘엔 슈퍼나 음식점에서 뭔가를 살 때 한 마디라도 더 하려고 해. 대답도 무척 열심히 하고, 영수증도 버려달라고 하면서 괜히 넉살을 피우게 되더라(웃음). 집에 정적이 감돌 땐 팟캐스트나 브이로그를 틀어놔.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생활 소음을 배경음악 삼으면 왠지 모르게 기운이 나거든. 또, 대학가에서 살다 보니 집 근처 카페에 가면 홀로 있는 학생들을 많이 봐. 나도 그 풍경 속에서 할 일을 하다 보면 서로 연결돼 있다고 느껴. 다 같이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구나, 힘내야지. 이런 생각이 들어.

슬러시 같은 집
이 집에는 언제 처음 왔어?
2019년 여름에 프랑스에서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와 구한 집이야.

‘집’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기분이 어때?
사실 집 하면 이상적인 집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올라. 생활 공간이랑 침실이 나뉜 공간을 주로 상상하는 것 같아. 원룸에 사는 많은 사람이면 공감할 텐데, 한 공간이 침실이고 서재고 부엌이고 다용도실이거든.

이 집에서 1년 넘게 살았는데, 지금 사는 집보다 살고 싶은 집을 먼저 떠올리는구나.
고향에서 19년을 살다가 대학에 진학한 이후 1년 혹은 반년 단위로 집을 옮겨 다녔기 때문에 더 이상 고향집도 내 집 같지 않고, 서울의 자취방도 집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아.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언젠가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완벽하게 내 집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 그래서 집 하면 언젠가 내가 집이라고 느낄 공간과 그 공간에 있는 나를 먼저 상상하는 것 같아. 볕이 잘 들고, 큰 테이블을 놓을 거실이 있으면 좋겠다는 구체적인 상상을 하기도 하고, ‘여기는 내 집이야.’ 하고 느끼며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나를 떠올리기도 해.

주거 환경이 계속 바뀌어 많이 힘들었구나.
사실 한곳에 오랫동안 정착할 수 없는 게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젊은이들의 현실이잖아. 그래서 내가 지나쳐왔고, 지나쳐갈 모든 집에 좀 더 애정을 주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거주 기간을 따지지 않고 내가 집 삼아 지낸 공간들에 다정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이 집에서 지내는 동안 달라진 점이 있다면서?
해가 잘 들지 않는 집에 살면서 하루라도 좋은 날씨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산책하는 버릇이 생겼어. 또 빨래할 때 세탁기에서 나는 소리가 너무 커서 머리가 울리는 것 같은데, 방음이 잘 안 되니까 다른 집 세탁기 돌리는 소리도 엄청 크게 들리더라고. 세탁기 소리가 나면 산책하러 나가는데 세탁하는 시간이 산책하기 알맞은 시간이더라.

방음이 안 돼서 민망한 적도 있었다고 들었어.
지금 사는 원룸을 따뜻한 시선으로만 바라보고 싶지만 급하게 구해서 문제가 많아. 방음 문제도 그중 하나야. 갓 이사 왔을 때 옆집 연인의 잠자리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는 거야. 사생활이라 그냥 넘길까 했지만, 무작정 참아야 하는 날이 반복되니까 스트레스가 심했어. 이 내용을 어떻게 전달할지 한 달 가까이 고민하다가 복도에 편지를 남겼더니 그 뒤로 괜찮아졌어.

원룸에 살았거나 살고 있는 사람들은 공감하는 지점이 많을 거야.
원룸을 떠올리면 온갖 감정과 생각이 섞여 있는 슬러시 같아. 비용 대비 좁은 평수, 날림 공사로 인한 생활 소음, 방 하나에 경계 없이 놓인 살림살이들. 이런 것들을 떠올리다 보면 이런 상황을 감수하면서 서울에서 살아야 하나 싶어 답답해져. 그렇지만 서울에 몰려 있는 일자리, 그사이 애정을 준 동네와 풍경을 생각하면 서울 생활을 쉽게 청산할 수 없어. 특히, 좁은 원룸이 답답해 동네의 커피숍이나 도서관에 가고, 주위 하천이나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동네가 곧 내 집처럼 느껴지기도 해. 그러다 보면 정든 동네의 원룸도 꽤 살 만한 곳 같아. 그러다 또 이웃집에 소리가 들릴까 봐 조심하는 나를 발견하거나 낮에도 어두운 집을 보면 다시 이건 아닌데 싶고. 이보다 더한 애증의 관계가 있을까?

※ 이번 기사는 <원룸 생활 - 스쳐가는 집에 대하여 2>로 이어집니다.


손유희
좋아하는 것들을 기록하다가 기록 자체를 좋아하게 된 사람.
주로 글을 쓰고 가끔 영상도 만드는 블로거이자 유튜버.

사진 이규연
바쁜 일상 속 반짝이는 찰나를 담는 사진작가. 편안하고 차분한
사진을 좋아하고, 시선이 오랫동안 머무르는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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