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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41 인터뷰

가족이 있는 집

2020.12.31 |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성인이 되어도 친구들끼리 별명을 지어 부르는 건 즐겁습니다. 저 역시 옥수수를 좋아하는 친구를 ‘수수’라고 부르고 있죠. 대학 시절 늘 당당한 혜람이를 보며 ‘수수답다’라고 말하곤 했는데, 최근에 혜람이가 원래의 자신을 잃어버렸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과정에서 집과 가족이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혜람이의 집으로 갑니다.

수수다운 일상

자기소개에 MBTI 성격 유형 검사 결과를 꼭 넣고 싶다고 했지.
호기심 많은 나를 잘 설명해주거든. 철학과 휴학생, ENTP, 스물세 살 이혜람입니다.

휴학하고 다양한 걸 했잖아.
철학과 영어를 꾸준히 공부하면서 코딩과 주식을 배우고 있어. 무계획이 계획이야. 그날그날 하고 싶은 공부가 달라서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며 호기심을 충족하고 있어. 하루를 규칙적으로 보내는 편 같아. 아침 요가를 하고, 아르바이트 가기 전과 다녀온 후에 하고 싶은 공부를 한 뒤 잠들어. 평일에는 과외랑 학원에서, 주말에는 카페에서 일하고 있어. 사람들은 나한테 왜 쉬지 않느냐고 묻는데 난 쉴 필요를 못 느껴. 지금 생활이 딱 좋아.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구나. 학기 중에는 새벽까지 과제하고, 아침 일찍 학교 가는 일이 잦아서 걱정했어.
동양철학을 공부해서 그런가? 몸을 다스려야 정신도 맑아진다고 생각해. 불규칙한 생활을 하니까 정신이 흐려지더라고. 그래서 요가를 시작했고, 정해진 식단도 지키면서 SNS에 결과를 기록하는 재미로 살고 있어.

틀리는 게 두려워서 말을 아끼던 나는 패기 있는 수수가 늘 부러웠어.
나는 언니의 신중한 태도가 늘 부러웠어.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자랑쟁이였거든. 할 말 다 하며 지냈었지. 틀려도 질문하면 답변을 들으며 더 잘 이해하게 돼. 그리고 새로운 생각이 또 떠오르지. 나는 그 과정이 참 좋아.

자유로운 집

가정집 방문이 오랜만이라 반찬을 이것저것 차린 밥상, 식후에 먹는 과일, 부모님 목소리가 들리는 것 모두 색달라.(웃음)
반찬이 많은 건 나도 적응이 안 돼. 우리 집도 원래는 이렇게 안 먹어.(웃음)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친구 집에 곧잘 놀러 갔는데, 고등학생 때는 주로 학교에 있었고 대학생 때는 자취를 해서 가족들이랑 함께 있는 게 어색해.
내가 집에서 활력 담당이라 고등학생 때 기숙사에서 지내니까 집이 조용했었대. 그땐 우리 집이 민박집이었어. 친구들이 “혜람이네 집에 가자.” 하지 않고, “람이네 민박집 가자.” 했었지. 방학 때면 예약하고 올 정도였어.

민박집은 방학이 성수기지. 공부는 안 하고!
놀 궁리만 했어.(웃음) 아빠가 내 친구들한테 편하게 대해주셔서 맥주 마시며 밤새 놀았지. 나는 부모님이 나와 동생을 교육하는 방식이 무척 마음에 들어.
동생이 프로 게이머가 되고 싶어 하는데, 자식이 프로 게이머 되겠다고 하면 나는 무작정 말릴 것 같아. 그런데 우리 아빠는 동생 말을 끝까지 듣더니, 피시방 가는 건 보기 좋지 않다며 관련 용품을 다 사주셨어. 아빠가 그렇게 하는 게 좀 멋졌어. 나중에 결혼한다면 부모님처럼 살고 싶어.

타인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 실망도 큰 것 같아. 이건 가족도 마찬가지고. 넌 장녀인데 부모님이 그에 대한 부담을 주신 적이 없다고 말한 적 있잖아. 수수네는 독립적인 생활을 보장해주는구나 싶었어.
많은 친구들이 자취를 원하더라. 가족과 함께 살면 자유롭지 않대. 그런데 나는 내 방이 자취방 같아. 누군가 들어오는 게 싫으면 문을 잠가놔. 나쁜 짓을 하려는 게 아니라 나만의 공간을 보장받고 싶은 거야. 그리고 집안일도 분담해. 각자 자기 방은 알아서 청소하고, 거실과 부엌은 공동 공간이니까 다 같이 담당하지. 그리고 할머니도 학교에 다니셔. 쉽게 말하면 할머니 유치원이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기며 노후를 독립적으로 보내고 계셔.

함께 살지만 개인의 공간이 있구나.
생활의 만족감은 공간에서 느끼는 안정감에서 시작되는 것 같아. 만족할 줄 알면 욕심부릴 필요 없지. 그래서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우리 집이 참 좋아. 그리고 독립적으로 행동하려면 믿음이 필요해. 눈에 보이지 않고 말로 한 적도 없지만 부모님이 나를 믿는 게 느껴져. 그래서 나도 부모님을 신뢰할 수 있지.

가족들이랑 다툴 때도 있지 않아?
가족은 칼이랑 비슷해. 좋은 용도로 쓰면 한없이 좋지만, 나쁜 용도로 쓰면 굉장히 위험하잖아. 싸우기도 가장 많이 싸우지만, 위로도 가장 많이 받는 존재가 가족 아닐까. 아, 그리고 집에 들어왔는데 누군가 먹은 라면 냄새가 날 때면 엄청 화나.(웃음)


손유희
사진 이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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