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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36 인터뷰

‘심리학자 소방관’ 사브리나 코헨-해턴 인터뷰 2

2020.10.08 | 아무도 날 구해주지 않았지만

노숙에서 벗어나기 위해 《빅이슈》를 팔던 열다섯 살 홈리스 사브리나 코헨-해턴(Sabrina Cohen-Hatton)의 삶은 고민과 선택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잡지 판매 경쟁자를 줄이기 위해 소도시로 판매지를 옮겼고, 목표한 소방관이 된 후에도 뿌리 깊은 성차별과 마주하며 더 단단해져야 했다. 게다가 재난 현장은 순간의 선택이 생사를 가르는 예민한 곳이었다. 해턴은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의사 결정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위기 상황에서의 의사 결정법에 대한 연구로 박사과정을 마치며 영국의 소방 구조 시스템에 혁신을 가져왔다. 저서 <소방관의 선택>(원제 <The Heat of the Moment>)을 통해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하고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방법을 소개한 사브리나 코헨-해턴 박사와 서면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영국 소방관 중 여성의 비율은 5%에 불과하다. 부당한 성차별이 상처가 되지는 않았는지,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왔는지 궁금하다.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고 성희롱도 당했다. 부적절한 사진들이 내 휴대폰으로 전송되기도 했고, 내가 ‘여자라서’ 승진할 수 없다는 말도 들어야 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상처받았다. 매우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나는 공개적으로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했는데, 권력관계가 내게 불리하다고 느꼈고, 내가 불공평한 상황에 대해 말했을 때 사람들이 나를 골칫거리로 여기거나 특별 대우를 요구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불평을 제기하지 않았고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다. 대신 하나씩 도전했다. 이 모든 경험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공부하며 전날보다 더 나은 나를 만들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어려움을 연료로 삼으며 열심히 노력했다.

당시 차별을 없애기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걸 지금은 크게 후회한다고 책에 썼다. 만약 후배 여성 소방관이 같은 일을 겪는다면 뭐라고 조언하고 싶은가.
공개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라고 말하겠다. 이런 상황에서 가해자는 종종 이 상황이 당신의 잘못인 것처럼, 그리고 당신이 창피를 당하도록 몰아갈 것이다. 그들은 틀렸다. 창피를 당해야 하는 건 가해자다. 이는 피해자인 여성들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 권력의 흐름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그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약해질 수 있는지 경험하는 상황이 다들 있을 것이다. 이들의 공감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우고 실제 일어나는 일을 마주하면서 도전을 거듭하며 상황을 바꾸는 힘을 과소평가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제아무리 소방관이라도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는 현장에 출동하는 걸 좋아하기는 힘들 것 같다. 훈련을 반복하면 스트레스가 큰 환경을 받아들이기 쉬워지나.
수영을 예로 들어보자. 수영장에서만 연습했는데 바다에서 수영해야 한다면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기존에 배운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될 거다. 의사 결정 또한 다르지 않다. 안전하고 평온하며 스트레스 없는 환경에서 연습하는 것만으로는 어려운 환경이 닥쳤을 때 기술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오히려 스트레스에 잠식당할 수 있다. 그러니 훈련은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특히 어려운 환경에서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래야 실제 상황에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를 보고 울 정도로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보통 감정은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데 방해가 된다고 여기는데, 당신은 공감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나.
책에서 나는 중요한 결정 유형 두 가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분석적인 의사 결정은 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옵션을 가늠하고 가장 옳다고 생각하는 한 가지를 고를 때 일어난다. 이 같은 판단은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했다고 믿기 좋아하는 종류의 판단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압박 속에서 도출하는 판단의 80%가 의사 결정자의 ‘본능적인’ 반응에 의한 ‘직관적인 결정’이다. 이 반응은 이전의 경험에서 오는 연상 작용을 기반으로 나타난다. 뇌는 복잡한 변화 속에서 빠르게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고, 이런 종류의 판단을 할 때 지름길을 이용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을 빠르게 산출해낸다. 의사 결정에서 분석적인 방법이든 직관적인 방법이든, 압박 속에서 의사 결정을 얼마나 훌륭하게 해내는지를 반영하는 건 아니다. 공감은 지휘관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다. 상황에 대응하고 위험을 판단하며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서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켜내는 소방관에 대한 공감, 그리고 삶에서 아마도 가장 힘겨운 시간을 마주하면서 의지하고 있을 사람들에 대한 공감. 이런 것이 더 열심히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준다. 공감 능력과 함께, 자아를 잊는 것도 중요하다. 사람들의 삶과 죽음이 달린 결정을 할 때 본인을 고려할 여유는 없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성공 사례만큼이나 실패 사례를 가지고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다음 법의학적으로 실패를 분석하고 그 실패의 책임을 지며 이를 바탕으로 지향점을 찾을 수 있다.

결정하기 전에 세 가지 질문, ‘이 결정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목표)’, ‘어떤 결과를 예측하는가(예측)’, ‘이득이 위험을 얼마나 능가하는가(위험과 이득)’를 빠르게 따져보는 의사 결정의 기술은 고위직 인물에게도 필요하지만, 매일 위기에 놓이는 홈리스 등 소수자에게도 필요한 것 같다. 의사 결정에 관해서 생사의 기로에 놓인 절박한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경험에 미루어보아 알고 있다. 생존을 위한 하루하루를 보낼 때는 삶의 전략을 고심할 정신적 여유가 없다. 나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한다. 빈곤한 사람들은 기회에 한계가 있다. 지금 내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은 그들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현재 상황은 당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결정하는 게 아니라 단지 어디에서 출발하는지 결정한다. 가끔 이 여정이 너무 길게 느껴지고 얼마나 더 가야 할지 몰라 지치고 포기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이럴 때는 전체 여정을 생각하기보다는 다음 단계만 생각하길 바란다. 그런 다음 한 발자국씩 계속 걸어 나가면 된다.

《빅이슈》를 판매하던 벤더에서 영국 빅이슈의 홍보대사가 되었고, 소방대장, 심리학 박사 등 많은 목표를 이뤄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
홈리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싶다. 홈리스라는 것을 정체성이 아니라 경험으로 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그 여정이 내가 한때 지내온 상황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많이 힘겹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겪은 것보다는 쉬운 여정이길 바라고, 내 경험을 전달하는 것으로 도움이 되었으면 하기에 계속하려고 한다.


양수복
번역 최수연
사진제공 사브리나 코헨-해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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