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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53B 컬쳐

드라마만 할 수 있는 일 | <닥터X : 하얀 마피아의 시대>

2026.11.04

<닥터X : 하얀 마피아의 시대>(이하 닥터X) 원작에서 주인공 다이몬 미치코(요네쿠라 료코)가 새 직장에 발령받을 때마다 하는 일이 있다. 자신의 근무 조건을 공표하는 것이다. 논문 뒤치다꺼리, 불륜 은폐, 회진 참여, 회식과 친목 도모 등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조건은 조직 생활을 하는 의국의 다른 의사들에게는 와닿지도 않고 동의할 수 없는 사항들이라, 원성을 많이 산다. 그럼에도 수술이나 진료가 아닌 일이 떨어질 때, 단호하게 거부하면서 다이몬은 이렇게 말한다. “그거, 의사면허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죠?”


원작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캐릭터 계수정(김지원) 역시 수술 외에 조직의 일원으로서 요구되는 업무를 거부한다. <닥터X> 초반에 드러나는 이 업무의 실체는 대부분 선배들의 비위를 맞추거나, 의국 내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이다. 질병이라는 ‘문제’를 빠른 수술로 해결하는 히어로 스타일의 주인공인 만큼 극 자체도 속도감이 높다. 게다가 수정은 “전 실패하지 않습니다”를 입에 달고 산다. 그의 세계에는 언뜻 성공만이 있고, 그 안에서만 사는 듯하다. 그런 수정에게도 점점 예외가 생긴다.


의사라서 주변 사람들의 건강 상태나 습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병원 청소 노동자에게 음료를 건네고, 자신도 용역 의사라며 “선배님이시네요”라고 말하는 건 분명 사회생활의 일종인 넉살이다. 살가운 의사는 의학 드라마의 단골 캐릭터긴 하나, 수술만 고집하는 외곬 여성 의사가 조직에서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노동자의 건강을 살피고, 민주항쟁 과정에서 형을 잃은 환자의 환시를 짐작하는 장면은 그간 보기 어려웠기도 하다. 원작의 다이몬 역시 회차가 거듭될수록 면허가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에 손을 내미는데, 어린 소녀의 수술을 위해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권모술수를 발휘하는 장면 등이 그렇다. 마치 인간 사회에서 의외의 선택은 필수라고 말하는 듯하다. 마법을 부리듯 빠르게 수술을 해내는 수정에게도, 효율이 최선이라고 말하는 이 세상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정과 기대가 필요하다고 설득하며 드라마는 앞으로 나아간다.


<닥터X> 초반에 등장하는 소녀는 장애가 있는 엄마와 노동 착취에 항의하는 이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희소병을 갖고 살아간다. 수정의 평소 논리대로라면 이들과의 대화는 업무 외의 일이다. 그러나 “구질구질하다”, “죽는 게 낫다”고 말하는 소녀에게 수정은 수술의 중요성을 피력한다. 또한 5·18 생존자에게 수술을 하면 형의 환영이 사라짐을 설명한다. 노동자와 장애인, 군 폭력 피해자, 사회적 비극을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낸 이들의 아픔을 전면에 드러내는 이 드라마가 말하고 싶은 건 뭘까. ‘뜬금없다’고 여겨지는 주제를 삶과 연결해내는 것이 드라마의 역할이라는 것, ‘<닥터X>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 드라마여야만 가능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 아닐까.

SBS 금, 토 밤 9시 50분 방송

글. 황소연

사진. SBS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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