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농부다, 여성 농부다, 청년 여성 농부다. 충남 아산에서 유기농 배 농사를 짓고 있다. 농민은 왜 ‘먹고살기 어렵다’고 느낄까. 먹거리가 풍성한 현대사회에서 한국의 농업 자급자족은 왜 이뤄지지 못할까. 도시인들은 배추, 과일값이 비싸다고 하는데 그 수익이 생산자인 농민들에게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전부를 다룰 순 없겠지만, 농촌 현지에서 농사를 짓는 여성 농부의 입장에서 솔직한 이야기를 담아보려 한다.
한국 사람들은 ‘먹는다’는 것에 굉장히 큰 의미를 부여한다. 먹는 행위에 비유한 관용어들이 너무나 많다. 인사도 “식사는 하셨어요?”, 직업은 ‘밥벌이, 밥그릇’이고, 약속을 잡을 때는 “밥 한번 먹자”,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고”, 요즘 가장 인기가 많은 콘텐츠 장르인 ‘먹방’은 세계에서 통용되는 고유명사가 되었을 정도로 한국인의 먹거리 사랑은 대단하다. 경제 상황이나 생활이 열악해지면 “먹고살기 힘들다”라고 한다. 요즘이 바로 그런 시국이다. 먹고살기가 힘들다. 내란 사태 이후 천문학적 경제 손실이 이어졌고 그 여파가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장보기가 두렵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을 넘어, 이제는 식료품 절도 사건이 뉴스에서 보도되기 시작했다. 생존의 기본인 식료품을 훔친다는 것은 그만큼 서민경제 상황이 파산 지경에 이르렀다는 징후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느낌은 그냥 느낌적인 느낌이 아니다. 원체 한국은 식료품 가격이 다른 나라에 비해 비싸다. 경제 수준에 비례해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말이 아니다. 절대적으로도 더 비싸다. 농축수산물 가격이 전반적으로 높기 때문에 외식 비용뿐만 아니라 각 가정 식비 지출도 만만치 않다. 주식인 쌀, 밀가루, 감자 등은 1.5~2배 정도, 유제품, 과일은 특히 더 비싸다. 유럽, 영미권, 중국에 비해 2~3배 더 비싸다. 이런 상황엔 복잡한 내적 이유들과 외교적, 정책적, 역사적 맥락이 있다.
우선 농업의 물리적 기반 자체가 열악하다. 지질학적으로 한국은 척박한 화강암질에 형성된 지 오래된 토양이다. 투입이나 개량 없이 자연 상태의 한국 땅에서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 없다. 계절이 뚜렷하기 때문에(지금은 이 구분이 파괴되고 있지만) 가파른 산간 지형이 국토의 70%를 차지하여 평야가 부족하여 규모화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농작업도 쉽지 않고 인력이 많이 필요하다. 심지어 요즘은 급속한 기후변화까지 겹치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수십 년 뼈 굵은 농부들도 기상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작년 벼농사뿐만 아니라 과수 채소 등 거의 모든 농산물이 생산량이 폭감하면서 김치대란, 사과파동, 대파코인 등 수급 불안정과 가격 폭등의 위기를 불러일으켰다. 결국 생산기반 자체가 열악하기 때문에 생산도 비효율적이고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이다.
기이한 한국의 농업 유통구조
그다음으로 기이한 유통구조다.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경매 시장의 독과점 비율이 높다. 가락으로 대표되는 도매·경매 시장이 농산물 유통의 전권을 쥐고 흔들고 있다. 더욱 심각한 부분은 농산물 유통을 독점한 몇 개의 업체들이 농업 계열이 아닌 건축사라거나 대기업 카르텔의 연장이라는 점이다. 농산물 유통은 불투명한 구조이기 때문에 이 시장 자체가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워낙 굳게 뿌리내린 관행들 때문에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특히나 과수 시장은 더더욱 그렇다. 과수 도매시장이 저장유통 인프라를 독점하기 때문에 개별 농업인들은 자신의 과일을 공판장에 올릴 수밖에 없는데 이 과일을 엄청나게 많은 등급과 개별 포장 단위의 과잉 작업을 요구하는 납품 기준에 맞춰 요구하기 때문에 인건비와 포장비가 많이 들어 유난히 가격이 더 높다.
또한 외관과 당도 위주의 품위를 엄청 따지기 때문에 먹는 데 지장이 없는데도 팔지 못하는 물량이 발생한다. 당연히 가격이 더 오를 수밖에 없다. 이 손해도 대부분 농민들이 감수한다. 생산자 개개인으로서의 농민들은 조직화되기 힘들기에 유통권을 가진 도매시장을 상대로 자기 생산물에 대한 가격결정권을 주장할 수도 없고 유통망이 독점되어 있기에 다른 대안을 생각할 수도 없다. 농사에 들어가는 비용은 상승하고 난이도도 높아지는데 중도매인이 농산물의 가격을 맘대로 결정해버리니 농사를 영위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수요, 공급 조절도 어려워 농산물 가격이 널을 뛰기 때문에 농민들은 농산물을 가지고 도박을 할 수밖에 없다. 때가 되면 뉴스에 밭과 논을 갈아엎는 비극적 장면들이 나오는 이유가 이것이다. 수확을 해서 포장을 하고 시장에 올리는 가격도 건지지 못하는 값을 받게 되는 것이 뻔하면 그냥 밭을 갈아엎는 것이 경제적으로 덜 손해 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농민들이 농산물의 제값을 받지 못하여 농업의 안정적 경영과 지속가능성이 사라지는 동시에, 도매시장을 거치느라 늘어난 유통 과정의 마진이 불어나며 소비자들은 비싼 가격에 신선도가 떨어지는 농산물을 구입하게 된다.
세계는 소리 없는 농업전쟁 중
정부의 소극적인 농업 지원 정책도 한몫한다. 미국, 중국, 유럽 등 식량 주권을 중요하게 여기는 주요 국가들은 엄청난 정부 지원금을 책정해 실행하고, 식량을 비축하고 시장 조정을 통해 가격과 공급 안정을 이루고 있다. 농업 인구가 줄어들고 농지도 축소되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처럼 회복 불가능한 정도로 급감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규모 투자도 과감하게 시행하는 편이다. 자국 농업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대내외적으로 갖추고 대비한다. 경제학적으로 농업이 갖는 특수성이 있어서 단 1%만이라도 과잉 생산되면 가격이 폭락한다거나 저장과 유통의 한계가 있어서 가격 안정성이 떨어진다거나 1차 농산물 생산만으로는 폭등하는 부동산 가치를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에 정부 정책적 지원이 없는 한 농업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론이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서 식량 자급과 식량 무기화의 시대가 도래했고 세계 각국은 소리 없는 농업전쟁 상태에 돌입한 지 꽤 시간이 지났다. 특히 급변하는 국제정세, 전쟁, 코로나19와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 지도의 상전벽해는 순간순간 인류를 패닉상태로 만들었다. 식량주권, 종자주권, 농업주권의 격렬한 경쟁 구도에서 한국은 하루하루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25%대로 75%의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자급률은 점점 떨어질 것이다. 결국 식량 자급이 어려워지고 수입에 완전히 의존하게 되면 지금도 먹고살기 힘든데 수입산 농산물의 가격도 부르는 것이 값이 되고, 품질도 형편없이 떨어질 것이다.
농민과 소비자들 모두를 위해서는 이런 구조적인 부조리를 극복하는 협력관계가 필요하다. 직거래, 공영 도매시장, 공공 푸드체인 시스템, 로컬푸드, 공동출하, 협동조합 등 대안적인 유통망을 활성화하고 제도화하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정책적으로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마음으로라도 농업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해야만 한다. 공정한 농산물 가격이 보장되고, 비농민 시민들도 먹거리와 식량 주권에 관심을 가질 때, 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장보기가 두렵지 않은, 먹고살 만한 사회가 될 것이다.
김후주
청년 여성 농업인
글. 김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