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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28A 스페셜

나는 너를 어디까지 알 수 있을까? - 내 아이돌의 사주

2024.10.21

유튜브나 검색창에 ‘아이돌 사주’만 쳐도 온갖 아이돌의 사주 풀이가 튀어나오는 지금, 그야말로 ‘대해석 시대’가 아닐 수 없다. 사실상 공인의 그 어떤 비밀도 허락되지 않는 이 대한민국에서 사주 정도야 어떤가 싶지만, 용한 무당은 생년월일과 관상만 봐도 앞으로 벌어질 사건 사고는 물론, 연애 타입이나 취향까지도 알아낸다고 하니 약간 섬뜩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검색창에 아이돌 이름만 서치하면 감당하기도 힘들 정도로 방대한 양의 정보가 쏟아져나오는 이 시대에 왜 우리는 그들의 사주까지 궁금해하는 걸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잘못된 욕망일까? 아니면 단순한 놀이에 불과한 것일까. 어째서 팬들은 사실 여부도 확인되지 않은 사주 풀이에 열광하는 걸까? 누군가는 아이돌 팬을 대표해 오해를 풀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쑨디

사주는 ‘정보’가 아닌 ‘해석’

먼저 이 글을 읽을 ‘머글’(오타쿠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을 뜻함)들에게 밝혀야 할 한 가지 비밀이 있다. 사실 누군가의 열성적인 팬, 즉 ‘오타쿠’가 되는 과정에서 팩트 여부는 딱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지 않는다. 팬들이 좋아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거짓으로 꾸며둔 아이돌의 ‘캐릭터 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실제와 가깝거나 연결 고리가 많을수록 더욱 과몰입하게 된다. 실제로 열성적인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캐릭터 성을 해석하고 상상하는 것에 많은 시간과 감정을 소비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오타쿠와 머글이 확실하게 갈리게 된다. (만약 이 부분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면 당신은 오타쿠가 될 가능성이 현저하게 낮은 천연 머글이다. 축하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아이돌 팬에게 ‘사주’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가상의 유명 아이돌 A군을 예시로 들어보자. 사주 풀이에 따르면 A군은 ‘관심받는 것을 좋아하고 주목받는 것을 즐기는’ 사람인데, 사실 A군의 실제 성격은 굉장히 내성적이고 예능에서도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이럴 때 이성적으로 보면 ‘역시 사주는 가짜다.’라고 판단하는 것이 맞지만, 여기에 사주 풀이와 같은 해석을 붙이기 시작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역시 A군은 안 그런 척했지만, 관심받는 걸 즐기는 사람이었어! 완전 천상 아이돌!’ 그리고 ‘역시 정말 귀여워!’라는 감상이 따라붙게 된다. 그렇다. 여기서 핵심은 생년월일이라는 변하지 않는 진실에서 파생된 어떠한 ‘정보’가 아니라 이를 ‘해석’하는 방식인 것이다.

다시 정리해보면, 아이돌 팬들은 사주가 그 아이돌에 대한 새로운 정보이기 때문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풀어주는 재미있는 해석이기 때문에 열광하는 것에 가깝다. 그리고 이 해석이 팬들이 상상하는 원래의 캐해(캐릭터 해석의 줄임말)와 가까울수록, 또는 기존 캐해의 방향성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지만 신선하게 느껴질수록 열광하게 된다. 약간 머리가 어질어질할 수 있지만, 이를 아이돌이 아닌 본인에 대입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당신의 MBTI나 사주가 ‘스스로가 생각해온 나 자신’과 비슷하거나 당신의 행동, 생각에 대한 해석이 될 때 비로소 가슴 깊숙이 열광할 수 있지 않겠는가? 대상만 다를 뿐, 아이돌 팬도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것이다.

에스파 유튜브 캡처

너를 잘 알고 있다는 착각

그렇다면 아이돌 팬을 가상의 무언가에 열광하는 집단으로 결론 내리면 되는 걸까? 그런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엔 조금 복잡한 요소가 얽혀 있다. 우선 ‘아이돌’이라는 존재가 아무리 비현실적이고 꾸며낸 환상에 불과하다 해도 어쨌든 그들도 현실에 존재하는 실존 인물이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동시에 많은 팬들이 괴리를 느끼는 지점이기도 하다. 실재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내가 생각하는 아이돌과 실제 아이돌 사이에는 외면적으로나 내면적으로나 (아무리 작고 미세할지라도)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차이를 발견할 때마다 팬들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미묘한 균열과 마주하게 되는데, 이때의 간극을 메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캐해’다.

여기서의 ‘해석’은 ‘이해’라는 단어로 바꿔서 설명할 수도 있다. 즉, 사주 풀이를 통한 캐릭터 해석은 실존 인물인 아이돌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이런 현실과 캐해 사이의 균열은 아이돌과 팬 관계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도 매우 흔하게 발견되는 현상이다. 당신은 가족과 친구를 얼마나 믿고 있는가? 그들이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얼마나 확신할 수 있을까? 만약 당신의 생각과 현실 사이에 균열이 생긴다면 어떤 방식으로 간극을 메꿀 것인가? 어떤 세상에서는 이러한 방식으로 균열을 메꾸기도 한다. 꼭 이해하거나 공감할 필요는 없다.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세상이니까.

유튜브 '아이돌 사주' 검색 결과

국밥도 남이 말아줘야 제맛이 난다

그렇다면 왜 하필 ‘사주’일까? 위에서 언급한 모든 해석이나 상상들은 사실 혼자 방구석에 앉아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아이돌 팬들이 적극적으로 역술가에게 사주 풀이를 의뢰하고, 콘텐츠로 만들어진 아이돌의 사주 풀이를 구독하고 구매한다. 왜 그럴까?

이에 대한 대답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남이 해주는 해석이 나 혼자 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기 때문이다. 국밥도 남이 말아주는 것이 맛있고, 해석도 남이 해주는 것이 더 재미있다. 심지어 10년 넘게 사주 풀이만 해온 캐해 전문가들이 해주는 해석은 얼마나 재미있을까? 심지어 내가 그간 해온 캐해가 사주적으로도 옳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바로 이런 이유로 아이돌 팬들은 사주 풀이에 열광하게 되는 것이다.

최대한 머글의 눈높이에 맞춰서 이야기해봤는데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아이돌 팬, 오타쿠들은 이런 이유로 사주 풀이를 한다. 위에서도 밝혔지만, 이 모든 일이 의미 없게 느껴지거나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행위로 느껴진다면 그냥 당신에게 오타쿠 DNA가 없을 뿐! 딱히 이해나 공감을 바라고 쓴 글이 아님을 명심하자. (그리고 머글들도 오타쿠들이 이해 못 하는 행동을 자주 한다.)


쑨디

X @deeplovehalf

케이팝을 좋아하는 오타쿠, 가끔 글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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