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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27 스페셜

숲의 기억 - 화폐경제 이전, 생동하는 연결망을 찾아서

2024.09.13

10년 전 한국을 떠나 6년간 부랑 생활을 했다. 누구보다 작은 체구에 지독한 허리 지병을 지닌 나는 35ℓ 배낭에 들어가는 최대 8㎏ 정도의 물건밖에 가질 수 없었다. 모든 소유가 말 그대로 어깨에 짊어진 ‘짐’이었으므로, 매번 배낭을 풀었다가 다시 여밀 때마다 무언가와 작별하곤 했다. 그런 행위가 그다지 새삼스럽거나 금욕적으로 여겨지진 않았다. 배낭을 짊어지기 이전에도 별 그렇다 할 가진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딱히 잃을 것도 없었고, 굳이 내려놓아야 할 게 있더라도 매우 초라한 것들뿐이었다.

가난한 사람은 –한평생– 열심히 일해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가족, 문화, 교육, 제도… 온 세상이 나에게 외쳤다. 그러나 이 사회는 나를 적응시키는 데 처참히 실패했다. 가장 큰 원인은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도무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열심히 일해 돈을 버는 행위는 가성비가 떨어지는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모두가 부자가 되려 했고, 그럴수록 그 길은 경쟁률만 높아져 더더욱 가성비가 바닥을 쳤다.

비단 가난에 대한 이야기뿐만은 아니다. 아픈 사람은 집에서 쉬어야 했고,(마치 모두가 집을 가진 게 당연하다는 듯이) 선택한 적도 없는데 ‘여성’이라 지정되어 태어난 인간에게는 여러 가지 제약이 따랐다. 혼자서 어딘가 다녀올 때마다 사람들은 물었다. “위험하지 않았나요?” 마치 위험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만물의 질서를 나 또한 지탱해야 한다는 듯이. 그런 세상에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쾌적한 삶을 위한 의존의 기술

어쩌다 보니 6년간 한국 사회 바깥에서 살아남은 나는, 운 좋게도 그 여정을 기록해 〈사회적응 거부선언〉(온다프레스, 2023)이라는 책으로 펴낼 수 있었다. ‘해외여행’을 가려면 먼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아야 한다는 오해를 잠식시키기 위해, 1장에는 히치하이킹, 카우치서핑, 덤스터다이빙 등 갖가지 ‘생존의 기술’을 담았다.

그런 잔기술을 익히고 수년간 섭렵한 후 한국에 돌아왔을 땐 인생이 그렇게 쉬울 수가 없었다. ‘내국인’으로서 당분간 정착 생활을 하며 대부분 시간을 하고 싶었던 작업에 할애하다 보니, 어느덧 무명 감독, 뮤지션, 작가로서 쓰리잡을 뛰게 되었고, 그럭저럭 쏠쏠한 여름철 투어 수입도 생겼다.

졸지에 자수성가해버린 나는 나름대로 삶의 질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매달 최소 지출 금액을 정해보기도 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질하게 살 텐가? 한 달에 적어도 20만 원은 써보자! 뭐 이런 식이었다. 그러나 그쪽 분야에 창의력이 부족한 나는 기껏해야 동료 활동가들에게 밥을 몇 번 사는 정도로 지출 한도를 채우기에 급급했다.

삶의 질은 그런 식으로 드높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지난겨울, 3년 만에 다시 방랑자가 된 나는 이전 부랑 생활과는 차별화된 쾌적함을 누려야 한다는 생각에 돈을 더 쓰려고 했는데, 그럴수록 어쩐지 더 궁핍해지는 것 같았다. 돈을 낼 때보다 남의 집이나 야외에서 훨씬 잘 잤으며, 사 먹는 것보다 해 먹는 게 더 맛있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언제나 적어도 일정 부분을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했고, 가끔은 그런 삶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그것이 나를 여태껏, 이토록 쾌적하게 길러준 역사는 다 잊은 채.

의존이란 무엇인가. 바로 현대 교육과정이 모두가 혐오하도록 조장하는 ‘사회악’이다. 의존적이라는 평가는 모욕적이며, 스스로가 그렇게 인지할 때 더욱 그렇다. 반면 독립적인–남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는 언제나 멋져 보인다. 그렇다면 함께 산다는 것은? 거기다 자연과 더불어 살기라도 한다면? 모호한 상상에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 잃어버린 방랑 감각을 되살리기 위해 나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충분히 의존적이지 않았다면, 지난 10년간 내 삶은 과연 어땠을까? (그저 암담해 숨이 막혀온다.) 의존함으로써 남에게 해를 끼쳤는가?

문득 자립이란 단어가 ‘성공’과 격렬히 맞닿아 있으며, 그 이미지는 너무나 구체적이고 이상적이라 오히려 허상에 불과하단 걸 깨닫는다. 그러한 환상 속에서 형성된, 자립을 향한 –끝없는– 욕구야말로 우리를 시간적, 물질적, 심리적 궁핍 속에 머무르게 하는 건 아닐까? 그러니까 평생 배워온 바와는 정반대로, 자립하려 할수록 내 삶이 자유에서 멀어지고 있었던 거라면.

무소유가 끝이 아닌 시작이라면

4년 전 혈연관계가 아닌 네 명이 전 재산을 합쳐 100년 묵은 농가 주택과 주변 땅을 헐값에 구매해 세운 M모 공동체가 있다. 이후에 합류한 구성원들 역시 재산과 수입을 전액 나누는 데 동의한 공동경제 공동체로, 현재는 12명 규모로 불어났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마치 가능해선 안 된다는 듯한 수많은 질문에 그들은 이렇게 답했다. 결국에는 모두가 무소비를 지향하는 쪽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그들은 텃밭 농사와 덤스터다이빙으로 식량을 대부분 해결했고, 각자 가진 옷과 책, 음반 등을 한데 모아 공유했으며, 냉장고, 세탁기, 자동차 한 대를 나눠 쓰며 생활했다. 오래된 집이라 나가는 온갖 수리비와 공과금, 기타 생필품 비용을 합쳐,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한 달에 100만 원 정도가 든다고 했다.

누군가는 텃밭을 가꿨고, 누군가는 일종의 가내수공업으로 타이니하우스-아주 작은 집을 짓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누군가는 종종 선원으로 일하거나 근처 대안학교에 출강을 나갔다. 11명이 아이 한 명을 함께 돌보았으며, 월요일마다 대청소, 화요일엔 공동체 회의를 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모든 수입은 공동체 금고로 들어갔다. 결과는 언제나 흑자였다. 매달 인당 평균 10만 원씩만 벌어도 돈이 쌓였기에, 언젠가 근처 땅을 사들여 공동체를 확장하는 동시에 숲 복원 작업을 할 계획도 있었다.

이웃 동네 D모 공동체는 수십 년 전 문을 닫고 방치된 낙농 시설을 다섯 명의 청년이 인수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들은 혹여나 공동체가 망하더라도 건물과 땅을 되파는 일은 없도록 하는 데 서약했다. 그곳을 부동산 시장에서 완전히 빼내어 미래에 공간이 필요한 누구라도 쓸 수 있게 할 작정이었다. 주거보다는 커뮤니티 구축에 주력하고자 한 D는 (M에도 있는) 목공 작업장, 금속 공방, 자전거 수리소는 물론 도서관, 체육관, 합주실 겸 공연장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런 곳에서 지내며 공동체 사상에 노출된 지 불과 며칠 후에는 자립, 즉 ’혼자서 잘 산다’는 게 거의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의미도 없게 느껴졌다. 효율적 생존을 위해 실천할 수밖에 없었던 미니멀리즘 역시 내가 여러 선택지 속에서 적극적으로 고른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히 무소유의 변태이자 진화였다. 소유물을 보살피고 유지하는 책임과 부담이 n분의 1로 줄어든다면, 그래서 여럿이 함께 가질수록 이득이며 그로 인해 더 많은 걸 소유할 수 있다면. 필요한 것들을 혼자서 다 갖추지 않아도 된다면. 모든 걸 돈으로 해결할 필요 없다면.

편의상 공동체와 공동소유에 관해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함께라는 감각은 육체적, 물질적 차원 너머에 존재한다. 그것을 더욱 깊고 넓게 느낄수록 우리의 삶은 자립에 대한 환상과 욕구를 떠나 비로소 ‘자유’의 뜻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무엇에 의존해야 할지, 누구와 함께 살아가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면, 태어나면서부터 무작위로 배정받은, 본인이 선택한 적 없는 익숙한 공간과 관계에서 물리적 혹은 심리적으로 조금 멀어져보는 건 어떨까? 그 과정을 ‘여행’이라 불러볼 수도 있겠다.

함께 걸으며 지키고자 하는 것들

사프미(Sápmi) 지역의 S모 공동체는 1970년대에 환경운동가들이 개발 위기에 처한 원시림을 지키기 위해 북부로 이주하면서 시작되었다. 자연과 상호 의존하며 살고자 한 이 마을의 대안 문화적 실험은 1년 중 절반이 눈에 덮이는, 한겨울 영하 40도의 추위에도 지난 50년간 이어져왔다. 지금은 다행히도 여름이라, 요즘 나는 매일 숲속을 쏘다니며 야생 버섯과 블루베리를 따 먹으며 지내고 있다. 함께 걸을 때, 마을 사람들은 식용버섯보다는 희귀한 버섯과 사라져가는 이끼, 딱따구리 등 멸종위기종의 흔적을 찾아 기록하는 데 훨씬 열정적이었다. 이런 식으로 숲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언제나 존재해왔다.

그리고 점거하는 사람들,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 판화나 실크스크린으로 굿즈를 제작해 투쟁 기금을 마련하는 사람들, 비건 음식을 잔뜩 만들어 와 현장에서 연대하는 사람들, 토종 씨앗을 수집하고 보존하고 이웃과 나누는 사람들. 참사 현장에 굳이 찾아가는 사람들, 불의에 목 놓아 울며 분노하는 사람들, 슬픔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무력감에 빠진 사람들,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사람들. 그런 서로를 돌보는 사람들.

지난 반년간 열심히 돌아다닌 결과, 이들은 우주의 먼지이자 별의 파편처럼 온 세계에 존재하며 각기 다른 모습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런 현상을 확인하고 증명하는 것이 어쩌면 이번 여정에서의 내 역할인지도 모르겠다.

숲을 거닐다 버섯을 만난다면, 다가가 인사하고 주위를 둘러보라. 그들은 결코 혼자인 적이 없다. 버섯의 뿌리(mycelium)는 무한하고, 인간의 존재 역시 그 네트워크의 작은 일부로서 속해 있다. 단순히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나는 끝없이 세상에 던져져 만물과 새롭게 관계 맺고, 쉼 없이 교차하고 변형하며 뻗어나갈 것이다. 복잡하게 얽힌 그 길 위에서, 함께 살아갈 동료들과 서서히 마주칠 것이다. 숲은 그렇게, 까맣게 잊었던 태초의 기억을 되살려주었다. 결국엔 아무것도 가질 필요 없다는 것을.


이하루

트랜스젠더퀴어. 히치하이커. 녹색변태(@greenecobeach). 돌아다니며 영화를 만들고, 이런저런 타악기를 두드리고, 중얼거리고, 투쟁하고, 가끔은 글을 쓴다. 전문가가 되긴 틀렸다. @harul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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