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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22 에세이

녹색빛 - 사랑한다면 그대로 내버려두라

2024.07.10

글. 서해 | 사진제공. 녹색연합

이 글을 읽어주시는 고마운 분, 설악산에 가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봄과 여름의 설악만 만나보았는데요, 봄에는 우주의 별만큼이나 무수하게 움트는 연둣빛이, 여름에는 그 어떤 근심과 더위도 쓸고 내려갈 듯 시원한 계곡과 바람결이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에게 설악산은 낯선 곳이었습니다. 나무들이 빼곡해 유려한 선을 그리는 제가 봐온 산들과 달리, 단단한 척추뼈 같은 바위들이 높은 자리에 우뚝하게 솟아 있는 모습의 설악산은 생소했습니다. 그러나 그 낯선 세계가 궁금했습니다.

그런 저에게도 드디어 설악을 깊이 알아갈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녹색연합에서 해마다 봄이 되면 떠나는 녹색순례 덕분입니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땅의 자연을 온몸으로 만나기 위해 1998년부터 시작된 녹색순례의 24번째 제목은 ‘설악은 포기하지 않는다’입니다. 40여 년간 싸워온 설악산 오색케이블카의 착공식이 지난해 11월 진행되었고, 시공사 선정만을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올해가 오색케이블카를 저지할 수 있는 정말 마지막 기회라는 마음으로 설악으로 향했습니다.

과거에 설악을 찾았을 때는 그저 아름다운 자연을 엿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일반적인 등산객의 입장에서 만난 설악산은 곳곳의 폭포가 멋들어지고, 기암괴석이 웅장한 눈 돌릴 틈 없이 볼거리가 풍성한 산이었습니다. 설악에 대한 저의 첫인상은 ‘휘황찬란’이었습니다. 설악을 지켜온 역사, 설악의 아픔을 몰랐을 때까지 말입니다.

설악산 소공원에서 녹색 치마를 입고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피켓을 든 남성을 마주친 적 있으신가요? 맞습니다. 산양과 형제가 되어 설악산 어머니의 품속에서 살아가는 박그림 선생님입니다. 저는 설악도, 설악을 지키기 위한 긴긴 투쟁의 역사도 다 알지 못합니다. 설악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당위적으로 알지만, 네가 지키고 싶은 게 무어냐 묻는다면 단번에 떠오르는 모습이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전해주시는 말속에서 내가 모르는 설악을 만나고, 지켜온 긴긴 시간을 감히 가늠하고, 설악을 지키고자 하는 이유를 찾습니다.

알지 못했던 세계

박그림 선생님은 본인이 설악산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쳐 쓰러졌을 때 산에 들어가면 설악산 어머니가 자신을 다독여 일어나도록 해주었다고 합니다. 산양이 머물던 바위굴을 빌려 며칠을 머물며 설악의 빛과 어둠을 느끼고, 어떤 때에는 자신의 옆자리에 산양이 비집고 들어와 함께 잠을 청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설악을 속속들이 만나고 느껴야 비로소 감히 내가 지켜야 하는 게 어떤 존재들인지 깨달을 수 있나 봅니다.

설악과 설악에 깃들어 살아가는 뭇 생명들을 알려고 노력한다면, 사랑한다면 결코 그 무엇도 바꾸려들 수 없을 것입니다. 알려고 하지 않으니, 사랑하려 하지 않으니 케이블카를 세우겠다는 무자비한 마음을 먹을 수 있었겠지요. 케이블카를 타고 삽시간에 산의 정상부까지 오르면서 과연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요. 무언가 느꼈다 한들, 그것이 망가뜨리기 이전의 설악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순례의 마지막 일정인 해단식을 위해 오색지구로 향하는 길에 우리는 산양을 만났습니다. 구불거리는 도로 옆으로 가드레일과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차단 울타리가 설치되어 있고, 그 사이 폭이 1m 정도 되는 공간에서 나오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인간 멋대로 산양의 공간에 세운 구조물에 갇혀 당황하는 모습은 참담했습니다. 우리가 지켜내야 하는 것이 어떤 존재들인지 분명히 보여주고, 지켜내지 못했을 때 벌어질 미래를 암시하는 듯했습니다. 산양은 우리에게 설악을 떠나도 잊지 않고 살아야 하는 게 있다고 강렬히 알려주려 했던 것은 아닐까요.

설악을 알아가려 하고, 설악을 사랑하는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시가 있습니다. 영국의 종교인이자 시인 제라드 맨리 홉킨스의 시 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습지와 야생을 잃어버린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들을 내버려두라

오, 야생과 습지, 그것들을 내버려두라

잡초와 황무지여 영원하라


서해

녹색연합 자연생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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