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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4 에세이

<리치 아메리칸 걸스> (2)

2024.01.06

이 글은 '<리치 아메리칸 걸스> (1)'에서 이어집니다.

<리치 아메리칸 걸스> 스틸 ©애플티비

돈으로 영국 귀족 사회를 침략하는 미국 아가씨들
경쾌한 설정이지만 이런 결혼 작전을 둘러싼 역사적 상황은 복잡하다. 이미 <다운튼 애비>, <길디드 에이지> 등의 시대극에서 익숙히 봤듯이 사람들은 돈을 갈구하면서도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없다는 듯 행동한다. 2023년의 우스꽝스러운 올드머니 열풍은 이런 황금시대의 유산이다. 돈이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유서 깊은 가문에서 대대로 물려받은 재산을 가진 게 아니라면 귀족 반열에 낄 수 없다. 결국 미국의 신흥 부자들은 딸을 영국 귀족에게 시집보내 신분 상승을 꾀하고, 작위도 있고 장원(莊園)도 있지만 이를 유지할 돈이 없는 가난한 영국 귀족 남자들은 이런 결합을 통해 자신들의 빛바랜 영광을 조금이나마 연장하려고 애쓴다. 이런 교환에서 경제적으로 부족하지 않고 최고 작위를 가진 공작이라면 최상의 신랑감이고 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다. 하지만 돈과 사랑 중 무엇을 택할 것인지는 로맨스 장르의 영원한 화두, 낸과 테오의 관계에 다시 가이가 끼어들면서 낸의 사랑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

원제인 ‘The Buccaneers’는 원래 카리브해와 태평양 일대에 출몰하는 해적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서는 영국이 미국을 침공했듯이, 다시 돈을 가지고 영국의 귀족 사회를 침략하는 미국 아가씨들을 가리킨다. 이디스 워튼의 원작이나 1995년 버전은 이런 상호 교환을 전제로 한 결혼의 본연적 결함을 포착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마틴 스콜세지가 감독한 <순수의 시대>(1993)를 보더라도 원작자인 워튼이 사교계의 허상을 묘사하는 날카로운 관찰자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2023년 버전의 시즌 1은 낸의 로맨스에 따른 결단을 묘사하는 데 그쳤다. 이 작품에도 물론 새로운 시각은 있다. 주인공과 친구들은 가정 폭력,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는 트라우마, 성적 정체성의 혼란에 시달리고 이를 극복하려 애쓴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자유를 위해 서로 연대한다. 이런 메시지를 품었지만 이 드라마의 메인 디시는 볼거리다. 근사한 데뷔 무도회, 영국 시골의 장엄한 장원 미로 속 숨바꼭질, 스코틀랜드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 휴가와 신년 파티, 그리고 화려한 결혼식.

이는 지금 제작되는 많은 시대극의 성격을 요약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대의 시대극은 시대 상황의 변화에 따른 다양한 가치를 담으려 하면서도 결국은 아름다운 의상과 화사한 미술, 주요 인물 사이의 전통적 로맨스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시대극의 인기 비결인 동시에 필연적 결함이다. 고전을 현재에 재현하려는 시대극이 맞서야 할 도전이기도 하다. 현대의 젊은이들은 자기 존재감을 입증하려고 발버둥치는 와중에도 ‘재미’를 놓칠 수는 없고, 무엇보다도 평등을 추구하는 듯하면서도 올드머니에 매료된다.

이런 시대극에 비평가들의 평가는 엄격하고 시청자들의 호응은 높다. 현재 <리치 아메리칸 걸스>는 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평론가 지수 76%, 시청자 지수 95%를 기록하고 있다. 결국 자매를 구하기 위한 선택을 한 낸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시즌 2가 펼쳐져야 알 수 있고, 그때에야 이 작품의 진정한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진지한 논의보다는 가벼움을 추구하는 쇼지만, 소녀들이 도전을 맞아 성장하듯이 이 드라마 또한 시즌 2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다.

소개

박현주
작가, 드라마 칼럼니스트.


글.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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