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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3 스페셜

2023, 유튜브에서 보낸 한때 (2)

2023.12.31

이 글은 '2023, 유튜브에서 보낸 한때 (1)'에서 이어집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새로운 영상, 화제의 밈,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었다가 얼마 못 가 사라지는 사람들, 댓글 창을 메운 유행어… 올 한 해도 유튜브 속 세계는 참 바쁘게 흘러갔다. 2023년의 끝, 문득 돌아보는 유튜브 세계에서의 기억할 만한 한때.


올해의 위로송 - 잘하는 집을 안 가봐서 그래 <과나gwana>

ⓒ 유튜브 채널 과나gwana

그간 얼굴 없는 유튜버로 활동하던 과나와 장삐쭈가 얼굴을 공개했다. 특히, 창작 애니메이션에서 보컬이나 목소리만으로 등장하던 과나는 얼굴 공개 이후에 팬들과 직접 만나는 콘서트를 개최할 정도로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2023년에 발표된 과나의 노래 중 베스트를 꼽는다면 ‘잘하는 집을 안 가봐서 그래’가 아닐까 싶다. 세월의 깊이를 간직한 맛집을 진심으로 추천해봐도 이를 거부하는 젊은 직원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드는 중년 상사의 심정을 담은 명곡. 노포 맛집이든 중년의 자신이든 오래된 것은 일단 꼰대라며 외면하려고만 하는 젊은이들을 향해 “자그마한 경험으로 단정 짓는 니들이 나보다 더 꼰대야.”라는 가사는 이 노래의 진수다.

만약 이 노래에 관심이 생겨 과나의 채널을 방문하게 된다면, ‘나만 찌질한 인간인가 봐’, ‘사람이 되기 싫은 곰’, ‘대머리여서 좋은 점 30가지’ 같은 노래들도 꼭 들어보시기를… 진짜 여기가 잘하는 집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올해의 공감 - 공감 특 시리즈 <총몇명>

공포부터 힐링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창작 애니메이션으로 폭넓은 팬층을 보유한 <총몇명> 채널. 올해는 1998년생 직장인 김민정의 일상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공감 특 시리즈’와 일의 고단함을 맛있는 음식으로 풀어내는 사람들의 먹방을 보여주는 ‘퇴근 후 혼밥러’가 유독 큰 사랑을 받았다.

실제로 일어날 법한 상황들을 보여주는 ‘공감 특 시리즈’는 비싼 호캉스 특, 소개팅 빌런 특, 영화관 빌런 특 등의 에피소드로 이어져 있는데, 탁월한 현실 반영으로 자연스레 내가 경험한 상황과 감정을 대입하게 만드는 것이 이 콘텐츠의 가장 큰 매력. 철저한 현장 조사가 전제되지 않으면 도무지 나올 수 없을 듯한 시나리오 덕분에 분명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는데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기분까지 든다.

올해의 기싸움 - 랄랄 vs 에디 실바 <랄랄ralral>

ⓒ 유튜브 채널 랄랄ralral

브라질 출신의 틱톡커 에디 실바는 일명 ‘기싸움좌’라고 불리며 큰 인기를 끌었는데, 그 시작점이 된 영상은 카메라의 시선이 자신을 향한 것임을 인식한 후, 상대를 업신여기듯 위아래로 훑어보는 표정을 짓는 것이 다였다. 하지만 그 표정이 얼마나 감칠맛이 나는지 자꾸 보고 싶은 묘한 매력을 뿜어냈고, 한국의 크리에이터 랄랄은 여기서 모티브로 얻어 기싸움 영상을 만들며 큰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올봄, 랄랄의 초청으로 에디가 한국에 방문하며 세기의 글로벌 기싸움을 관전할 수 있었다.

랄랄의 채널에서 기싸움 영상의 인기는 이후 네일숍, 미용실 등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콩트로 이어지며 현재 진행 중이다. 극강의 하이텐션을 지닌 인물들이 비현실적인 커스텀을 입고 펼치는 콩트이지만. 어쩐지 한 번쯤은 겪어본 듯한 상황 설정이나 직군별 말투는 어쩐지 마음이 가는 공감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올 한 해 이 영상들 덕분에 기 빨리는 하루의 끝을 아무 생각 없이 웃으며 비워낼 수 있었다.

올해의 재회 - 이소라, 신동엽 <메리앤시그마 merrynsigma>

ⓒ 유튜브 채널 메리앤시그마 merrynsigma

어릴 적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광수생각’은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였다. 그중에서도 유독 화제가 된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그건 남자 친구의 형이 청각장애를 가진 것을 알고 수화를 배워 온 여자 친구의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는 방송인 신동엽과 모델 이소라의 실화였다. 이 두 사람이 23년 만에 재회했다. 이소라가 시작한 유튜브 토크쇼의 첫 게스트로 신동엽이 등장한 것이다.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서로가 얼마나 좋은 연인이었는지를 곱씹으며 그야말로 어른의 연애, 존경심이 들 정도의 품위를 보여주었다. 이소라와 신동엽 역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울컥하는 모습을 몇 번인가 보이기도 했는데, 특히 신동엽이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잠시 한숨을 고른 뒤 사뭇 결연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둘러싼 루머를 바로잡는 모습은 이 재회 중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진심을 뛰어넘는 연출은 없구나,를 느끼게 했던 재회. 소중한 인연에 대한 예의와 존경이 담긴 눈빛과 말들 속에서 쿨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성숙한 인간관계를 볼 수 있었다. 그래, 뒤돌아서는 순간 SNS 가득 서로에 대한 비방을 남발하는 가벼움에 지친 요즘 같은 시기에, 이런 관계, 이런 재회가 필요했던 것 같다.

소개

김희진
글팔이 독거 젊은이.


글.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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