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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2 인터뷰

강민선 작가, 전 도서관 사서 (1)

2023.12.08

안녕하세요, 저는 책이에요.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받으며 책장에 둘러싸인 채 누군가 저를 펼치길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도 서가 사이로 오래된 종이 향기가 스며들며 누군가가 책장을 넘길 때 나는 백색소음이 이 공간을 채우죠. 도서관은 다양한 이야기가 교차하는 곳이자, 새로운 영감을 찾을 수 있는 장소예요. 누구에게나 열린 도서관은 새로운 꿈을 꾸는 이들이 찾게 되는 곳입니다. 이런 도서관의 엄격한 규칙과 순서를 유지하는 ‘사서’들은 이용자들이 필요할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며, 때로는 온갖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줘요. 오늘은 약 5년간 도서관 사서로 근무한 경험을 담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 <도서관의 말들> 등을 펴낸 ‘임시제본소’의 강민선 작가를 만났습니다.


ⓒ 강민선 작가, 전 도서관 사서

사서로 일하며 얻거나 혹은 잃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해요.
얻은 것이 훨씬 많아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도서관에서 일할 시간과 기회가 주어진다는 건 크나큰 행운이잖아요. 사서로 일하면 한 권의 책이 어떻게 도서관 장서로 등록되는지, 사서가 어떤 방식으로 책을 고르는지, 도서관 행사는 어떻게 기획하고 진행하는지 알게 되거든요. 또 도서관에서 일하려면 책뿐 아니라 도서관이 있는 지역과 주민들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해요. 이런 책을 둘러싼 태도를 사서로 일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아마 사서로 일하지 않았다면 도서관은 책만 읽는 곳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사서로 쌓은 경험이 출판에 도움이 되는 점도 많을 것 같아요.
네, 예를 들어 책 표지는 도서관 등록 번호 스티커를 붙이는 자리까지 고려해서 디자인해요. 또 겉싸개는 버리기 때문에 책을 만들 때 겉싸개에 집착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겉싸개를 벗긴 표지에 볼거리가 있으면 좋겠다는 만듦새까지도 신경 쓰게 됐고요. 독립 출판물 중에는 의도적으로 책등에 아무것도 표시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사서들이 책을 찾을 때 어려운 점이 있거든요. 제가 만드는 책에는 책 정보를 보이는 곳에 작게라도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서가에 책을 한 권씩 꽂으면서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 일을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사서가 책을 바라보는 시선이 궁금해요.
도서관의 책 중에는 작가가 고인이 된 경우가 있잖아요. 이런 책들을 보면서 내 책도 언젠가 서가에 꽂힐 거고, ‘내가 만약에 세상에 없어도 내 책은 계속 여기 남아서 누군가는 읽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어요. 그 순간에도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요? 적어도 서가에 자리만 차지하는 책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게 됐어요.

ⓒ 플랫폼P 공용 오피스

도서관에서 사용하는 단어도 궁금하더라고요.
‘상호 대차’는 제가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한데요. 도서관에 없는 책을 다른 도서관에서 대신 빌려주는 장서 공유 서비스예요. A 도서관에서 상호 대차를 신청하면 B 도서관에서 그 책을 가져다가 이용자에게 전달하죠. 또 ‘책나래’라는 장애인 대상 우편 배송 서비스가 있어요. 도서관에 직접 오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우편으로 책을 배송하고요. ‘책바다’는 꼭 필요한 책일 경우에 이용자가 택배비의 일부를 지급하고 책을 도서관에서 배송받을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도서관은 영화관처럼 도시의 상징적인 문화 공간이기도 하고, 그만큼 도서관을 소재로 삼은 콘텐츠가 많잖아요. 그중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빔 벤더스 감독의 <베를린 천사의 시>라는 영화를 좋아해요. 작중에 도서관이 천사들이 아지트처럼 쉬러 오는 공간으로 등장해요. 사람들이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데 천사들은 모든 소리를 다 듣는 거예요. 책을 읽다가 종종 다른 생각을 하기도 하잖아요. ‘오늘 뭐 먹지?’, ‘누굴 만나지?’ 같은 사람들의 생각을 천사들이 듣는 장면이 나와요. 너무 재밌지 않아요? 울고 있거나 힘들어하는 사람들 어깨에 손을 살며시 올려주기도 하고요. 실제로 도서관에 이런 천사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실제로 본인이 그런 천사 같은 기분이 든 적도 있나요?
오히려 제가 일하다가 힘들 때가 있잖아요. 민원이 들어와서 슬퍼하고 있을 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이용자가 다가와서 괜찮으냐고 말을 걸어준 적이 있어요. 그럴 때 참 감사했죠. 일이 힘들 때도 있지만, 이렇듯 위로를 건네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여러 가지 경험과 감정을 다 품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재는 임시제본소라는 1인 출판사에서 다양한 일을 하고 있잖아요.
사서로 일할 때부터 집에서 책을 한 권씩 만들기 시작했어요. 20대부터 작가가 되고 싶어서 써놓은 글이 많이 있었어요. 그걸 책으로 만들며 독립 출판을 시작하게 되었고요. 직접 책을 만들다 보니까 칼로 자른 종잇조각으로 온 집 안이 한동안 어수선해져 있었거든요. 그 모습을 본 식구들이 ‘마치 임시제본소 같다.’고 툭 한마디 던졌는데, 그 이름으로 출판사를 내게 되었어요.

이 글은 '강민선 작가, 전 도서관 사서 (2)'에서 이어집니다.

소개

정규환
에디터. 도시 생활자를 위한 팟캐스트 ‘개인사정’을 만들며, 삼각지에서 동료들과 함께 크리에이티브 사무소 ‘GLG’를 운영 중이다. 사랑하는 남자와 개와 함께 알콩달콩 살면서 2024년엔 무슨 일을 할까, 누구에게 기쁨을 줄까 궁리하고 있다. @kh.inspiration

이규연
바쁜 일상 속 반짝이는 찰나를 담는 사진작가. 편안하고 차분한 사진을 좋아하고, 시선이 오랫동안 머무르는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

“일이 힘들 때도 있지만, 이렇듯 위로를 건네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여러 가지 경험과

감정을 다 품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 정규환 | 사진. 이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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