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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2 인터뷰

협동조합 무의 나정민 연구원 (2)

2023.12.06

이 글은 '협동조합 무의 나정민 연구원 (1)'에서 이어집니다.

ⓒ 협동조합 무의

접근성 리서치를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장애인 화장실 정보를 모았고, 시민들이 휠체어 접근 가능 공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캠페인에 참여하기도 했지요.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과 함께하는 이 경험은 무의 활동가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궁금합니다.
재작년 같은 경우는 휠체어 특공대라고 해서 매달 행사를 했어요. 대부분 교육을 잠깐 하고 직접 휠체어를 타고 활동하거든요. 서너 시간 활동하는데 그 활동만으로 큰 변화가 있어요. 활동 후기를 공유하는 시간이 저희에게도 힘이 돼요. 다들 휠체어에 앉는 순간부터 좀 무섭다고 말하거든요. 다들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니까요. 도로가 평평하지 않고 기울어진 곳도 많고요. 많은 위험 요소가 있다는 걸 직접 경험하죠. 더 감동적인 건 본인의 삶으로 돌아가서 그것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활동하는 분들이 있어요. 불편한 도로에 대해 함께 민원도 넣고요.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하세요?
젊을 땐 주변에 등산하는 선배들을 보면 싫었거든요. 같이 가자고 하면 그 힘든 짓을 왜 하냐, 올라가서 내려올 걸 왜 하냐(웃음) 그랬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연이 좋아졌어요. 자연을 찾아가는 게 저의 힐링이에요.

요즘 가장 힐링이 되었던 음악이나 책이 있으면 추천해주세요.
책이나 영화를 반복해서 보진 않고 새로운 걸 좀 많이 찾아요. 다만 저는 늘 명상을 해요. 사실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도 그런 부분이 있어요. 회사를 다닐 때는 그냥 소모되는 느낌이잖아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 외부보다는 내면을 들여다보게 됐어요. 이 일은 소모되기도 하지만 채워지는 시간도 있거든요.

제삼자에게 일을 소개하실 때는 어떻게 말씀하시나요?
직함은 잘 말하지 않고, 하는 일을 설명해요.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콘텐츠도 만들고 그 문제를 알리려는 활동이라고 하면 다들 궁금해해요. 얼마 전 지인과 밥을 먹었는데 성수동 지역이 반 층 위나 아래에 자리한 점포가 많아요. 휠체어로 접근하기 어렵죠. 단순히 경사로 설치만으로 해결되지 않고요. 밥 먹고 나서 지인이 “여기 너무 예쁘다.” 얘기하기에 저는 아무 생각 없이 “그런데 저기 휠체어는 못 가.”라고 얘기했거든요.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 얘기를 하기도 해요.

활동가로 일하면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있어 힘든 부분은 없었나요?
사람들의 무관심, “그런 거 필요 없어.”라는 반응이 힘든 것 같아요.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는 거요. 휠체어가 갈 수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려는 것도 거부당할 때가 있어요. “우리 집에는 휠체어 탄 사람 안 와도 된다.” 이런 식이죠. 다른 측면에서는 저희가 지금 계속 휠체어 사용자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지만 결국은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점자 블록 같은 건 휠체어 사용자한테는 불편한 거예요. 하지만 시각장애인한테는 꼭 필요한 거잖아요. 이런 식으로 상충되는 것들이 있어요. 또 인도에 가로수가 있으면 아름답잖아요. 근데 나무가 계속 자라면서 뿌리가 커지니까 바닥이 솟거든요. 그럼 길이 좁아져서 휠체어가 다니기 힘들죠. 고민이 많아요.

ⓒ 협동조합 무의 나정민 연구원

요즘은 함께 사는 사회보다는 나 자신이 건강하고 잘 사는 것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사회문제 개선이 왜 개인의 삶에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스스로에 집중하는 건 좋다고 생각하는데 ‘나’를 너무 좁게 보는 것 같아요. 저의 경우, 처음엔 제 주변에 휠체어 탄 사람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 저희 시어머니가 휠체어를 타기 시작한 거예요. 그때부터는 내 가족, 나에 포함되는 거잖아요. ‘나’의 범위를 확장하면 다 같이 잘 살 수 있어요.

이 일을 하길 잘했다.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변화를 체감할 때가 있어요. 리서치할 인원을 구한다고 공고를 올렸는데, 한 분이 시간이 안 맞아서 같이 활동을 못 하셨거든요. 그분은 전에는 혼자 못 다니셨대요. ‘장콜(장애인 콜택시)’만 타고요. 그랬는데 저희가 지하철 환승 지도를 만들고 나서는 혼자 용기 내서 출퇴근하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정민 님이 바라는 좋은 한국 사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요?
이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소수자들을 만나요. 리서치 자원봉사자 중에 성소수자도, 청각장애가 있으신 분도 있거든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활동하면서 재밌어요. 우리의 관점, 시각을 넓혀주잖아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 유연해져요. 근데 장애 아동도 분리해서 교육시키려고 하고, 한국 사회는 뭔가 자꾸 분리하려고 하잖아요. 분리하는 시설을 만들지 말고, 원래 있던 것에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게 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유니버설 디자인인 것 같아요.

정민 님 개인의 꿈은 무엇인가요?
제가 다른 물욕은 없는데, 땅에 욕심이 있어요. ‘돈 많으면 땅 사서 아무것도 개발 못 하게 하고 싶어.’ 이런 마음이 들어요.(웃음) 근데 그렇게는 못 하고, 자연으로 갈 궁리를 계속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당장은 아니더라도 궁리를 아주 오래전부터 했었는데 지역은 정하지 않았고, 아직도 고민은 하고 있어요. 지금은 손바닥만 한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있어요. 출퇴근은 힘들지만요.


글. 황소연 | 사진. 김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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