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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2 에세이

장영은과 삼세영미술관의 만남 (2)

2023.12.03

이 글은 '장영은과 삼세영미술관의 만남 (1)'에서 이어집니다.

ⓒ Undried Fragrance 15–1, 월매도 디테일

창이 커도 모든 것을 볼 수 없듯이
사실 기존의 대형 걸작을 자신의 방식으로 새롭게 탄생시키는 시도는 분명한 소신과 실력을 필요로 하기에 그 자체로 엄청난 용기라고 할 수 있는데, 장영은은 이 작업을 멋지게 해냈다. 특히 구도를 약간 옮기면서까지 ‘월매도’로 재구성하고, 자신의 특기이자 특징인 수묵으로 그리고 바느질을 중첩해 운율감을 더했다. 양기훈의 작품이 강인한 지조를 강조한 것이라면, 장영은은 “풍요로움의 상징인 둥근 보름달 아래, 매화의 향기가 바람을 타고 은은히 퍼져나가는 계절의 생동감을 영원토록 화폭에 담았다.”라며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있다. 나아가 “궁중 회화인 자수매화도와 달리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제 작업은 공공성을 띤다는 점에서 대형 작품의 작업량을 매해 꼭 계획해 이루려고 노력 중”이라는 포부도 밝혔다.

이처럼 수묵으로 표현한 이미지와 이를 감싸는 여백으로 표현한 빛, 반짝이는 은실로 놓은 자수 등 기법 면에서도 주목받는 장영은의 작업에서는 바느질, 그러니까 수묵화 위에 중첩된 바틀땀의 미학도 빼놓을 수 없다. 필자는 그간 여러 공간에서 장영은의 작업을 감상했는데, 조명과 각도, 거리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바늘땀의 밝기와 디테일을 보는 맛이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장식적 측면이 아니라 동양 회화의 평면적 한계를 깨는 운율감과 본능적 감각으로서 꼭 필요한 만큼 발현된 자연의 결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항상 눈길을 끌었다. 좀 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장영은의 작업을 보며 든 생각의 끝은 항상 ‘와, 어떻게 이렇게 해냈을까.’였다. 그래서 동양화 기반의 작품을 선보이는 이 젊은 화가에겐 어떤 특별함이 있는지 생각해봤을 때, 그것은 차경(借景)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본래 전통 정원의 경관 조성 기법 중 하나로 ‘정원 밖의 주변 경관을 내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여 울타리 내부 경관과 정원 밖의 합치된 경관을 만들어냄’을 말하는 것이지만, 필자는 장영은이 이것을 ‘의식의 회화’라는 정원의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였다고 본다. 즉 우리가 보는 자연은 시각적 경탄의 대상이자 그 규모로 압도하는 힘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기 때문에 관망의 대상인 경우가 많은데, 작가의 눈에는 오히려 초라해지고 하강하는 기운, 사라져가는 개개인처럼 흩어지는 풍경으로 다가옴으로써 그것이 갖는 ‘역설적인 에너지’로서 재해석되는 경치가 보였던 것 같다. 그 때문인지 작가는 “아름답다고 보기 어려운”이라고 동기를 말하고 있음에도 결과물은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슬프도록 아름답기도 하고, 처연하게 빛나기도 하는 것이다.

겨울이라는 계절이 특히 그렇듯, 어떤 이는 춥고 눈 내리는 풍경을 있는 그대로 차갑고 하얗게만 느낀다면 어떤 이는 그 안의 소멸이 품은 따뜻한 하강, 녹으면서 동시에 소생하는 우리 각각의 생명감을 느낄 것이다. 넓은 창문으로도 모든 것을 볼 수 없듯이, 우리는 조화롭게 전시된 각각의 화폭에 끌어다 놓은 삶의 조각을 마주하며 각자의 시간을 해석할 것이다. 삼세영의 개별 공간, 개별 조망, 조명 등등 안팎의 건축적 요소가 장영은의 ‘시 모음집’과 같은 이번 전시 의도를 어떻게 반영하며 얼마나 멋진 조화를 빚어낼지 벌써 기대된다.

소개

배민영
아트 저널리스트이자 누벨바그 아트에이전시 대표. 기획과 평론을 한다.


글 | 사진제공. 배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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