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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0

혼자 쓰지 않는 시를 위하여 (1)

2023.11.14

ⓒ 제주 알뜨르 비행장에 남겨진 평화 기원 리본들

나는 시를 쓴다. 10여 년 전,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에 시 창작 수업을 들은 이후로 내겐 시를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생겼다. 나는 외로움을 잘 탄다. 외로움을 비롯한 여러 감정에서 회복되지 못할 때 몇 구절의 문장을 적는 것은 도움이 되었다. 때때로 안전하다는 생각이 찾아들고, 문장을 통해 마음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후 시를 계속 써 등단을 하고 시집도 출간했다.

나는 상경해온 지방 출신으로서 도시에 정착하지 못한 채 주거 불안정에 시달렸다.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지속하는 것을 택하면서, 책상에 앉아 홀로 집중해야 하는 학업의 특성상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와중에 시를 쓰면 온통 슬픈 마음이 배어 나왔다. 온통 잃어버린 것투성이인 시. 살길을 찾아 발버둥 치는 시. 나는 시를 쓰면서 내가 놓아버린 것과 후회하는 일에 관해 쓰게 되곤 했다.

변하는 세상 속에서 나는
내가 나에게 집중하고 있을 때, 세상은 급변하고 있었다. 유례없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후 예상되는 일이었음에도 재난 대응 시스템은 미비했고 이태원으로부터 참사 소식이 들려왔다. 코로나19 상황이 종식되었음이 국가에 의해 성급하게 주장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세상은 정말 불안하게 돌아갔다. 기후 가열화로 인해 여름엔 기록적인 폭우가 장기간 쏟아졌고 그로 인해 목숨을 잃은 이들의 참담한 소식이 들렸다. 대형 제빵회사 공장에서는 안전 장치가 없어 노동자가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 이게 어느 시대 이야기인지 몰랐다.

또다시 찾아온 올여름엔, 학교에 재직하던 젊은 교사들이 생을 마감한 소식이 들려왔다. 그런가 하면 살길을 찾아 더 먼 곳으로 이동한 이들이 혐오의 대상이 되고, 부동산 개발의 희생자가 되어 부당하게 삶의 터전을 잃고, 다시 밖으로 내몰리게 된 일들에 대해 들었다. 나열하니 끝이 없다. 그리고 인간의 편리와 탐욕 때문에 무참하게 짓밟힌 비인간 동물과 생태계가 구체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나는 시를 쓰기가 어려웠다. 이전에도 부당한 일이 도처에 있었을 텐데, 나는 최근에야 이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은
바깥에 있는
또 다른
고립된 존재들이 있다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나는
그것을 알게 되었다.

이 글은 '혼자 쓰지 않는 시를 위하여 (2)'에서 이어집니다.

소개

윤은성
거리와 동료, 시(詩), 그리고 수라 갯벌의 친구. 시집 <주소를 쥐고>를 펴냈으며, 기후 활동과 문학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글 | 사진. 윤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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