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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07 인터뷰

<한동일의 공부법 수업> 작가 한동일 (1)

2023.09.26

모두가 유능의 중요성을 말한다. 동아시아인 최초로 로마 바티칸 대법원인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로 일했고 100쇄 스테디셀러인 <라틴어 수업>의 저자이기도 한 한동일은 그 유능함을 완벽하게 획득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떻게 똑똑해질 수 있는지, 어떻게 공부를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그의 답은 우리의 기대만큼 명쾌하지 않다. 암기의 기술 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공부법의 진리가 <한동일의 공부법 수업>에 담겼다. 그는 왜 여전히 스스로를 ‘공부하는 노동자’로 칭할까. 공부와 노동, 둘 다 같은 일을 수없이 반복하고 익히는 행위다. 공부가 무엇인지를 공부하는, 한동일 작가는 한국 사회가 추구하는 완벽과 성공의 개념과 첨예하게 대립하면서도 소통하는 중이다. 얼핏 정적으로 보이는 공부가 물 흐르듯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한동일의 공부법 수업> 작가 한동일

“노력한 만큼 결과물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다들 화와 분노가 쌓였어요. 누군가는 없는 존재처럼 은둔자가 되기도 하고요.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 또 내 화와 분노가 스스로에게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열심히 했는데 안 된 것들이 많을 수는 있어요. 그런데 그 무언가를 대했던 태도는 내 안에 분명하게 남을 거예요.”

요즈음 일상은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건강은 어떠신지도 궁금합니다.
올해 초엔 몸이 안 좋았어요. 무척 힘들었는데 다행히 세포 치료를 받으면서 좋아졌어요. 다시 에너지를 받으니까 작업할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전처럼 7시부터 11시까지 매일 공부하진 않아요.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 공부에 훨씬 더 많이 시간을 쓰겠지만요. 어젠 하루 종일 잤어요. 내가 이래도 되나, 생각하면서요.(웃음) 하루에 한 번 연희동 뒤쪽에 있는 안산을 걷곤 해요.

<한동일의 공부법 수업>에선 꾸준함에 대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 공감을 얻는 게 현실인데요. 그런 시대정신에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는 책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니, 꾸준함에 대한 책 속의 이야기가 타인이 아니라 저 자신한테 하는 얘기더라고요, 열심히 했는데 성과가 잘 나오면 좋죠. 근데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잖아요. 노력한 만큼 결과물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다들 화와 분노가 쌓였어요. 누군가는 없는 존재처럼 은둔자가 되기도 하고요.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 또 내 화와 분노가 스스로에게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열심히 했는데 안 된 것들이 많을 수는 있어요. 그런데 그 무언가를 대했던 태도는 내 안에 분명하게 남을 거예요. 아쉬운 건 단 하나의 목표만을 좇게 만드는 사회구조죠. 열심히 했는데 안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마음이 아파요.

공부가 마음 수련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쓰셨습니다. 이것이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도 있을 것 같아요. 나를 알아가는 게 공부라는 걸 먼저 받아들여야 할 것 같은데요.
저는 항상 공부 일지를 썼어요. 그 공부 일지가 점점 마음 일지로 바뀌거든요. 공부를 시작하려고 할 때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럴 때마다 메모를 하면 ‘내가 이런 생각을 했네, 이게 나에게 방해가 됐다고 생각했네.’라고 인정하게 돼요. 결과물을 내고 싶은데 그게 안 되는 이유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거죠. 그 순간 문제가 해결되기도 하고요. 이런 공부가 습관이 되면 나중에는 어떤 진로가 나와 맞을지, 어떤 학습법이 나한테 잘 맞는지까지 보게 돼요. 어떤 책이 나와 잘 맞는지도요. 마음 수련이라는 건 결국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이에요. 근데 그렇게 안 하고 시험을 위한 공부만 하다 보니 쉽지 않죠. 그래서 연습을 해야 해요. 물리적인 나이가 우리를 성인으로 만들어주지 않거든요. 마음 수련을 하다 보면 내가 진짜 공부하고 싶어 하는 게 뭔지도 보일 텐데, 그런 점에서 공부라는 건 되게 함축적인 거죠.

'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면서도 밤에는 겸손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보면 공부는 결국 균형이 중요한 일 같습니다. 어떤 생각, 어떤 노력을 해야 그 저울추를 맞춰갈 수 있을까요?
저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에요. 학생들은 바쁜 생활 속에서 과제도 제출해야 하고 시험공부도 해야 하죠. ‘이 많은 걸 언제 다 공부하지?’ 싶을 때,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천재라는 개념이 기록된 가장 오래된 문헌이 3세기쯤인데요. 당시에는 신성한 능력으로 생각되곤 했어요. 낮 동안엔 스스로를 천재라고 되뇌면서 ‘이 정도를 내 머릿속에 넣는 게 뭐가 어려워?’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공부할 때 가장 어려운 게 거부감이거든요. 그 거부감이 공부로의 입장을 어렵게 해요. 그때 인위적으로나마 스스로 천재라고 생각하면, 거부감은 일단 해결되는 거죠. 그리고 밤엔 내가 오늘 공부한 결과물, 분량 등을 인정하는 거예요. 겸손해지라는 게 인정을 말하는 거거든요. 그래야만 다음 날 다시 ‘난 천재’라는 허세를 부릴 수 있어요.

척박한 사회가 되는 이유 중 하나는 타인의 시간을 고민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내 상황이 힘들면 타인의 어려움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폭력 등으로 드러난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이런 불안을 품지 않은 사회를 상상할 수 있을까요?
남이 나보다 더 행복하다는 생각은 착각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해요. 최근 발생한 사건들에서 범인들의 말을 보면, 나보다 타인이 더 행복해 보였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사람은 그렇게 행복하지 않거든요. 그런 착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나를 직시하는 수밖에 없어요. 지금은 우리의 바깥보다 안을 보는 게 더 필요한 시대 같아요. 근데 우리의 눈은 항상 바깥을 향하고 있죠. 저 사람이 나보다 더 잘난 것처럼 보이고요. 그런데 다들 고민이 있고, 외로움이 있고 좌절하기도 하거든요.

이 글은 '<한동일의 공부법 수업> 작가 한동일 (2)'에서 이어집니다.


글. 황소연 | 사진. 김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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