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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04 에세이

두 눈 속의 서울

2023.08.11

서울살이 8년 차. 이제는 태어나 자란 곳보다 서울이 더 익숙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여전히 알아가는 중이지만, 지금 내가 가장 잘 아는 도시는 이곳, 서울이다.


ⓒ 남산 성곽길에서 바라본 남산서울타워

화면 너머의 서울
첫인상이 평생 간다던데, 내게 서울의 첫인상은 금빛 도시였다. 때는 2015년 2월, 캐리어를 양손에 끌고 울산을 떠나 서울로 향했다. 서울역에 도착해 버스를 타려고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노을빛으로 물든 고층 빌딩이었다. 드라마 <미생>(2014)의 주요 촬영지이자 극의 주요 배경이었던 서울스퀘어. 장그래(임시완)와 안영이(강소라)가 두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닌 그 건물이 내 눈앞에 있다니. 입을 떡 벌린 채 같은 표정의 친구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사실 그게 서울에 대한 내 생애 첫 기억은 아니지만, 2⁓3일 동안 정해진 루트를 따라 움직이지 않고 내 의지대로 움직인 것은 그때가 처음이기에 첫인상이라 하고 싶다. 그때까지만 해도 서울에 대한 나의 인상은 아주 어릴 적 가족 여행으로 찾은 동대문과 인사동, 수학여행 때 갔던 롯데월드 정도가 다였으니까. KTX 울산역이 개통한 것은 2010년 11월, 그 전에는 서울에 가려면 다섯 시간은 족히 걸리는 고속버스 아니면 경비가 많이 드는 비행기를 이용해야 했기에 서울에 간다는 건 아주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거리도 거리지만, <달콤한 나의 도시>(2008), <별에서 온 그대>(2013) 등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드라마의 배경이 대부분 서울(그중에서도 남산)인 터라 화면 너머로 접하는 데 익숙해 더욱 멀게 느껴진 것 같기도 하다. 화면 너머로 보던 서울과 같은 풍경의 서울을 두 눈에 담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일까. 같은 대학에 진학한 친구와 꽉꽉 채운 캐리어를 양손에 끌며 바라본 금빛 노을은 지금도 선명하다.

ⓒ 남산 성곽길에서 내려다본 서울 빌딩 숲

여전히 알아가는 중
스무 살, 대학 기숙사 입주생 선발에서 떨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좁은 대학가의 원룸에서 고향 친구와 2년을 살았다. 20대 초반을 함께한 상도동의 작은 원룸에서 복층, 복층에서 강북의 투룸. 한동네에서 나고 자라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울산과 달리 서울에서는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살았고, 그만큼 추억도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연애, 졸업, 입사 그리고 퇴사. 서울은 내게 많은 경험과 추억을 안겨주었다.

화면 너머의 모습으로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던 곳에도 대부분 가보았다. 화면 속 정제된 모습은 아니지만, 두 눈에 직접 담은 서울에는 그만의 매력이 있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로맨틱한 장면이 연출되곤 하는 남산서울타워는 사실 실제로 가보면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썩 로맨틱하지는 않다. 타워로 향하는 케이블카를 타려면 계단을 올라야 하고, 여름에 계단을 오르다 보면 숨이 턱까지 차올라 자물쇠고 뭐고 당장 돌아가고 싶어진다. 차를 가지고 가더라도 케이블카에서 가까운 주차장은 대부분 만차다. 하지만 화면에는 비치지 않는 낭만도 분명 있다. 남산도서관 앞에 사이좋게 앉아 있는 고양이들, 남산 성곽길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의 빌딩 숲, 성곽길을 따라 걸어 도착한 남산공원백범광장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바라보는 노을 같은 것들.

얼마 전, 결혼을 앞둔 친구가 청첩장을 직접 전하고 싶다며 울산에서 KTX를 타고 서울까지 왔다. 지금은 서울에 정착해 사는 친구 둘과 나, 울산에서 온 친구까지 넷은 서울역에서 반가이 재회한 뒤, 날씨도 좋은데 노을이나 보고 헤어지자는 나의 제안에 친구 둘과 서울역에서 백범광장까지 쭉 걸었다. 5분 정도 걸었을까. 걷기 좋은 산책로가 있다는 친구의 말에 잠깐 길에서 새어 서울로7017에 올라서자 빛을 받은 서울스퀘어가 보였다. 오래전 입을 벌린 채 금빛 빌딩을 바라보던 친구와 나란히 이 길을 걷는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해 친구에게 그때 이야기를 꺼냈고, 우리는 서로의 바보 같던 표정을 흉내 내며 한참 웃었다. 여전히 서울스퀘어를 보면 장그래와 안영이가 떠오르지만, 전처럼 멈춰 서 바라보지는 않는다. 그 건물에서 근무했던 친구 덕에 지금은 그 건물 지하 맛집이 어디인지까지 속속들이 아는지라 그에 대한 환상도 지워진 지 오래다. 그러나 환상이 지워진 곳에는 추억이 남는다. 이제 더는 남산서울타워에 오르지 않지만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나만의 남산 산책 코스가 있고, 지도 앱을 켜지 않아도 서울역에서 남산까지 가는 길을 안다. 서울은 너무도 넓고 여전히 알아가는 중이지만, 지금 내가 가장 잘 아는 도시는 단연 서울이다.


글 | 사진. 김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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