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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92 에세이

내가 되어가는 중 (2)

2023.02.05


이 글은 '내가 되어가는 중 (1)'에서 이어집니다.

너무 특이하지도 지나치게 평범하지도 않게, 그렇게

ⓒ unsplash

"내가 쓴 책을 내가 낭독해보고 싶어요”. 《빅이슈》에 에세이를 연재한 지 어느덧 3년이 되어간다. 지난해 말에 그 원고들을 모으고 새로 쓴 몇 편의 글을 더해 <목소리가 하는 일>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리고 얼마 뒤 ‘오디언’으로부터 내 책을 오디오북으로 제작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안장혁 선배님 뒤를 따라 그곳에서 단역으로 오디오 드라마 연기에 입봉했던 그날을 기억한다. 그렇게 닿은 연으로 참 많은 오디오북과 드라마 작품을 녹음했었다. 달콤한 연인의 목소리, 슬픈 소년의 목소리, 따뜻한 아빠의 목소리, 살인자의 목소리, 다중 인격자의 목소리, 그곳에서 내가 되어볼 수 있는 거의 모든 목소리가 되어볼 수 있었다. 애니메이션 방송국 출신으로 전속 기간 내내 일본 애니메이션 더빙만 했었는데, 신인 때 그곳에서의 경험 덕분에 성우로서 뿌리를 단단히 할 수 있었다. 인터뷰 때 농담처럼 ‘오디언의 아들’이라는 말을 던졌지만, 그저 농담만은 아니다.

ⓒ unsplash

2023년 1월 초, 두 시간씩 네 차례에 걸쳐 <목소리가 하는 일>을 완독했다. 첫 녹음 날 간만에 신인 때만큼 떨었다. 타인이 수놓은 수많은 글자를 대하며, 어떤 목소리로 어떻게 말하면 이런 생각을 글로 직접 내려놓은 장본인처럼 들릴지 고민했던 기나긴 날들이 있었다. 거의 모든 목소리가 되어봤던 그 마이크 앞에 앉아 한 번도 뱉어보지 못한 목소리를 내어보았다. 내 목소리. 나라는 사람이 어떤 목소리로 어떻게 말하는지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첫 작업 날, 내가 한 번도 나 스스로를 그렇게 타인처럼 생각해보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려고 시도는 많이 해보았으나 실상은 매번 실패했었음을 깨달았다. 흘러가는 머릿속 공상을 글자로 붙잡아놓고,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제목과 차례를 달아 엮고, 또 얼마간의 시간으로 숙성되고, 오디오북 대본으로 만들어진 내 글을 남의 것을 보듯 표시를 하고 입에 잘 붙지 않는 단어들이 매끄럽게 흐르도록 연습을 하고 난 뒤에야, 겨우 내 목소리를 가질 수 있게 되는 줄 미처 알지 못했었다.

인터뷰나 프리토크 자리에서 내 생각을 말하는 것과 또 달랐다. 첫 녹음보다 두 번째 녹음 때엔 훨씬 자연스러웠다. 이후로 점점 좋아진 것 같다. 그것은 내 안에 숨겨져 있던 또 다른 소리를 찾아낸 기분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떨어져나간 줄도 몰랐던 목소리의 한 귀퉁이를 주운 느낌이기도 했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여겨질 만큼 힘이 들면서도, 다음에 또 이 모든 과정을 다시 겪는다면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너무 특이하지도 지나치게 평범하지도 않게, 내가 되어가는 중이다.


글. 심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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