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상단으로이동
신간 · 과월호 홈 / 매거진 / 신간 · 과월호
링크복사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
글자확대
글자축소

No.287

유치원에 간 채식주의자 (1)

2022.11.26


빅이슈코리아는 INSP(International Network of Street Papers)의 회원으로서 전 세계의 뉴스를 전합니다.

"세르비아 스트리트 페이퍼 <리세우리세>(Liceulice)의 번역가인 산드라 듀릭 밀리노브와 그의 남편, 두 딸까지 그의 가족은 모두 채식주의자이다. 산드라의 딸들이 유치원에 다니면서도 계속 채식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한 이 가족의 이야기는 조금만 인내심을 가진다면 누구나 대안적 선택의 권리를 누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세르비아에서도. "


ⓒ 일러스트 Jovana Cosic

회사에서 진행한 한 프로젝트 자료를 준비하면서 인간의 입으로 들어가 소비되기까지 동물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견뎌 몸집을 키우는지, 그리고 이런 동물이 무엇을 먹고 어떤 환경에서 사는지 등 식품 산업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인간에게 유해한 음식과 이로운 음식, 인간이 꼭 먹을 필요는 없는 음식에 관해서도 공부했다. 주된 이유는 동물에게 느낀 안쓰러운 마음 때문이었지만 건강을 위해서도 나는 즉시 육류 섭취를 중단했고 2년 후에는 어류도 모두 끊었다. 남편도 2008년부터 고기를 먹지 않았고 우리의 두 딸 역시 그렇다. 작년 여름 부모님 댁에서 가족 파티가 있었을 때 아이들이 호기심으로 고기를 맛본 적은 있지만 일회성 경험이었고 아이들 스스로 고기에 별로 매력을 못 느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편과 나는 아이들에게 좋은 품질의 건강한 음식을 마련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고기를 먹을지 아니면 계속 채식주의자로 살아갈지 스스로 결정하게 할 것이다. 나는 결코 채식이 모두가 따라야 할 바람직한 식습관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의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내 경험으로 비추어보자면 채식을 하는 사람은 충분히 건강하고, 빈혈에도 문제가 없으며, 채식만 하고도 아이들은 운동 경기에서도 매일 고기를 먹는 친구들을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세르비아에서 채식주의자로 살아가려면 많은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부터 아이들의 경우 유치원에서의 급식 문제까지. 우리의 이야기는 기존 시스템에 불복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면 심지어 세르비아에서도 채식주의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 INSP.ngo

세르비아에서 채식주의자가 되는 과정은 간단하지 않다. 일단 고기를 멀리하는 것부터가 힘들다. 고기 맛이 그립거나 고기 냄새가 예전의 기억을 자극해서가 아니라, 내 주위를 둘러싼 환경 때문이다. 샌드위치 가게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다 같이 모인 부모님 집에서, 그리고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이야기의 흐름은 금세 채식주의에 대한 토론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나와 가까운 지인이든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든, 고기를 끊겠다는 나의 결정을 기분 나쁘게 받아들였다. 고기를 거절할 때마다 같이 있던 사람들은 곤란해하고 채식이 논쟁의 화두가 되었다.

몇 년이 흐르자 내 이웃들은 나를 깊이 이해하고 내 선택을 존중해주었다. 부모님도 결국 내 결정을 받아들여주었다. 고기 한 점 먹지 않고 두 번의 임신과 출산을 이루어내고 헤모글로빈 수치에 전혀 이상이 없는 건강한 아이들을 출산했다는 사실에 부모님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 것이다. 이제 남편과 내가 없더라도 그 누구도 아이들에게 고기를 먹이지 않으며, 우리 부부와 아이들을 포함한 모든 가족은 아무 문제없이 한 식탁에서 즐겁게 식사한다. 누군가 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또 누군가 야채만 먹는다는 이유로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은 없다.

채식주의자라서 처음으로 문제가 된 것은 첫아이를 유치원에 보냈을 때였다. 아이를 입소 명단에 올리고 유치원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알게 되었는데, 유치원에서 제공하는 점심 메뉴에는 매일 고기가 올라오고,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따로 음식을 준비해주는 것은 물론 도시락을 싸 오는 것조차도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당연히 이해했다. 하루 수백 명의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곳에서 우리 딸만을 위한 특별식을 준비해줄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개인 음식을 가져오는 것조차 금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유치원 측에서 협조를 얻을 수 있었던 부분은 아침식사 여분을 점심으로 제공하는 것이었고 우리는 한동안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와 남편은 아침에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다시 집으로 데려오는 일에 모든 에너지를 소모했다.

이 글은 '유치원에 간 채식주의자 (2)'로 이어집니다.


글 Sandra Djuric Milinov
일러스트 Jovana Cosic
세르비아어 번역 Marijana Rakic
영문번역 번역협동조합
기사제공 INSP.ngo


1 2 3 4 5 6 7 8 

다른 매거진

No.330

2024.12.02 발매


올해의 나만의 000

No.330

2030.03.02 발매


올해의 나만의 000

No.329

2024.11.04 발매


요리라는 영역, 맛이라는 전개

《빅이슈》 329호 요리라는 영역, 맛이라는 전게

No.328B

2027.05.02 발매


사주 보는 사람들, 셀프 캐릭터 해석의 시대

《빅이슈》 328호 사주 보는 사람들, 셀프 캐릭터 해석의 시대

< 이전 다음 >
빅이슈의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