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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86 컬쳐

빌런을 위한 영화는 없다 ― 슈퍼히어로의 정신 건강은 누가 챙기나 (1)

2022.11.10

ⓒ <블랙 아담> 스틸컷

최근 개봉한 <블랙 아담>에 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슈퍼히어로 영화 속 빌런의 위치에 대해 잠깐 짚고 가자. <블랙 아담>은 ‘빌런’이 주연인 영화, 혹은 DC/워너가 ‘빌런’의 기원을 다뤄 성공시킨 <조커>의 전략을 이어갈 영화처럼 보였다. 메인 포스터 문구도 ‘세상을 구할 것인가 파괴할 것인가’여서, 블랙 아담의 ‘블랙’을 피부색이 아닌 ‘안타고니스트’의 의미로 받아들이게끔 유도했다.

하지만 슈퍼히어로 영화 가운데 지금껏 ‘악역’이 주인공을 맡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흔히 ‘빌런’이라고 지칭하는 캐릭터들은 시공을 떠나 어디서든 어두운 자의식을 드러낸 채로 존재감을 뽐냈지만, 주연 자리는 꿰찰 수가 없었다.

이에 대해서는 마블과 DC의 상황이 묘하게 같으면서도 다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가 쉽게 망가지지 않고 견고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건 존재하는 것들의 절반을 날려버리려 시도했던 타노스가 굳건하게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꺾어야 할 절대적 존재야말로 히어로의 존재 이유니까. 타노스가 부재한 지금의 MCU 상황을 보자. 히어로들이 멀티버스 안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게 모두 반드시 꺾어야 할 절대적 존재, 매력적인 빌런이 없어서다.

ⓒ <블랙 아담> 스틸컷

애초에 존재감 있는 빌런이 부재했던 DC 확장 유니버스(DCEU)의 상황은 더욱 난장판이다. <맨 오브 스틸>을 시작으로 <블랙 아담>에 이르기까지 11편의 DCEU 영화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계속해서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의 적과 싸워왔다는 인상이 강하다. 슈퍼히어로라는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슈퍼맨과 배트맨이 가졌던 직업 윤리관의 차이 내지는 정치적 견해 차이는 오랜 팬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이들을 화해 모드로 전환시킨 버튼이 ‘엄마’라는 키워드였다는 점도 주목하자. 그리고 ‘저스티스 리그’의 멤버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 과정, 즉 그들 자신의 트라우마와 먼저 싸워 이겨야 했다. 지난 10여 년간 DC의 히어로 멤버들이 맞붙었던 빌런 캐릭터 이름이 기억나는가. 하다못해 둠스데이와 스테판울프의 사진을 두고 이름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DC가 유니버스를 아무리 확장한들 조커를 넘어설 빌런 캐릭터를 등장시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조커>는 마블도 해내지 못한 놀라운 성과를 거뒀고 마블은 결코 ‘타노스’를 주연으로 한 영화를 만들어서 <조커>만큼 성공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슈피히어로 영화 세계 안에서 빌런 캐릭터가 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와 <조커>의 리얼리티 전략을 같은 맥락에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마블과 DC가 현재 경쟁력 있는 매력적인 빌런의 발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흐름이다.

그렇다면 빌런인가, 안타고니스트인가

ⓒ <블랙 아담> 스틸컷

길게 돌아왔지만 DC의 <블랙 아담>은 제대로 된 ‘블랙’, 즉 빌런의 매력을 보여줘야 하는 숙명을 띠고 있는 영화다. 아니,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그러리라 짐작했다. 영화는 ‘빌런’에 대한 관객의 진지한 기대를 조금은 엉뚱한 방식으로 비켜나간 영화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블랙 아담>은 <조커>의 리얼리티 전략을 취하고 있는 영화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장르적으로 한데 섞이기 어려워 보이는 DCEU의 여러 캐릭터들, 즉 ‘저스티스 리그’와 ‘수어사이드 스쿼드’라는 다소 이질적인 팀의 접목을 꾀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MCU의 수많은 히어로들이 쉴드의 수장 닉 퓨리(사무엘 L. 잭슨)의 지휘 아래 모이듯이, DCEU의 세계에서도 아만다 윌러(비올라 데이비스)라는 조직의 리더 격의 인물이 필요하고 그를 중심으로 지금껏 개별 행동을 해왔던 히어로 팀들이 한데 모일 구실이 필요했을 것이다. <블랙 아담> 메인 포스터에 쓰인 ‘세상을 구할 것인가 파괴할 것인가’라는 홍보 문구가 추구하는 방향은 이질적인 팀에 속해 있었던 캐릭터들, 즉 인간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쪽과 인간의 고통에 상대적으로 공감하지 못해서 직업 윤리관이 상반된 히어로들을 한데 모으기 위한 전략적 차원의 방향 모색이었던 것이다.

이 글은 '빌런을 위한 영화는 없다 ― 슈퍼히어로의 정신 건강은 누가 챙기나 (2)'로 이어집니다.


글. 김현수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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