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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83

산호학교, 산호햄쪄!

2022.09.18

얼마 전 ‘처서’가 지났습니다. 거짓말 같게도 다음 날부터 아침저녁 쌀쌀한 공기가 창을 타고 들어옵니다. 열어두고 자던 방 창문을 닫기 위해 깨어나는 아침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어쩐지 벌써 여름이 가버린 것 같아 아쉽습니다. 여러분의 지난여름은 어땠나요? 저는 산호가 가득한 여름이었습니다. 사람들과 모여 산호를 공부했고, 바다에 나가 산호를 기록했지요. ‘산호햄쪄’ 했던 여름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산호’라고 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시나요? 태양 볕이 내리쬐는 맑은 바다, 야트막하고 넓게 펼쳐진 바위와 같은 산호들, 빼쭉빼쭉한 가시, 뇌처럼 생긴 구불구불한 돌, 그 위를 헤엄치는 자그마한 열대어들, 혹시 다큐멘터리 <산호초를 따라서>에서 보았던 하얗게 변하고 있는 산호들의 백화현상도 떠오르시나요? 산호가 있는 장면을 상상한다면 이렇게 열대 바다 산호초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사실 산호는 더 다양한 모습으로 바다 어디에나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바다와 같은 온대 바다뿐만 아니라 아주 차고 어두운, 수심 200m 이하의 심해까지 말이죠!

ⓒ unsplash

산호의 색은 산호 몸체에 붙어 살아가는 공생조류(갈충조, zooxanthellae)의 색입니다. 산호는 공생조류가 광합성하여 만들어내는 부산물을 에너지원으로 살아가는데, 기후변화로 인한 수온 상승으로 이 공생조류가 산호 몸체에서 빠져나가 산호의 색이 하얗게 변하고, 결국 산호는 에너지원을 잃어 굶어 죽는 현상을 백화현상이라 합니다. 그러나 이 또한 맑고 따뜻한 열대 바다에 사는 딱딱한 몸체를 가진 경산호에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광합성이 아니라 촉수를 뻐끔거리며 바다의 유기물을 걸러 먹는 활동을 주 에너지원으로 살아가는 산호도 있습니다. 제주 바다에 사는 부드러운 몸체에 꽃과 나무처럼 생긴 연산호나 햇빛이 들지 않는 200m 이하의 수심에 사는 냉수성 산호처럼요.

제주도 남쪽 서귀포 해안의 깎아지르는 절벽과 주상절리대의 위용에 감탄한 적이 있나요? 제주도 화산활동으로 인한 육상 환경의 화려함은 수중으로도 이어집니다. 수중 직벽과 그곳에서 떨어져 나온 커다란 바위, 아치, 동굴과 같은 화려한 지형에 구멍이 많은 암반은 연산호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기에 더할 나위 없는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게다가 수온도 제주 북쪽 바다보다 연중 1~2도 정도 높기 때문에 비교적 따뜻한 물을 좋아하는 연산호에는 아주 좋은 환경입니다. 덕분에 우리나라 최대의 연산호 군락지는 서귀포 앞바다에 위치합니다. 형형색색의 연산호가 군락을 이루어 촉수를 활짝 펼쳤다 오므렸다 하며 물살에 따라 너풀대는 서귀포 앞 수중은 육지 환경 못지않은 감탄을 자아냅니다.

한 개가 천 개 되는 기적

산호는 그야말로 공존의 아이콘입니다. 산호가 내어준 품에서 치어나 엽새우와 같은 작은 해양 생물이 안전하게 자라납니다. 복잡한 구조의 산호 사이에 숨어 살며 힘세고 덩치 큰 물고기들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거든요. 게다가 산호가 만들어내는 점액질은 여러 해양 생물의 먹이원이기도 합니다. 곧 이 작은 해양 생물을 잡아먹기 위해 조금 더 큰 물고기들이 모여듭니다. 또 조금 더 큰 물고기가, 또 조금 더 큰 물고기가 따라오며 거대한 해양생태계를 이루게 됩니다. 산호는 스스로 하나의 동물이자 다양한 생물이 어울려 사는 서식처이기도 한 거죠. 그래서 산호를 보호, 보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산호 생태계가 무너진다는 것은 더불어 사는 여러 해양 생물의 삶터가 없어진다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제주 바다 산호의 이상 현상이 느껴집니다. 열대 바다에 많이 서식한다는 돌산호가 제주 바다에서 급격히 늘어가고 있습니다. 제주에 살던 연산호들은 더 따듯해지는 바다를 따라 남해와 동해까지 서식지를 넓히거나 더 깊은 수심으로 이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서식지를 옮겨가면 다행이지만, 너무 빠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점점 사라지는 종들도 있습니다. 보키반타이끼벌레와 담홍말미잘처럼 기생생물이 기승을 부려 산호가 병들어 죽는 개체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빠르게 감지하고 대처해야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산호를 조사하고 연구하는 학자와 연구자는 다섯 명이 채 되지 않습니다. 이 적은 인원마저도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 전체를 대상으로 연구하고 있으니 제주 바다의 급격한 변화를 촘촘히 조사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지요.

ⓒ unsplash

그래서 녹색연합 해양팀 활동가들이 나섰습니다. ‘산호학교’를 열고 산호에 관해 공부하고 직접 조사해보자고요. 직접 현장에서 산호를 연구하고 있는 연구자와 학자들을 모셔서 산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조사 방법도 함께 의논하며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제주도로 다이빙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 자신의 카메라로 간단히 기록하여 산호를 보호할 수 있도록 조사 방법을 만들었습니다. 직접 현장에 나가 다이버들과 함께 조사 연습도 했고요. 그렇게 산호를 위한 우리의 기록을 쌓아가는 발걸음을 시작하였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다이버가 제주 바다에 들어갑니다. 한 사람의 다이버가 한 번의 다이빙마다 한 개의 기록을 남긴다면 어떨까요? 10명의 다이버가 한 달이면 300개의 기록을 만들어낼 테지요. 단 두 개의 기록만으로도 600개, 세 개면 900개… 다섯 명이 채 되지 않는 산호연구자들이 수백 번을 조사해야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기록, 제주 바다 산호의 이야기를 전해줄 기록이 금세 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햄쪄’는 ‘–해요’라는 의미로 쓰이는 제주 말입니다. 사실 ‘산호햄쪄’는 제주에는 없는 말이지요. 그렇지만 저는 기록적인 폭우로 기후변화를 몸소 느끼던 지난여름 ‘산호햄쪄(산호해요).’라고 세상에 말을 걸어보았습니다. 산호를 위해 ‘산호를 공부해요, 산호를 조사해요, 산호를 기록해요. 함께해요’와 같은 뜻을 가지고요.

그래서 여러분, 이제 우리 산호햄쪄.


글. 신주희
사진. 녹색연합

녹색연합 해양생태팀 활동가. @jeju_softco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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