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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82 빅이슈

‘만남’의 의미 ― 빅이슈 코디네이터 체험기

2022.09.11


'이 글은 《빅이슈》 212호에 실려 있습니다.'

"우리가 무채색의 세상에 살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내가 세 시간 뒤 색이 보인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믿을 것인가? 지금 나는 그 경험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격주 화요일마다 빅이슈코리아의 코디네이터들은 서울역으로 야간 아웃리치 활동을 나간다. “안녕하세요? 빅이슈입니다. 전단지 읽어봐주시고 관심 있으시면 사무실로 연락주시거나 찾아와주세요.”라는 멘트와 함께 모집 전단지를 건네고, “식사 맛있게 하세요!”라는 인사말로 짧은 만남을 마무리한다. 빅이슈코리아는 전단지를 보고 홈리스들이 사무실로 찾아오는 바로 그 순간이 자활의 시작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매일, 서울과 부산에서 많은 빅돔들이 빨간 조끼를 입고 외친다. “당신이 읽는 순간, 세상이 바뀝니다!” 두 번의 아웃리치 활동과 한 번의 빅돔 활동. 그 세 시간 동안, 나의 세상이 변했다.

홈리스는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들의 곁을 지나치면서도 그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또 홈리스에 대한 정형화된 이미지를 상상하고, 그 허상과만 조우한다. 나 역시 과거엔 ‘모든 홈리스는 더럽고 위험한 존재’라고 상상하며 항상 그들 곁을 빠른 발걸음으로 지나쳤었다. 과거 나의 세상은 그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은 던질 생각도, 용기도 없는 무채색이었다.

아웃리치 활동을 통해 홈리스를 가까이에서 만나는 순간, 나의 세상에 색이 더해졌다. 편견 속 홈리스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동정의 시선이 싫어 자신의 몸을 깨끗이 하는 사람들부터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커 아예 소통을 거부하거나 오히려 난폭하게 행동하는 사람들까지 각자의 맥락을 가진 홈리스들을 보았다. 그때, 멀리서 보면 회색으로 보이는 원이 서로 다른 수많은 색을 가진 점들로 이루어졌음을 깨달았다.

어떤 대상에 대한 타자화는 그 대상과의 왜곡된 관계를 가져온다. 나의 경우 그것은 홈리스에 대한 무관심 혹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으로 이어졌었다. 아웃리치 활동을 통해 홈리스를 고유한 맥락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게 되자,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나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 보았던 홈리스들이 사실은 사회에서 받은 상처와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 방어막을 몇 겹씩 치고 있는 사람들이었음을 알았다.

나는 스스로의 상상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모든 경험에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넘어온 상상의 한계는 ‘발전된’ 방향의 것뿐이었다. 세상에서 후라이드치킨이 제일 맛있다고 생각했는데 양념치킨을 맛보게 되는 것과 같은. 하지만 아웃리치 활동은 그 반대 방향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홈리스는 단순히 의식주의 위협을 겪는 정도를 넘어 주민등록증이 말소된 경우도 빈번하며 각종 질병과 범죄의 최전선에 노출되어 있다. 아웃리치 활동 중 전단지 뒷면의 연락처로 전화 달라는 안내에 한 홈리스가 자신은 핸드폰이 없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대답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 소속되기 어려운 존재들이라는 사실이 차갑게 와 닿았다.

빅돔 활동을 통해 내가 빅이슈 판매원(이하 빅판) 선생님들 역시 무채색의 시선으로 보아왔음을 깨달았다. 나는 빅판 선생님들의 자활에 있어 나 스스로를 외부자라고 규정해왔고, 2주간의 임시 빅판 활동에서 탈락하는 홈리스들이 꽤 많다는 점이 의아했다. 아웃리치 활동을 통해 하나의 회색 덩어리라 생각했던 홈리스들이 가까이 들여다보면 각자의 색을 갖고 있음을 깨달았다면, 빅돔 활동을 통해서는 각자 가진 색조차 다채로운 색들이 섞여 있음을 깨달았다.

지나다니면서 볼 때는 쉬워 보이던 빅판 활동을 막상 하려고 하니 쉽지가 않았다. 한 시간밖에 하지 않았는데도 다리가 아프고,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멘트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빅판 활동은 생각보다 큰 용기와 체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직접 몸으로 깨우쳤다. ‘내가 빅판이 된다면 나 역시 2주간의 임시 빅판 활동에서 중도탈락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빅판 활동을 계기로 기존의 내가 스스로를 ‘외부자’라고 규정했던 생각이 바뀌게 되었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빅판 선생님들이 느끼는 고충과 보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외부자이다. 하지만 그 관계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이를 기꺼이 여기는 관계임을 배웠다. 물론 예외가 있겠지만 빅판 선생님들은 정말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과거 스스로를 단절된 외부자라고 생각했던 나는 잡지를 샀던 곳을 지나갈 때면 빅판 선생님께서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핸드폰만을 바라보며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벗어나곤 했다. 이는 비단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많은 빅판이 독자를 꾸준한 빅판 활동의 동기로 꼽을 만큼, 독자는 우리는 생각하는 것보다 빅판 선생님들에게 큰 의미를 지닌다. 한 번쯤 발걸음을 멈추고 먼저 인사를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 나의 가까이에 항상 서로의 삶을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 가슴 따뜻한 일이다.

‘만남’이라는 것은 참 오묘하다. 한없이 가벼울 수도 한없이 무거울 수도 있고, 평생 아물지 않을 상처를 받기도 하고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기억을 얻기도 한다. 아웃리치 활동과 빅돔 활동을 통해 내가 경험한 만남은 나에게 다채로운 색을 볼 수 있는 눈을 주고 내가 상상한 열악함의 한계를 넘어서게 했다.

마치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시력을 되찾듯, 보이지 않던 존재들이기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책 <눈먼 자들의 도시> 중, 461쪽


Writer 김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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