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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80 에세이

자립의 노력, 노동의 권리 (2)

2022.08.07


이 글은 '자립의 노력, 노동의 권리 (1)'에서 이어집니다.

ⓒ unsplash

달리다 쓰러진 올리버 트위스트들

지난해에 전국의 노숙인 등에 대한 실태 조사를 실시했다. 노숙인 관련법에 따라 정부는 5년마다 실태 조사를 해서 노숙인 복지를 위한 종합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2021년 실시한 실태 조사에서는 전국의 노숙인 규모와 분포를 조사했고, 이 중 일부를 표본으로 삼아 면접조사를 진행해 좀 더 구체적인 상황과 욕구를 파악했다. 면접조사 대상인 여성 43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 중에는 근로 활동 실태가 포함되었는데, 69.5%는 근로 능력이 없는 미취업자였고, 15.8%는 근로 능력은 있으나 미취업 상태였다. 일을 하는 경우는 임시·일용직 3.1%, 자활 근로·공공근로·노인 일자리 등의 공공 일자리에 참여하는 경우가 11.4%였다. 상용직으로 일하는 여성은 없었다. 상대적으로 조사 대상 남성은 근로 능력이 없는 미취업자가 50.4%로 여성보다 적었다. 일하는 경우, 임시·일용직이나 자활 근로 등 공공 일자리에 참여하는 경우가 27.2%로 여성보다 많았고, 드물지만 상용직으로 일하는 남성도 0.5%로 나타났다. 이들에게 원하는 일자리 조건을 물었다. 먼저 근무시간. 여성들은 하루 4시간 정도 일하기를 원하는 경우가 14.7%였고, 하루 8시간 전일제로 일하기를 원하는 경우는 3.9%였다. 같은 질문에 대한 남성의 응답은 다소 차이를 보였다. 남성의 경우 23.5%가 전일제 일자리를 선호했다. 한편, 여성 응답자의 76.5%는 일자리를 원하지 않았다. 51.4%가 일자리를 원하지 않는다고 답한 남성 응답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비중이다. 비교하자면 남성이 상대적으로 여성보다 일을 찾는 사람의 비중이 컸고 전일제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의 비중이 높았다. 그 반면 여성은 하루 4시간 정도의 단시간 일을 원하는 비중이 컸다.(보건복지부·한국보건사회연구원(2021) <2021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 조사> 참조)

ⓒ unsplash

근로 욕구와 근로 선호도 등에 대한 노숙인 등의 전국 실태 조사 결과에 비추어볼 때, 여니 님처럼 근로 활동에 적극적인 경우는 드문 사례다. 그보다 많은 여성 홈리스는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서, 연령이 높아서, 일을 잘 할 줄 몰라서, 마땅한 일자리 찾기가 힘들어서, 혹은 일할 의욕이 없어서 일을 못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다양한 상태와 욕구에 맞는 촘촘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일 터다. 생활하는 데 충분한 보수를 받으며 자립할 수 있을 만한 안정적이고 조건이 좋은 일자리가 더 많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한편으로는 근로 기능이 낮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수월한 일, 단시간 근무하는 일자리의 필요도 터부시하지 말아야 한다.

며칠 전 우리 시설을 이용하는 홈리스 여성들 사이에 작은 갈등이 있었다. 이 글이 실리는 잡지 《빅이슈》는 잡지 발송 작업에 홈리스 여성들을 참여시킨다. 홈리스 여성들에게 《빅이슈》 디엠 발송 일자리는 인기가 좋다. 작업 과정이 수월하기도 하고, 홈리스 여성들에게 호의적인 분위기도 한몫하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한 당일에 현금으로 급여를 받을 수 있어 급하게 돈이 필요한 여성들에게 아주 유용하다. 작업 참여자를 추천하는 과정에서 혼선이 생겨 일할 의욕이 넘치는 한 어르신은 가기로 했다가 가지 못하게 되고, 노숙하다 막 시설에 온 젊은 여성 몇몇이 가게 되었다. 탈락한 어르신은 자기 일을 뺏겼다고 생각해 젊은 것들이 쉬운 일만 하려 한다고 힐난하고, 열심히 참여하고 기분 좋게 돌아온 젊은 홈리스 여성은 위축되어 속상해했다. 갈등은 당사자들에게 그 일이 급히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다시 설명하며 겨우 봉합되었다.

ⓒ unsplash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유독 기억에 남은 장면이 있다. 주인공 올리버는 고된 작업장에서 도망쳐 런던에 가려고 며칠을 먹지도 못하고 걸었다. 그렇게 걷다가 기진한 상태에서 지나가던 마차를 만나고, 마차를 이용하는 손님에게 빵이나 돈을 좀 달라고 호소한다. 손님은 1펜스를 줄 테니 전력을 다해 달려보라고 하고 마차를 출발시켰다. 올리버는 열심히 쫓아가봤으나 역부족이었다. 점점 멀어지는 마차를 따라가지 못하고 끝내 쓰러지고 만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본 마차 주인은 역시 의지가 없다고 생각하며 완전히 멀어져 갔다.

그러나 자립의 노력이 과연 당자자만의 의무일까. 일할 의욕이 있는 홈리스를 위해서는 노동의 권리라는 차원에서 일할 수 있도록 정부든, 사회든 뭔가를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 자립 노력의 정당성만큼 자기의 최대 속도로 마차를 따라가던 올리버의 절박한 심정에 공감하는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글. 김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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